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 전쟁'은 정부의 일방적인 증세 과정을 살펴보고, 그 문제점을 하나하나 짚어 낸다. 정부의 주장을 조목조목 비판하면서, 세금 낼 돈도 없는 직장인과 영세 자영업자의 입장을 대변한다. 저자인 신승근 한국산업기술대학교 교수는 국세청에 다년간 근무했던 경험, 국회의원 보좌관으로서 조세정책을 연구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이 책을 썼다.
정부는 세수 부족을 이유로 세금을 더 걷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그동안 정부는 담뱃값도 올리지 않고, 월급쟁이에게 세금을 더 뜯어내지 않고도 어떻게 나라 살림살이를 해 왔다는 말인가? 그 전에는 지금보다 법인세율이 더 높았기 때문이다. 현재의 세금 전쟁을 촉발한 직접적인 원인은 이명박 정부의 부자 감세 정책에 있다. 법인세율 인하로 대표되는 대기업 감세로 인한 세금 부족액은 6조 원에서 10조 원 내외로 추정된다. 담뱃세를 2000원 올리고, 월급쟁이들에게 1조 원을 더 추징해도 모자라는 금액이다.
사람들은 말한다. “법인세를 올리든 말든 내가 내는 세금만 줄여 달라”고. 그러나 그럴 수가 없다. 대기업이 내는 세금이 줄어든 만큼, 심지어 재벌이 절세한 세금까지도 고스란히 개인들의 세금 부담으로 돌아온다. 결국 나라 살림살이를 위해서는 세금이 필요하고, 우리는 누군가가 덜 낸 세금을 다른 누군가가 더 낼 수밖에 없는 제로섬(zero-sum) 구조에 갇혀 있다. 그 구조 속에서 월급쟁이와 영세 자영업자가 대기업과 재벌의 세금을 대신 내주고 있는 꼴이다.
정부는 이제까지 일관성 없는 조세정책을 시행해 왔다. 2013년에는 ‘가업상속공제 확대’를 확고히 반대하다가 2014년에는 ‘명품장수기업’이라는 단어까지 만들어 가며 ‘가업상속공제 확대’를 관철하는 식이다. 2014년에 ‘세수 부족’을 이유로 ‘수용 불가’라고 한 ‘일자리 창출’과 관련된 세법을 2015년에 정부가 직접 발표하기도 했다. 다음 해 경제성장률 예측도 틀리기 일쑤다. 경제가 많이 성장할 거라 전망하고 지출도 그만큼 늘려 놓았는데 세금이 덜 들어오면, 또 빚만 늘어나고 만다. 심지어 2015년에는 세금을 소급해서 깎아 주는 조치를 단행하기도 했다. 모임에서 회비부터 걷어 놓고 회원들 원성이 자자하자 조금씩 다시 돌려준 꼴이다.
정부의 입맛대로 조세정책을 결정할 수 있는 건, 2014년부터 시행된 ‘세입예산안 부수 법률안 자동부의제도’라는 신무기를 통해서 가능했다. 예산안 논의를 끝내야 하는 법정 기한까지 관련된 법이 의결되지 않으면, 국회의장이 이를 본회의에 직권 상정하는 제도다. 조세법 제정·개정 논의는 깊이 있는 검토와 토론이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예산안 부수 법안이라는 이유로 논의가 제약되는 모순되는 상황에 직면하고 말았다. 결국 이와 같은 졸속 심의는 2014년 국회 본회의에서 상속세 및 증여세 법 개정안이 부결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국가 재정은 장기적인 안목을 갖고 체계적인 계획을 세워 논의를 해야 한다. 매년 정부가 직전 연도와 모순되는 조세정책을 시행하면 국민은 그러한 정부를 신뢰할 수 없다. 나라 살림살이가 갈수록 커져서 세금을 더 걷어야 한다는 목표를 설정했으면, 어떤 정책 수단이 가장 합리적인가를 탐색한 후에 비교, 선택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결론을 내놓고 한쪽 방향으로 몰아세우는 방식은 정부의 의사를 관철시킬 수 있을지 모르지만, 국민을 설득하는 데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
주세와 부가가치세 인상을 둘러싼 논의가 무성하다. 이미 국책연구원을 비롯한 국가 단체가 주세 인상을 주장하면서 국민 여론을 살피고 있는 형국이다. 이를 막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 책은 이제 국민들이 나서야 할 차례라고 말한다.
