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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재정착민 여성의 사진 필름에 왜 구멍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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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기된 사진의 귀환: 미 농업국 펀치 사진'전, 갤러리 룩스

벤 샨, 재정착민 가족, 아칸소, 1935(사진=갤러리 룩스 제공)

 

'재정착민 가족, 아칸소, 1935, 벤 샨'(바로 위 사진) 사진 필름은 구멍이 뚫려 있다. 이 사진의 구멍(펀칭)은 더 이상 사용할 수 없도록 폐기 조치된 것임을 의미한다. 문제될 게 없을 것 같은 이 사진이 왜 이렇게 되었을까? 이는 미국의 대공황과 관련이 있다.

1930년대 미국 농업안정국(Farm Security Administration)은 1929년 대공황에 대처하기 위해 농촌 지원 사업에 나선다. 이에 따라 농업국은 정부 보조금을 확보하기 위해 농촌의 피폐한 실상을 사진에 담아 의회와 언론에 적극 알리는 작업을 하게 된다. 이 사진 작업을 위해 여러 사진 작가들을 동원해 농촌 실상을 샅샅이 사진에 담나낸다. 목적에 맞는 사진은 언론에 배포하고, 목적에 맞지 않는 사진은 구멍을 뚫었다. 전체 27만 중 10만장에 구멍이 뚫렸다.

흑인·멕시코인을 담은 사진은 공식 파일에서 배제됐다. 미국 백인 농부들을 지원하는 것이 주된 목적인데, 흑인· 멕시코인의 사진을 들어가면 정부 지원의 촛점이 흐트러질 수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사진이론가 박상우씨는 분석했다.

그렇다면 '재정착민 가족'은 왜 배제됐을까? 박상우씨는 "이 사진속 여성의 인상이 너무 강하고 어둡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미국 농민의 전형은 선량하고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이고, 이런 모습을 담아야 도움을 끌어낼 수 있는데, 이 사진 속 여성은 이에 맞지 않다고 생각해 뺐을 것이다"고 해석했다.

미 농업국은 너무 예술적으로 찍은 사진도 배제했다. 객관적이 기록이 중요하기 때문에 사진 작가들에게 너무 예술적으로 찍지 말라고 했다. 또 찍힌 인물이 카메라를 보고 있으면 배제했다. 연출된 사진으로 느껴지면 설득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반복된 컷이거나 실수한 컷은 당연히 구멍이 뚫렸다.

작가 미상, 무제, 1935-42 (사진=갤러리 룩스 제공)

 

사진가이자 사진이론가 박상우씨가 기획한 '폐기된 사진의 귀환: 미 농업국 펀치 사진' 전시회가 3일부터 열린다. 이번 전시에는 1930년대 미국 농업안정국의 거대한 사진 아카이브 중에서 펀치로 구멍이 뚫린 사진 250점이 선보인다.

펀치 사진은 당시 미 농업국 사진 아카이브의 책임자였던 로이 스트라이커(Roy Stryker)가 미 농업국의 이념에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된 사진 원본(필름)에 무차별적으로 구멍을 뚫어 사용할 수 없게 만든 사진이다. 스트라이커라는 권력에 의해 무참히 '살해된' 이 펀치 사진은 총 10만장에 달하며 미 농업국 사진가의 의지와 상관 없이 역사의 무덤에 지금까지 파묻혀 있었다. 이번 전시에서 당시 미 농업국 사진가로 활동했던 워커 에반스, 아더 로드스타인, 벤 샨, 칼 마이더슨, 러셀 리 등이 촬영한 사진 중에서 지금까지 공개된 적이 없는 펀치 사진들을 직접 만나볼 수 있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박상우는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은 이 하찮은 사진에 주목하는 이유는 이 펀치 사진이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는 사진에 관한 모든 '담론'을 뒤흔들 수 있는 결정적인 것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라고 전시의 의의를 밝혔다. 구체적으로 "이번 전시는 우선 다큐멘터리 사진의 역사는 실재를 투명하게 반영하는 역사가 아니라 인간의 선택과 배제라는 행위를 통해 '구축된' 역사라는 것을 상기시킬 것이고, 또한 다큐멘터리 사진과 사진 일반을 둘러싼 오래된 담론(객관성, 사실성, 진실성)이 얼마나 신화적이고 허구적인가"를 알 수 있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전시와 함께 『다큐멘터리 사진의 두 얼굴: FSA 사진 아카이브』(이영준·박상우 저, 갤러리 룩스, 경기문화재단 후원)가 출간된다.

또한 사진이론가 박상우, 이영준, 박평종 등이 참여하는 심포지움 "이미지 파괴와 새로운 사진이론"이 5월 13일(금)에 진행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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