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당 윤명호 화백이 화재로 일생의 역작 70여 점이 모두 소실된 작업실에서 딸 수연 씨와 새로운 출발을 얘기하며 환하게 웃고 있다. (사진=임상훈 기자)
평생의 역작들이 잿더미가 되던 날, 노화백은 껄껄 웃었다고 한다.
한국화의 맥을 잇는 백당(白堂) 윤명호(75) 화백의 작업실, 청우헌은 송두리째 타버렸다. 윤 화백이 세월과 열정과 정성을 쏟아 부은 작품 70여 점도 새까만 재로 변했다.
안타까움에 발을 동동 구르던 이웃들과 달리 윤 화백은 불타는 작업실 앞에서 미소를 지었다.
노화백이 지은 웃음의 의미는 뭘까. 화재 이튿날인 14일 불에 탄 청우헌에서 윤 화백과 그의 딸 수연(43) 씨를 만났다.
◆ 재로 변한 26년의 세월
지난 12일 전북 완주군 상관면 내아마을 윤 화백의 작업실 청우헌이 화재로 전소됐다. (사진=전북소방본부)
지난 12일 오후 6시께 전북 완주군 상관면 내아마을, 윤 화백의 작업실 청우헌에서 불길이 솟았다. 화목보일러에 잡동사니를 넣고 태우는 사이 잠금장치를 소홀히 한 게 화근인 것 같다고 윤 화백은 기억을 되살렸다. 초록으로 물든 먼 산을 보며 한참을 작품 구상에 골몰하다 뒤돌아 봤을 때 작업실은 시커먼 연기와 함께 빨갛게 물들어 가고 있었다. 100m²남짓한 작업실과 70여 점의 작품은 그렇게 이별을 고했다.
26년 전 윤 화백은 지인의 도움을 받아 내아마을에 터를 잡았다. 여느 시골과 다를 바 없던 마을은 윤 화백의 손길을 통해 새롭게 태어나기 시작했다. 단조롭던 마을 담벼락과 집 벽면은 윤 화백의 붓끝이 스칠 때마다 커다란 화폭으로 변했다. 한국화풍의 수려한 산수가 벽을 수놓고, 담벼락은 우거진 수풀로 물들었다. 깊은 밤에도 마음이 동하면 붓을 놀렸고, 그러다보면 어느덧 날이 새곤 했다.
애정과 세월이 물든 내아마을을 윤 화백은 자신의 커다란 미술관으로 여겼다. 그리고 이 모든 작업의 중심이 그의 작업실 청우헌이었다. 지금은 불에 타 뼈대만 앙상히 남았지만 말이다.
윤 화백은 내아마을 담벼락과 집 벽에 한국화를 수놓으며 마을을 커다란 미술관처럼 만들어 가고 있다. (사진=임상훈 기자)
◆ 불과 함께 사라진 잡념
불길 앞에서 웃었다는 얘기가 믿기지 않았지만, 화재 이튿날 잿더미 앞에서 만난 윤 화백은 여전히 웃는 얼굴이었다. 납득이 가지 않는다는 말에 윤 화백은 독백처럼 속내를 털어놨다.
어렵게 컸고, 그 이상 어렵게 살아 온 날들이 있었다. 고희를 훌쩍 넘긴 나이, 이제는 작품 인생을 마무리하는 전시회를 열고픈 마음이 몇 년 전부터 가슴 속에 치솟았다. 혼신을 다해 그림을 그렸지만 결과물은 항상 성에 차지 않았다. 어려운 날들에 대한 한풀이 때문일까, 욕심이 앞섰다. 그러던 어느 날 머리를 치는 깨달음이 있었다. 마음에 속기(俗氣)가 있으니 그림에 드러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었다.
16살에 붓을 잡아 내년이면 그림인생 환갑이었다. 꾸역꾸역 작업을 해 이제 세상에 내놓아도 되겠다, 내년에는 전시회를 해도 되겠다 싶었다. 하지만 가슴 한편에는 불편함이 남았고 망설여졌다.
그러던 차에 불이 났다. 긴가민가하던 잡념이 불과 함께 사라져 버렸다. 허허로운 웃음이 아니었다. 장고 끝에 답을 찾은 듯 가슴이 뻥 뚫리는 듯한 웃음이 터졌나왔다. 윤 화백의 솔직한 고백이었다.
◆ 75살, 다시 새로운 시작
불에 탄 평생의 역작 앞에서 호탕하게 웃는 윤 화백, 그런 아버지를 위해 잿더미 위에서 연주를 하는 딸 수연 씨. 부전여전, 부녀가 새 출발을 얘기하고 있다. (사진=임상훈 기자)
불은 많은 것을 앗아갔지만 새로운 기회를 줬다고 윤 화백은 말했다. 다시 처음부터 새롭게 시작할 생각이다.
윤 화백은 "다 털어버리고 무일푼이지만 효녀 딸내미가 있고, 항상 응원해 주는 팬(이웃)들이 있어 든든하다"고 말했다.
당장의 계획은 없지만 아주 예전에 그랬듯 다시 "무에서 유를 창조해 나갈 생각이다"고 덧붙였다.
청우헌에는 윤 화백의 화실 뿐 아니라 플루트 연주자인 딸 수연 씨의 연습실도 있었다. 부녀의 작업실과 연습실이 모두 사라진 것이다.
아수라장이 된 잿더미 위에서 수연 씨는 아버지를 위한 청우헌에서의 마지막 공연을 열었다. 수연 씨가 플루트로 '렛잇비(Let it be)'를 연주하는 사이 윤 화백의 얼굴에 또 한 번 미소가 번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