책 속으로
우리나라는 최근 법인에 대한 세율을 줄여 주는 방식으로 기업에 투자해 왔다. 그러나 별다른 수확이 없었다. 대기업이 줄어든 세금을 갖고 투자와 고용을 확대해서 기업이 성장하는 데 사용하지 않고 금고에 돈을 쌓는 데 급급했기 때문이다. 기획재정부 장관도 법인세 감세 정책의 실패를 인정했다. 결국 세율을 낮춰 준다고 국가 세금이 더 늘어나지는 않았다. 법인세율을 낮춰 주면 대기업이 더 많은 투자를 해서 경제가 활성화될 것이라는 기대는 잘못된 것으로 결론이 난 꼴이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법인과 개인 간의 세금 전쟁이 도사리고 있다. 대기업이 세금을 적게 낼수록 개인이 많이 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15쪽)
올해도 정기국회 내에서 예산안이 무난하게 통과될 것이다. 무슨 세금이 오를지 알고 싶으면, 정부나 국회의장에게 물어보면 된다. 정부가 제출한 세법 제정안과 개정안을 국회의장이 ‘예산 부수 법안’으로 지정해서 12월 2일 예산안과 함께 자동상정한 다음 처리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더 이상 대한민국에서 “대표 없이 조세 없다”는 말은 통하지 않는다. 정부가 만든 세법을 국회의장이 지정만 하면, 다수결에 의해 국회에서 통과되기 때문이다. 지난한 몸싸움과 짜증 나는 토론을 대신한 것은 ‘일사천리 통과’라는 다수결의 횡포다. 이제 새로운 전쟁이 시작됐다. 국회법이 바뀌지 않는 이상, 이제는 국민들이 나서야 한다. (17~18쪽)
소득세는 계속 늘어나고 있는 반면, 법인세는 감소하거나 거의 변화가 없다. 특히 소득세는 2015년에 약 58조 원이 들어올 것으로 예상하고 예산을 편성했음을 알 수 있다. 2013년보다 10조 원이 증가한 것이다. 대기업이 내는 세금이 줄어든 만큼, 심지어 재벌이 절세한 세금까지도 고스란히 개인들의 세금 부담으로 돌아온다. 그래도 상관없는 일인가? 대기업과 재벌이 세금을 내지 않는 만큼 영세 자영업자와 월급쟁이가 세금을 더 많이 낼 수밖에 없는 제로섬(zero-sum) 구조에 갇혀 있으면서도 정작 본인들은 제3의 길을 찾고 싶어 한다. 그러나 다른 방법은 없다. (19쪽)
2014년 말, 정부는 2015년 예산 계획을 세우면서 2015년 경제성장률을 4퍼센트로 전망했다. (……) 그런데 정부가 4퍼센트라는 경제성장률에 맞춰 살림살이 계획을 다 정하고 나서, 즉 국회에서 예산이 다 통과되고 난 다음에 한 달도 되지 않아 경제성장률을 3.8퍼센트로 낮춰 발표했다. 경제성장률 0.2퍼센트가 한 달도 지나지 않아 오락가락한 셈이다. 그런데 결과는 어땠는가? 2015년 경제성장률은 정부의 예상과는 전혀 달랐다. 2.6퍼센트. 처음 예상했던 4퍼센트의 절반 정도에 그쳤다. 정말 ‘어처구니’ 없는 이야기다.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지출은 많이 할 것으로 계획을 다 세워 놓고 수입은 덜 들어오면, 또 빚만 늘어나고 만다. 이런 식으로 하니까 수년간 세수가 부족한 사태가 발생했고, 국가 부채는 급속히 늘어났다. (40~41쪽)
지금 우리나라 근로자는 세금을 제대로 내지 않는 것이 아니라, 월급이 너무 적다 보니 세금을 낼 여력이 없는 것이다. 세금 낼 정도로 벌지를 못한다. 한 달에 200만 원도 안 되는 돈으로 한 달 버티기도 벅차다. 2006년부터 ‘소득 없는 성장’을 하고 있다는 단적인 결과 아니겠는가? 수출은 계속 증가해서 사상 최고치를 갱신하고 있는데, 도무지 월급은 오르지 않는다. 그 돈은 대기업 금고에 차곡차곡 쌓여 갈 뿐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한 달에 200만 원도 채 못 벌지만 껌 한 통만 사도 부가가치세는 꼬박꼬박 내고 있다. 삼성전자 회장도 현대자동차 회장도 똑같이 10퍼센트씩 낸다. 그렇게 거둬들인 세금이 우리나라 세금 중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부가가치세다. 그런데 세금을 제대로 안 낸다고 할 수 있는가? (91~92쪽)
매년 정부가 직전 연도와 모순되는 조세정책을 시행하면 국민은 그러한 정부를 신뢰할 수 없다. 정책 결정을 하면서 대안을 탐색하고 비교하는 기본적인 과정조차 거치지 않고 결론을 내놓고 한쪽 방향으로 몰아세우는 방식은 정부의 의사를 관철시킬 수 있을지 모르지만, 국민을 설득하는 데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 (21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