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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부와 조카의 사랑,100년 전 일본의 문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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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신생', 시마자키 도손 지음

 

일본 근대문학의 역사를 일신했다는 절찬을 받은 시마자키 도손의 자전적 소설 '신생(新生)'이 출간되었다.

상처한 중년 작가 기시모토 스테키치와 그의 집안일을 돌봐주는 열아홉 살 조카 세쓰코. 세쓰코가 스테키치의 아이를 임신하자 그는 참회하며 관계를 정리하고자 파리로 떠난다. 하지만 1차 대전이 발발해 3년 만에 집으로 돌아오고, 홀로 아이를 낳아 입양시킨 세쓰코는 몸도 마음도 피폐해진 상태다. 스테키치는 책임감을 느끼며 세쓰코를 돌보기 시작하고, 둘은 다시 남녀로서 마주하게 된다.

사소설(私小說)이 세력을 떨치던 다이쇼 시대, 일본 문학은 작중 인물의 모델, 혹은 작가의 실생활을 적극적으로 작품에 대입하여 해석하는 풍토가 있었다. 작품은 작가의 실제 삶의 반영이라는 인식이 강했던 것이다. 그리고 1918년 시마자키 도손은 아사히신문에 자신과 조카의 관계를 고백한 작품 '신생;을 연재한다. 일본 사회에 파문을 일으킨 이 작품은, 적나라한 자기 고백을 통해 삶의 진실을 그리고자 하는 일본 근대문학의 한 단면을 보여주며 문학사에 이름을 남겼다.

스테키치(도손)는 모든 관계를 끊고 참회하기 위해 프랑스로 도피했다고는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는 그곳에서 작가로서 새로운 방향을 모색했고, 세쓰코(고마코)는 남아 있는 자에게 지워진 짐을 온몸으로 고통스럽게 받아 견뎌야 했던 것이다.
세쓰코가 임신을 고백한 뒤부터 프랑스 도피 생활까지를 담은 1부에는 조카딸 세쓰코의 운명에 대한 걱정이나 도손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한 반성은 들어설 여지가 없다. 그는 심지어 여성을 멀리하고 살던 자기가 이런 처지에 놓이게 된 것을 한탄하기만 한다.

하지만 2부에 들어 조심스레 마음을 열고 사랑을 나누는 두 사람의 모습은, 설정만 달리하면 여느 안타까운 연인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세쓰코가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여 파리로 떠난 기시모토를 한결같이 기다리던 것과 달리 사회적 관념을 버리지 못하고 둘의 감정을 부정하던 주인공 스테키치도 어느새 마음을 열게 되고, 둘은 비밀스럽고 감미로운 사랑을 이어나간다.

다른 사람의 눈을 피해 필담으로 이어나가는 이들의 사랑은 사회적 맥락을 떼어놓고 보면 어느 순간 안타깝기까지 하다. 그들의 사랑은 깊어져, “숙부와 조카는 도저히 결혼할 수 없는 건가” 하며 사회적 금기에 질문도 던져보지만, 이에 대한 대답은 한숨일 뿐이다. 스테키치는 프랑스에서 돌아오며 모든 상황을 정상으로 돌리기 위해 재혼을 결심했었으나 포기하고, 세쓰코와 혼인은 하지 못할망정 평생 함께할 것을 약속한다. 세쓰코도 동의하며 심지어 스테키치의 어린 자식들이 성장했을 때 끼칠 영향까지 생각하는 속 깊은 모습을 보인다.

이런 수많은 제약 속에서도 사랑은 순간이나마 두 사람을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봄을 맞이하는 사람”으로 만들어주고, 세쓰코는 두 사람이 “분명 최후의 승리자”가 될 거라는 희망을 안고 산다. 하지만 이들에게 주어진 결말은 사회적 틀을 벗어나지 못한다. 스테키치는 현실을 받아들이듯, 고통의 새장에서 날려 보내듯 세쓰코의 외유를 적극적으로 지지하며 추진한다.

100년 전 일본에서 여성의 위상은 어떠했을까? 직업을 갖는 여성은 극소수이고, 결혼하지 않은 여자는 사람 취급도 받지 못하는 시절이었다. 그리하여 손이 아파 집안일도 하지 못하고 집안일에 쓸모가 없는 여성으로서 시집도 갈 수 없는 세쓰코는 장애인, 잉여인간 취급을 당한다. 이런 100년 전 잉여인간인 세쓰코는 오늘날의 시각에서 보면 이 책에서 가장 돋보이는 등장인물이다.

'신생'에서 언뜻 비치는 세쓰코의 교양이나 문장은 대단히 뛰어나다. 세쓰코가 숙부에게 보낸 많은 편지에서 이야기한 부모 자식 간의 문제나 세상에 대한 시각은 당시 여성이 보여주기 힘든 주체성과 통찰력을 가지고 있다. 숙부와의 반사회적 관계 때문에 한 여성으로서의 삶은 고단했을지 모르나, 저명한 작가인 숙부의 작업을 도우며, 숙부와의 교감에서, 당시 일본 여성이 누리기 힘든 교육을 받으며 성장했던 것이다.

실제로 세쓰코의 모델인 도손의 조카 고마코는 후에 그리스도교도가 되기도 하고 무산자 운동에 참여하기도 했다. 서른다섯 살 때 사회주의자와 결혼했으나 그녀의 남편은 1928년 3 · 15 사건으로 검거되어 투옥되었고 출옥 후 딸을 낳았지만, 곧 이혼한다. 1937년에는 '비극의 자전'을 발표하기도 했다. 고마코는 여기서 소설 '신생'은 “거의 진실을 기술하고 있다. 하지만 숙부에게 불편한 부분은 가급적 말살되었다”고 했다. 고마코는 도손을 격렬하게 증오하기도 했으나 만년에는 설사 자신이 그의 작품을 위해 희생되었다고 해도 예술에 목숨을 걸었던 숙부를 이해하고 용서해야 했던 것이 아닐까,라고 생각하게 됐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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