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내 유치원 방과후 전담사들이 지난달 25일 경기도교육청 앞에서 처우 개선 등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사진제공=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경기지부)
공립유치원에는 임용고시에 합격한 교사들이 진행하는 '정규 수업'과 '방과후 수업'이 있다.
맞벌이 부모 등으로 오후까지 남아 있는 아이들을 돌보고 가르치며 방과후 수업을 담당하는 교사들. 그들이 바로 '방과후 전담사'다.
원생들과 함께 식사를 하며 식사예절을 가르치는 것에서부터 방과후 수업은 물론 안전한 귀가까지, 정규수업 이후에 이뤄지는 모든 일들이 그들의 몫이다.
방과후 전담사들은 보육교사 2급이나 유치원 정교사 자격증이 소지해야 하지만 임금이나 복지, 처우 등 신분이 보장된 교사와는 달리 공립유치원에서 채용한 무기계약직이다.
이러다보니 방과후 전담사들은 부당한 업무지시를 받거나 차별대우를 받아도 참고 다닐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 '부드러운' 명령…"거절했다가는 견디지 못해요"
박승혜(49·여·가명)씨가 방과후 전담사로 일하고 있는 경기도 성남의 한 초교 병설유치원.
오후 내내 혼자서 20명이 넘는 아이들을 돌보려면 잠시도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바쁘지만, 방과후 전담사들의 불만은 따로 있다.
고용만 보장된 무기계약직이라는 이유로 참고 떠안아야 하는 '내 일이 아닌' 것들. 차분하고 부드러운 말투로 포장된 교사들의 지시들. 하지만 따를 수밖에 없는, '하녀'나 다름없는 스스로의 모습에 비애를 느낀다.
"매일 제 일이 아닌 부당한 업무들이 쏟아져요. 하지만 '제가 할게요'라고 납작 엎드리지 않으면 견디기 힘들어요."
올해 초 교육청으로부터 공문이 한 장 내려왔다. '방과후 전담사의 업무가 과중하니 행정업무를 시키지 말라'는 내용이었다. 공문이 내려온 날, 박씨는 교장실로 불려갔다.
"교장 선생님이 공문 보여주면서, 이거(행정업무) 선생님이 하던 거니까 그냥 하는 게 편하지 않겠냐고 하더라고요."
박씨는 교장의 제안을 뿌리치지 못했다. 제안이 아니라 명령이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박씨는 "제가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라며 허리를 숙여야 했다.
"안 그러면 견딜 수 없어요. 전담사들이 조금만 교사들 마음에 안들면 굉장히 차갑게 대해요. 같은 공간에서 숨쉬기조차 힘들죠. 저희는 혼자니까요."
◇ "애들 놀게 하고, 교구정리 하세요"행정업무는 둘째 치고 온갖 잡일도 방과후 전담사들의 차지다.
또 다른 방과후 전담사 김지수(47·여·가명)씨는 어느날 자신의 자리에 놓인 일기장 하나를 발견했다. 같은 반 교사가 놔둔 것이었다.
처음에는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겠다 싶어 그날그날 아이들에게 있었던 일들을 적었다. 기대는 오래가지 못했다.
어느 순간부터 일기장은 교사가 방과후 전담사에게 내리는 '지시서'가 돼 버렸다.
'손이 닿지 않는 TV 뒤에 있는 먼지까지 닦아주세요', '먼지가 있으니 창틀을 깨끗이 닦아 주세요' 등의 지시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이어졌다.
"하루는 교사가 앞으로는 오전에 본인이 사용한 교구들도 좀 정리해달라고 하더라고요. 제 일도 아니고 애들 봐야해서 시간이 없다고 하니까, 어이없게 애들 놀게 하고 교구정리 하라고 하더라고요. 정중히 거절했죠."
이후 김씨에게 돌아온 건 근무평가 '꼴찌'와 교장의 핀잔이었다.
"부당한 지시를 받으면서도 참고 넘길 수 밖에 없어요. 교사들과의 관계도 그렇고, 자칫 잘못 소문나면 주변에서 안좋은 시선으로 볼 수 있으니까요."
늦은 밤, 설거지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휴대폰 스피커에서 쏟아지는 교사의 고성을 듣고도 참을 수밖에 없는 방과후 전담사들.
이들은 교사의 대우까지는 아니더라도 현장에서 인권침해나 차별 등만이라도 발생하지 않도록 교육청의 철저한 지도·감독 강화를 요구하고 있다.
경기도교육청은 이와 관련해 '방과후 전담사 관리 지침'을 만들어 지난해 2월 유치원에 보낸 바 있다.
이 지침에는 방과후 전담사의 수업보조 업무 금지, 업무보조·(유치원)주변 정리 지시 지양, 행사 동원 자제, 근무시간 임의 변경 금지 등의 내용이 담겼다.
하지만 방과후 전담사는 관계 법령에 따른 직종이 아니라 교육청 자체 지침에 의해 만들어진 직종인 만큼 해당 지침을 권고할 뿐 강제하지는 못해 일부 유치원에서 제대로 이행되지 않고 있다.
이런 가운데 방과후 전담사들은 민주노총 산하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과 연계해 오는 9일과 10일 임금체계 개편과 인권침해·부당업무지시 근절 대책 마련 등을 요구하며 총파업에 참여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