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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바다, 하늘, 태양을 품은 삼각형 주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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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건축가 서현의 세모난 집짓기'

 

서귀포 중문 관광단지에서 차로 10분 정도 가다 보면 길에서 눈에 확 띄는 집이 하나 있다. 새하얀 외벽과 모서리에 난 창이 먼저 시선을 사로잡는다. 그런데 잘 보면 희한한 점이 또 있다. 이 집을 한 바퀴 돌아보자. 벽이 하나, 둘, 세 개뿐이다. 그러니까, 세모난 집이다. 그러고 보니 유리창, 우편함 등등 곳곳에 이미 힌트가 있다. 숨은그림찾기처럼 안팎에서 삼각형 디테일이 계속 발견된다. 자연스럽게 질문이 뒤따른다. 대체 이런 집에서 사는 사람은 누굴까? 건축가는 무슨 생각으로 집을 이렇게 지은 걸까?

‘길에서 눈에 확 띄는 집’은 건축주가 건축가에게 요청한 유일한 사항이었다. 건축주 부부는 설과 추석 이틀을 제외하고는 쉬는 날 없이 일하는 사람들이다. 그렇게 20년을 함께 일해온 부부는 그동안 수고했다는 의미로 자신들에게 선물하고자 집을 짓기로 결심했다. ‘아름다운 제주 건축 7선’에 선정된 건물이기도 한 ‘해심헌’을 좋아했던 부부는 그 집을 지은 건축가 서현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이들에게 선물이 될 집을 건축가가 지어보기로 마음먹은 것은 이 한마디 때문이었다. “바다가 보입니다.” 그러나 막상 제주도로 날아가 집 지을 현장을 두 눈으로 확인했을 때, 땅은 전혀 예상치 못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바다는 아득히 멀었고 대지 앞은 전신주 천지였다. 길도 땅도 평평하지 않고 가팔랐다. 분명 바다가 보이긴 하지만, 과연 이것을 바다가 보인다고 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어수선한 풍경과 경사 급한 땅이 수다스럽게 질문을 쏟아내고 있었다. 이런 나를 어떻게 하겠느냐고. 그때부터 건축가의 고민이 시작되었다.

바다에 가서 우리는 뭘 보는가. 바다를 바다로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빼내면 더 이상 바다가 아니게 되는 그것은 무엇인가. 답은 한 단어로 귀결된다. 수평선.
_ 59쪽

건축가는 바다를 감상하는 데 쓸데없이 방해가 되는 풍경은 과감히 지워버리고 수평선, 즉 바다와 하늘만 보이도록 바깥 경치를 잘라내 유리창에 담기로 했다. 그리고 그저 ‘바다가 보인다’에서 그치지 않고 그 문장 끝에 느낌표를 박아 넣기 위해, 수평선을 향한 갈망과 의지를 표현하기 위해 창을 건물 모서리에 내기로 했다. 대지의 경사와 바다 조망을 고려하다 보니 건물 모양은 삼각형 평면에 이르렀다. 그제야 퍼즐이 하나둘 맞아가기 시작했다.

이 집의 이름은 ‘시선재’다. ‘바다(Sea)와 태양(Sun)이 보이는 집’이라는 뜻으로 건축주가 장난삼아 제안했던 것을 건축가는 기억해두었다. 서서히 집의 윤곽이 드러나자 ‘수평선을 보여주는 집’이라는 뜻을 더해 시선재(示線齋)라는 당호를 붙였다. 이보다 더 어울리는 이름은 없다.

'건축가 서현의 세모난 집 짓기'는 인문적 건축, 도시 이야기를 꾸준히 쓰며 건축과 대중 사이의 담을 부지런히 허물어온 서현 교수의집 짓기 책이다. 건축가로서 설계부터 시공까지의 과정을 세세히 기록했다. 도면과 스케치부터 건물 완공 후 사진까지 시각 자료를 다채롭고 디테일하게 수록한 것은 물론이고 끝없는 고민, 어이없는 실수, 겨우 해결했다 싶으면 또 등장하는 현실적 난관 등 대충 넘어갈 법한 이야기까지 덮어두거나 포장하지 않고 솔직하게 써내려갔다.

환상의 분 냄새가 감도는 결과물이 아니고 속세의 땀 냄새가 선연한 작업 과정이 나타날 것이다. 도면과 스케치 모두 원본 그대로 사용할 것이다. 도면의 계단 한 단이 건물 전체를 흔든다. 비록 오보일지라도 일기예보에 그려진 우산 한 개가 공사 일정을 지연한다. 모두 설명할 것이다. 구구절절하고 시시콜콜하게.
_ 17쪽

텔레비전이나 잡지에 등장하는 멋진 집을 보면 입이 떡 벌어지곤 한다. 그러나 그 매끈한 결과물에는 이야기가 없다. 집을 짓는 동안 어떤 우여곡절이 있었는지, 그 집에 어떤 사람이 사는지 우리는 모른다. 그동안 살짝 숨겨져 있었던 그 이야기들이 '건축가 서현의 세모난 집 짓기'에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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