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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순례 소설, '뿌리뽑힌 자들이 의지할 곳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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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소설 '공중 그늘집'

 

윤순례의 신작 소설 '공중 그늘 집'에 실린 일곱 편의 작품들은 새로운 정박지를 찾아 국경을 넘은 이들의 삶을 다룬 점에서 연작소설로도 읽힌다.

수록된 일곱 편의 소설에는 억센 현실에 어떻게든 발붙이려는 이주노동자의 애환이 있고, 몇 년째 캄보디아에서 아버지의 연락이 오기만을 기다리는 아이의 애탄 부름과 한 가족의 위태로운 일상이 있다. 티브이 프로그램에 출연 신청한 방글라데시 며느리와 난생처음 가본 이국에서 이방인이 된 시어머니의 독백이 있고, 무국적자로 전락한 조선족 여자의 지난한 삶의 그늘이 있다. 몸은 현실에 오롯이 붙박여 있으나 내면은 황폐한 이들이 생을 흔드는 바람의 줄기를 잡고자 애쓰는 심사가 또한 그 한편에 자리 잡고 있다. '공중 그늘 집'은 다양한 이유로 낯선 땅, 새로운 환경에 처한 이들의 디아스포라적 삶의 풍경을 그리고 있다.

"전 지구적 세계화 시대, 자본의 논리에 의해 떠돌아야 하는 디아스포라들의 정체성은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그 사유의 언저리에서 태어난 일곱 편 소설 속 인물들의 ‘귀향’이 부족함 없는 답을 내놓았기를 바랄 뿐이다." _윤순례

사바아사나
실연의 상처를 안고 스페인으로 여행을 떠난 여자는 기차 안에서 자신의 것과 비슷한 캐리어를 들고 내린다. 가방 안에서는 모호한 엽서와 편지들과 모양과 크기가 제각각인 컵들이 쏟아져 나온다. 곡진한 사연이 풀어져 나오는 엽서의 사연은 여자의 상처 난 마음을 들쑤신다. 그리고 맞닥뜨린, 영원한 사랑을 약속하며 자물통을 묶어두는 연인들로 들끓는 우에르카 다리 밑으로 몸을 날린 동양인 남자의 자살 사고……

공중 그늘 집
캄보디아 여자와 한국인 남자 사이에서 태어난 주인공 소년이 수년째 소식이 없는 아빠에게 편지를 쓴다. 한국에서 살다가 캄보디아에 있는 외갓집에 맡겨진 소년은 앙코르와트에 온 한국인 관광객들에게서 들은, 보험금을 노리고 만삭의 캄보디아 아내를 죽인 한국인 남자가 아버지일지도 모른다는 의혹과 두려움에 빠진다. 그날로부터 시작된 소년의 편지는 풍문보다 믿음이 약한, 알로에 농장에서 일한다는 아버지를 향한 애절한 노래가 된다.

북화의 백한 번째 생일을 위하여
위장결혼으로 무국적자가 된 조선족 여자 정희주는 치매를 앓고 있는 부유한 노인 북화를 돌보며, 국적을 다시 찾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무국적자의 애환을 인터뷰해서 텔레비전 방송으로 내보낼 계획인 프로그램에 출연 약속을 해놓은 여자는, 북화를 돌봐줄 불륜 관계인 남자를 집에 끌어들인다. 그러나 남자와 사랑을 나누는 사이 잠깐 사이에 북화가 감쪽같이 사라지는 사태가 발생한다. 여자는 유럽여행중인 주인 내외에게 사정을 알리지도 못하고 정신없이 북화의 향방을 수소문하는데……

색, 스스로 그러한
‘나’는 종일 집을 사고파는 일을 하지만 정작 자신은 원룸 월세 걱정에서 놓여날 수 없다. 무명의 화가인 남편은 ‘빛의 연작’을 위한 여행에 미쳐 있다. 간암 3기 판정을 받은 ‘나’는 나머지 생이 암세포에 장악되기 전에 남편과 함께 칸첸중가로 떠난다. 자신의 불행을 남편 탓으로 돌리고 싶은 마음을 안은 채. 그러나 질곡한 생을 이어가는 오랜 생의 역사가 겹겹이 이어져 있는 부탄과 네팔과 인도의 국경 땅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홀리 축제…… 서로 엉키고 섞여 온몸에 색색의 가루를 뿌려가며 용서와 화해를 시도하는 축제를 위해 그녀는 네팔노인을 따라 국경을 넘을 결심을 한다.

위험한 거래
도심 외진 곳에서 노인들에게 몸을 팔며 생계를 이어가는 여자, 삶에 더 이상 미련이 없는 노인. 어느 날 여자는 자신의 뒤를 따라온 노인으로부터 천만 원을 줄 테니 조용히 자신의 죽음을 도와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발로
친정에 보내준다는 TV프로그램에 출연을 신청한 방글라데시 출신 며느리를 둔 귀순. 울며불며 하는 통에 어쩔 수 없이 동의해줬더니 덜컥 출연이 확정되고 방송국 카메라가 집 안 여기저기를 찍기 시작한다. 피디가 반신불수가 된 아들을 인터뷰하는 꼴을 보고 있으려니 열불이 나기도 하지만 이미 벌어진 일. 귀순은 공짜 여행에 끌려 어쩔 수 없이 며느리 친정집을 찾아가는 여행길에 오르게 되는데……

레고랜드를 가다
‘나’는 죽기 전에 미국에 사는 딸의 얼굴을 보고 싶어 작은아들에게 경비를 대줄 테니 가이드를 해달라고 부탁한다. 작은아들은 장기휴가를 내고 며느리와 손녀까지 대동해 미국 여행길에 오른다. 캘리포니아 레고랜드에 가고 싶다고 손녀가 떼쓰는 바람에 일행은 하는 수 없이 그곳으로 향하고, 노인은 아들이 손녀를 데리고 놀이기구를 타러 간 잠깐 사이에 길을 잃고 만다. 노인은 생애 처음으로 맞닥뜨린 고립감 앞에서 지나온 생을 반추한다.

이산(離散)을 뜻하는 디아스포라는 원래 전 세계에 흩어진 유대인의 삶을 가리키는 말이지만, 최근에는 민족과 국가와 인종의 경계가 약화되면서 삶의 한 형태를 보여주는 경향이나 현상을 이야기할 때 본래의 의미보다 확장되어 사용되고 있다. 문학에서 디아스포라가 의미 있는 것은 일상적인 상황을 벗어나는 특이체험으로 인해 삶의 다면적인 문제가 부각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게오르크 루카치는 '소설의 이론'에서 소설을 “현대의 문제적 개인이 본래의 정신적 고향과 삶의 의미를 찾아 길을 나서는 동경과 모험에 가득 찬, 자기인식에로의 여정을 형상화하고 있는 형식”이라 불렀다. 여기서 ‘문제적 개인’이란 주인공을 뜻한다. 디아스포라 문학 역시 개인의 정체성을 찾아간다는 점에서 보편적인 문학성을 지닌다.

윤순례 소설집 '공중 그늘 집'은 주인공들이 정신적 고향을 이탈하면서 맞닥뜨리는 다른 환경에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찾는 상황을 그린다. 작가는 몇 차례 떠난 여행길에서 마주친 사람들에게서 불안과 좌절, 고립을 보았고 그 스스로 경험한 바도 있었다. 소설 속 상황의 상세적인 이미지는 서울에서 만난 무국적자 등 실제 모델이 된 인물들의 인터뷰를 통해서 구체화되었다. 작가는 이들의 불안과 좌절, 고립감의 이유를 삶의 중심이 단절된 데서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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