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자료사진)
농협중앙회의 입지가 흔들리고 있다. 정부가 회장의 선출 방식에서부터 사업구조 개편까지 강도 높은 농협 손보기에 착수한 데 따른 것이다. 여기에는 농협중앙회 회장의 권한 축소가 주요 골자다.
비상임이지만 농협 내에서 무소불위의 권한을 행사하는 회장 자리이기에, 늘 크고 작은 비리 사건들이 발생해온 것도 농협법 개정에 나선 이유 가운데 하나가 됐다.
◇ 검찰, 최덕규 조합장과 연결고리 찾는데 수사력 집중올해 1월 취임한 김병원 회장 선거 때에도, 선거 초반부터 과열 양상을 보이며 부정 선거 의혹이 여기저기서 터져나왔다.
실제로, 올해 초에는 농협중앙회장 선거에 출마했다가 낙선한 최덕규(66) 합천가야농협 조합장이 구속됐다. 선거 당일에 선거운동을 벌이고, 지난해 6∼12월 농협중앙회의 일부 임직원을 동원해 대의원들을 상대로 사전 선거운동을 한 혐의 등에 따른 것이다.
공공단체 등 위탁선거에 관한 법률에 따라 선거 당일에는 어떤 형태의 선거운동도 할 수 없다. 검찰은 예선투표에선 2위에 그친 김 회장이 최 조합장 측의 문자 발송 이후 결선에서 이긴 점에 주목하고 있다.
검찰은 조만간 당선자인 김병원 현 농협중앙회장도 소환조사할 방침으로 알려졌다. 최 조합장과 김 회장 간에 모종의 ‘이면거래’가 있었던 것 아닌지 의심하는 검찰은 조만간 김 회장을 소환해 이 점을 집중 조사할 계획이다.
현 회장이 검찰 조사를 받아 혐의가 드러나면 사상초유의 사태가 발생할 수 있는 만큼 농협중앙회 내부에서는 검찰수사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 정부의 강도높은 개혁, '호선(互選)제'와 조직 개편직선제의 폐해와 함께, 경제와 금융지주로 나눠져 책임운영이 가능해진 마당에 뚜렷이 하는 일없이 지주사들에 재정적 부담만 안기는 농협중앙회의 정체성 때문에 농협조직개편은 농식품부의 개혁과제 가운데 하나로 부상한 지 오래다.
정부는 농협중앙회에 강도높은 개혁에 착수했다. 사실상 조합장들이 돌려먹기 식으로 해오던 간선제에 대한 수술에 착수한 것이다. 지금까지는 291명의 대의원이 중앙회장 선출 권한을 가졌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대의원은 지역 조합장들이 돌아가면서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귀띔했다.
사실상, 직선제와 다를 바 없다는 얘기다. 이에 호선제를 통해 회장을 선출하게 하는 한편, 사업구조 개편을 통해 회장의 권한을 대폭 축소하겠다는 게 정부의 방침이다. 호선제는 30명으로 구성된 이사회 구성원 중에서 농협중앙회장을 선출하는 방식이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이 같은 내용의 '농업협동조합법 일부개정안'을 지난달 19일 입법예고했다. 이번 개정안은 농협의 사업구조 개편과 맞물려 농협중앙회와 농협경제지주의 역할을 분명하게 명시하고 있다.
이에 따라 농협중앙회에서 하고 있는 경제 사업이 농협경제 지주로 완전 이관하게 된다. 지난 2012년 2월 사업구조 개편 후 농협경제지주와 농협금융지주가 설립됐음에도 중앙회에서 경제 사업을 하고 있는 것에 대한 후속조치인 셈이다.
정부는 이에 대해 "농협중앙회가 조합의 지도와 지원 역할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런 연장선상에서 농협중앙회 이사회에는 조합의 발전 계획 등을 의결하는 기능이 신설된다.
이렇게 되면 중앙회는 새마을금고중앙회와 같이 사실상의 지역 조합장에 대한 관리·감독 권한만 남게 된다. 사실상 중앙회 회장과 지역 조합장의 권한은 대폭 축소되는 셈이다.
김병원 농협 중앙회장 (사진=황진환 기자/자료사진)
◇ 손발 잘려나간 중앙회 회장
또한 내년 2월 농협중앙회의 경제사업이 경제지주로 완전 이관되면 농·축산경제 대표, 전무이사 등 사업전담 대표에게 위임·전결토록 했던 농협중앙회장의 업무규정은 삭제된다. 농협중앙회 이사회 의결사항도 농협중앙회가 직접 수행하는 내용으로 한정된다.
지금까지 농협 내 각종 사업과 인사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중앙회장의 경제사업에 관한 직접적인 권한이 사실상 모두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조합원 자격도 강화된다. 농업인이 아니거나 농협의 경제사업을 이용하지 않는 조합원은 조합 총회 의결을 통해 조합원 자격을 박탈할 수 있게 된다. 현재 농협경제사업을 이용하지 않는 조합원은 총 조합원의 19.1%에 이른다.
또 농협 경영투명성 강화를 위해 농협중앙회 감사위원장 등은 외부 전문가로 채워야 한다. 일정 규모 이상의 조합은 전문성을 갖춘 상임감사를 의무적으로 도입토록 했다.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협동조합은 이사회 중심의 공동 의사결정 구조인데, 농협중앙회장은 비상임이므로 선거를 통한 선출방식은 적합하지 않다"며 "외국 대부분의 선진 협동조합도 이사회 호선을 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번 개정안이 국회로 공이 넘어감에 따라 국회에서는 개정안에 대해 이르면 오는 8월쯤 논의가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