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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서도 빛나는 '위르겐 힌츠페터'의 기자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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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을 향한 열망, 위험을 무릅쓴 진실의 기록

(사진=자료사진)

 

5.18 광주민주화운동 36주년을 맞아 다시 조명을 받고 있는 인물이 있다.

1980년 5월 광주의 진실을 가장 처음 전 세계에 알린 '푸른 눈의 목격자' 위르겐 힌츠페터(Jürgen Hinzpeter, 1937년 7월 6일~2016년 1월 25일). 바로 그이다.

당시 독일 제1공영방송 기자였던 그는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현장을 영상에 담아 언론통제로 인해 국내에서는 보도될 수 없었던 광주의 참상을 외국에 알리는 데 큰 기여를 했다.

'나는 그사람들이 외치는 소리를 들었다. 진실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가도 알 수 있었다. 내필름에 기록 돼 있는 것은 모두 피할 수 없는 진실이다.'

힌츠페터는 위험을 무릅쓰고 진실을 기록하고 전달하기 위해 헌신했고 그 기록은 그가 죽은 후에도 역사라는 이름으로 진실을 증언하고 있다.

그래서 광주는 36년이라는 긴 시간이 지난 뒤에도 그의 정신을 잊지 못하고 빚을 진 심정으로 감사하고 있다.

지난 1월 독일 라체부르크에서 사망한 故 위르겐 힌츠페너는 16일 부인 프람스티트 에렐트라우트 여사등 유족과 5·18 민주화운동을 현장에서 취재한 브래들리 마틴(미국 더 볼티모어 선), 도널드 커크(미국 시카고트리뷴) 등 외신기자 4명, 사사모 구스마오 동티모르 전대통령 등의 추모 속에 그의 소원대로 광주에서 영면에 들었다.

힌츠페터 기념비 제막식과 추모식이 열린 16일 망월동 5.18 구묘역에서 만난 광주시민들은 한결 같이 '그에게 큰 빚을 졌다'고 입을 모았다.

그는 베트남 전쟁을 취재하다가 부상을 당하고 독일 제1공영방송 도쿄 지국으로 옮겨가 1973년부터 1989년까지 17년간 특파원으로 근무했다.

일본특파원으로 지내는 동안 몇 차례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던 힌츠페터는 1980년 5월 19일 도쿄에서 한국으로 들어와 20일 오전에 광주로 잠입한 뒤 23일까지 5.18의 현장에서 광주의 참상을 생생하게 카메라에 담았다.

그가 촬영한 필름은 큰 금속캔 속에 포장해 과자더미 속에 숨겨 일본으로 반출된 뒤 함부르크의 뉴스센터에 전달돼 독일에서 수차례 방송됐고 외국의 다른 언론들도 이 영상을 받아 광주민중화운동을 보도함으로써 전세계에 알려지는 계기가 된 것이다.

또 그 해 9월에 '기로에 선 한국(SÜDKOREA am Scheideweg )'이라는 다큐멘터리로 제작 방송됐다.

이 다큐멘터리가 국내로 반입돼 80년 당시 대학생들 사이에서 광주의 진실을 알리는 자료로 활용되기도 했다. 군사독재 시절 대학생들의 민주화운동이 지속적으로 이어 질 수 있었던 것도 이런 자료를 통해 광주의 진실을 알았기 때문일 것이다.

광주에 잠입한 힌츠페터는 공수부대원들이 죽인 희생자들의 주검을 본 상황을 이렇게 증언했다.

"내 생애에서 한번도 이런 비슷한 상황을 목격한 적이 없었다. 심지어 베트남 전쟁에서 종군기자로 활동할 때도 이렇듯 비참한 광경은 본 적이 없었다. 가슴이 너무 꽉 막혀서 사진 찍는 것을 잠시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오랫동안 묻혔거나 왜곡돼 오도됐을 광주의 진실이 한 외국기자의 진실에 대한 열망으로 전 세계로 알려졌고 이 것이 다시 한국으로 들어와 5.18의 진실규명과 책임자 처벌의 주춧돌이 된 것이다.

(사진=자료사진)

 

힌츠페터는 지난 2004년 심장질환으로 생명이 위독해지자 '광주에 묻히고 싶다'는 유언을 했고 광주시와 5월단체 등이 힌츠페터에게 명예시민증을 수여하고 5.18묘지에 묻힐 수 있게 했다.

힌츠페터는 2016년 1월 라체부르크에서 79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했고 그의 유품 일부가 5.18 민주화운동 36주년을 맞아 5.18 구묘역에 안치돼 그의 유언대로 '광주'에서 영원히 잠들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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