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대여성인권센터 등 178개 여성.청소년 단체 회원들이 지난 16일 오전 서울 서부지법 앞에서 만13세 지적장애 아동(가명 하은이)을 성매수한 가해자를 아동에 대한 침해가 없어 배상할 필요가 없다고 판결한 재판부에 대해 규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윤창원 기자/자료사진)
13세 지적장애아에게 6명의 남성이 차례로 성관계를 하고 달아난 '하은이(가명·당시 13세) 사건'을 법원이 성매매로 규정했으나, 앞서 비슷한 사건을 다른 재판부는 '성폭행'으로 판단한 것으로 드러났다.
고무줄 잣대에 따른 엇갈린 판단이 이어지면서 재판부마다 '복불복' 판결이 이뤄지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 "장애인인 줄 몰랐다?" 징역 2년 6개월 선고지난 1월 광주지법 순천지원 형사합의1부(정상규 부장판사)는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아청법)상 장애인간음 혐의로 기소된 박모(27)씨에 대해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했다.
박씨는 지난해 6월 스마트폰 채팅 애플리케이션(앱)으로 만난 여고생 지적장애인 A(16·여) 양을 자신의 집으로 데려가 성폭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박씨는 법정에서 "동의 하에 성관계를 한 것"이라며 "A 양이 지적장애가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고 주장했으나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A 양은 성적 자기결정권을 행사할 능력이 부족하다"며 "박씨가 이를 미필적으로나마 인식했다고 봄이 상당하다"고 판시했다.
◇ 고등법원 "아동·청소년 성범죄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
같은 달인 지난 1월 대전고법 형사합의1부(유상재 판사)는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상 장애인 위계 등 간음 혐의로 기소된 김모(41) 씨의 항소심에서 원심을 파기하고 징역 4년을 선고했다.
김씨는 지난해 4월 마찬가지로 스마트폰 채팅으로 만난 B(10) 양에게 용돈 10만원을 건네고 성폭행한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졌다.
징역 1년 6개월형을 선고한 1심 판결의 형이 무겁다며 항소한 김씨에 대해 재판부가 오히려 형을 더 높인 것.
당시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최근 아동·청소년 성범죄는 엄히 처벌해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있다"고 밝혔다.
◇ '복불복' 판결, "판사마다 천차만별…무책임하다"
'하은(가명·당시 13세)이'가 실종 당시 신었던 신발과 매일밤 끌어안고 자던 곰인형 (사진='하은이' 어머니 제공)
하지만 법원은 같은 수법의 사건 가운데 유독 '하은이'에 대해서만 단순 성매매로 판단, 손해배상 청구소송까지 기각했다.
서울동부지법 형사9단독 재판부는 아청법상 성매수 혐의로 기소된 양모(25) 씨에게 벌금 400만원을 선고하며, 하은이가 지적장애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이어 서울서부지법 민사21단독 재판부는 "형사판결에서 인정된 사실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함부로 배척할 수 없는 유력한 자료로 본다"며 하은 모녀가 양씨를 상대로 치료비 등을 요구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기각했다.
이에 대해 장애여성공감 배복주 소장은 "어떤 판사를 만나느냐에 따라 판단이 균일하지 않다는 건 심각한 문제"라며 "특히 판사 개인의 상식과 경험에 따라 장애인이 성적 자기결정권을 갖고 있는지에 대한 판단이 너무 천차만별"이라고 밝혔다
전국장애인부모연대 박인용 이사는 "엇갈리는 판결이 그저 웃기고 납득이 가지 않는다"며 "판사들이 장애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무책임하게 기계적으로 증거를 파악한 것 같다"고 비판했다.
하은이의 법률대리를 맡은 서울시복지재단 공익법센터와 여성인권단체 대표들은 지난 17일 법원(민사 재판부)에 항소장을 제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