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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투아네트=악녀' 이미지, 전단지 통해 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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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은밀한 세계사'

 

'은밀한 세계사'는 성(性)과 폭력 등 어른들의 영역에 속하는 자극적인, 그러나 역사의 한 조각임에는 틀림없는 다채로운 이야기 14편을 모았다.

서두를 장식하는 이야기는 빅토리아 시대에 유행했던 '여성 히스테리'와 그 병이 낳은 기상천외한 발명품이다. 여성에게는 성적 욕망이 없으며, 순결하고 순수한 집 안의 천사, 가정의 빛으로 존재해야만 하고, 오로지 어머니가 되고 싶은 욕구만 존재하는 것으로 여겨졌던 빅토리아 시대의 수많은 여성들은 툭하면 신경질, 흐느낌, 우울, 호흡곤란, 짜증 등의 증세를 보이는 '여성 히스테리'라는 병에 걸렸다. 그리고 그런 환자가 생기면 의사나 산파가 달려와서 어른들끼리 귀엣말로나 전달할 만한 적절한 조치를 취해주곤 했다. 그리고 그런 치료법으로 인해 의사나 산파의 손목이 남아나지 않을 지경이 되었을 때 '기적의 발명품'이 선을 보인다. 그것은 과연 무엇일까.

마리 앙투아네트가 '나라를 말아먹은 천하의 악녀'가 된 이유도 흥미를 돋우는 꼭지다. 인쇄기술의 발달로 갓 등장한 잉크 냄새 폴폴 풍기는 '전단지'라는 것이 새롭고 신기한 물건이었던 프랑스 혁명 당시, 분노한 시민들의 표적이 된 적국 오스트리아 출신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에 대한 정치적인 프로파간다(선동)는 신기술인 인쇄기술과 결합한 전단지를 통해 파리로, 프랑스 전역으로 확산되었다. 그 악의적인 프로파간다의 영향으로 '마리 앙투아네트=악녀' 이미지가 널리 퍼졌고, 그렇게 고착화된 이미지가 오늘날까지 지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중세 유럽을 휩쓴 남자들의 위풍당당한 패션 이야기는 중세의 명화들을 새롭게 즐길 수 있는 독특한 주제다. 남자들의 '그곳'을 강조한 코드피스(Codpiece, 샅보대)는 중세 유럽판 '상남자' 패션이랄 수 있는데, 마초적인 왕 헨리 8세가 대단히 즐겼고, 처녀왕 엘리자베스의 집권 이후로 서서히 자취를 감추었다는 점에서 패션과 정치의 역학관계를 엿볼 수 있기도 하다.

여기에 등장하는 기이한 이야기들은 시공을 넘나들며 펼쳐진다. 영원한 숙제인 피임의 역사와 함께 고대에 피임제로 쓰였던 멸종식물인 실피움, 프랑스 혁명과 단두대가 유행시킨 새로운 패션과 헤어스타일과 '망자의 무도회', 프랑스의 마지막 애첩 마담 뒤 바리와 마리 앙투아네트의 치열한 기싸움, 빅토리아 시대에 아기를 판매하고 처분했던 아기 농장과 아기 농부, 미국 최초의 연쇄 살인마 H. H. 홈즈와 기묘한 장치로 가득한 '살인의 성', 그리고 19세기 이민자들의 대륙 미국에서 벌어진 대대적인 '고아 열차 운동'의 모든 것까지.

'은밀한 세계사'에 실린 14편의 이야기는 "신뢰할 수 있는 문헌과 사진, 그림 등이 존재하는 당당한 정사(正史)"이며 다만, "사적인 영역의 내밀한 이야기"들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본문 중에서

프랑스의 왕세자비로서 마리아 안토니아가 선택되었다는 말에 오스트리아의 궁정은 아주 부산스럽게 움직였습니다. 마리아 안토니아에게서 오스트리아인 느낌은 쫙 빼고 프랑스인, 베르사유 궁정인, 나아가 프랑스 왕족의 이미지를 불어넣기 위해 온갖 방법을 다 썼죠. 당시 최신 유행의 프랑스 스타일을 알려주기 위해 프랑스의 디자이너들은 오스트리아 궁정으로 샘플 드레스를 입은 작은 인형들을 보내왔고 14살 마리아 안토니아는 프랑스어를 사용하고 프랑스식 옷을 입고 프랑스 예절에 알맞게 행동하고 치아 교정까지 하고 코르셋을 졸라매며 프랑스 왕세자비에 걸맞은 모습이 되기 위해 안간힘을 썼습니다. 그렇게 오스트리아의 ‘마리아 안토니아’는 프랑스의 ‘마리 앙투아네트’로 변신해갔습니다.
하지만 그런 노력도 프랑스인들의 차가운 시선 앞에서는 한낱 물거품이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뒤에서 어린 왕세자비를 ‘오스트리아 암캐’라고 불렀고, 예의를 차린다면 ‘그 오스트리아 여자’라고 부르곤 했습니다. 남편인 루이가 루이 16세로 프랑스 왕위에 오르자 사람들은 금세 이 부부에 대한 이미지를 설정하고 이들이 죽는 날까지 그 이미지에 맞추어 둘을 비웃고 비꼬며 증오했습니다. 그 이미지란 왠지 전 세계의 모든 역사에 적어도 한번쯤은 등장하는 것만 같은 모습으로, 바로 ‘사람은 좋지만 둔하고 귀가 얇은 남자와 그의 옆에서 온갖 악한 술수를 속삭여 남자를 파멸로 이끄는 여자’였죠.
마리 앙투아네트를 비하하는 중상비방문은 수도 없이 인쇄되었고 파리 전역으로, 그리고 프랑스 전역으로 날개 돋친 듯 퍼져나갔습니다. 이 선전물들 속에서 마리 앙투아네트는 심지어 인간이 아니라 반인반수로까지 묘사되었으며, 특히 마리 앙투아네트를 성적으로 모욕하고 성적인 소문을 퍼트리는 것은 유행 수준으로까지 널리 퍼져서 다양한 언론이라는 것이 아직 존재하지 않았던 당시 사람들에게 마리 앙투아네트의 이미지는 불륜을 저지르고, 수간과 동성애를 즐기고, 시동생들과 잠자리를 갖는 색정광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 본문 84, 85, 89쪽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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