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쿨(법학전문대학원) 입학 단계에서 현직 지방법원장이나 지방자치단체장 등 부모·친인척의 신상을 드러낸 사례가 최소 24건에 이르는 것으로 드러났다.
또 해당 로스쿨 교수의 자녀가 입학한 경우도 10건, 같은 대학 다른 전공교수나 교직원 자녀가 입학한 사례 역시 27건이나 됐다.
이른바 '현대판 음서제'란 세간의 속설이 사실로 확인된 셈이지만, 정부는 합격 취소나 명단 공개 없이 일부 로스쿨에 경고 조치만 내리기로 해 '솜방망이 처벌' 논란도 뒤따를 전망이다.
◈자기소개서의 '가족소개' 보니…법원장·검사장·로펌 대표 '수두룩'
교육부는 2일 오전 정부세종청사에서 브리핑을 갖고, 지난해 12월부터 지난 3월까지 전국 25개 로스쿨을 전수조사한 입학 실태 분석 결과를 발표했다.
최근 3년간 6천여 건의 입학전형을 들여다본 이번 조사에서 자기소개서에 부모나 친인척의 신상을 기재한 사례는 24건이 확인됐다.
교육부 이진석 학술장학지원관은 "이 가운데 부모나 친인척을 비교적 쉽게 추정 또는 특정할 수 있는 사례는 5건"이라며 "기재를 금지했는데도 이를 위반해 부정행위 소지가 인정되는 사례는 1건"이라고 밝혔다.
교육부는 이들 5건의 사례만 소개했지만, 이마저도 지원자는 물론 대학까지 'A'와 'B' 등 익명을 사용해 공개했다.
기재금지 규정을 위반한 1건은 "아버지가 ○○시장"이라고 자기소개서에 적었다. 또 3건은 "○○지방법원장", "법무법인 ○○ 대표", "○○공단 이사장" 등으로 아버지의 신분을 적시했고, 1건은 "외삼촌이 ○○변호사협회 부협회장"이라고 '자기 소개'를 했다.
나머지 19건은 '대법관'이나 '검사장', '○○법원 판사'나 '로스쿨 원장', '○○시의회 의원'이나 '○○청 공무원'인 아버지나 할아버지 등을 소개했다. 이 가운데 7건은 기재금지를 고지한 학교여서 전형요강 위반에 해당한다.
◈교육부 "부정행위 소지 있다"면서도…"합격 취소는 힘들어"
정부는 그러나 이번에 확인된 24건 모두 합격 취소 등 지원자 개인에 대한 후속조치는 하지 않기로 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부모나 친인척이 특정된 5건은 정성평가의 속성상 자기소개서와 합격의 인과관계를 확인하기 힘들다"며 "전형요강을 위반한 7건도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지원자의 부정행위로 인정될 소지가 있다 해도 △비례의 원칙 △신뢰보호의 원칙 △대학의 과실을 개인에 전가하는 문제점 때문에 합격 취소는 어렵다는 게 법률 자문 결과란 것이다.
이번 조사에선 또 또 해당 로스쿨 교수의 자녀가 입학한 사례 10건, 같은 대학 다른 전공교수나 교직원 자녀가 입학한 사례도 27건이 확인됐다. 이에 대해서도 교육부는 "모두 이해관계인 제척·회피 절차를 준수했다"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앞으로 '기재 금지' 유도키로…'눈가리고 아웅'식 뒷북 행정
교육부는 다만 기재를 금지해놓고도 이를 위반한 지원자에게 별도 조치를 하지 않은 경북대·부산대·인하대·제주대·충남대·한양대 등 6개 로스쿨에 '기관 경고'를 내렸다. 또 로스쿨 원장에겐 주의 조치, 학생 선발 책임자에겐 경고 조치를 내렸다.
기재 금지를 고지하지 않은 경희대·고려대·동아대·서울대·연세대·원광대·이화여대 등 7곳에 대해서도 "공정성을 훼손할 우려가 있는 부적정한 기재 사례가 발생했다"며 기관경고 및 주의 조치를 내렸다.
또 부정행위 소지가 있는 사례는 발견되지 않았지만 기재금지를 고지하지 않은 건국대·영남대·전북대에도 시정조치를 내렸다. 아예 응시원서에 보호자 근무처와 성명을 적도록 한 영남대·전남대에 대해서도 기관 경고하는 한편, 원장에 대해 경고 조치를 내렸다.
이진석 학술장학지원관은 "앞으로는 자기소개서에 부모나 친인척의 이름과 신상을 기재하지 못하도록 하겠다"며 "기재시 불합격 처리 등 불이익을 주도록 명문화할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법조계 "명단 공개 왜 못하나" 소송 등 뒤따를 전망하지만 정부의 이날 발표에 대해 투명한 명단 공개 등을 요구해온 각계각층의 반발도 불가피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