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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향' 본 日 유학생 "역사 알 권리, 국가에게 빼앗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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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향', 그 이후 ②] 일본인 유학생 사쿠라이 스미레가 말하다

누구도 예상치 못했지만 해냈습니다. 영화 '귀향'은 350만 관객의 공감을 불러 일으키며 이제 할머니가 된 '위안부' 피해 소녀들의 마음을 위로했습니다. 지난 3월 극장가를 따뜻하게 만들었던 '귀향'. 개봉 두 달이 지난 오늘, 그 기적같은 여정의 유산을 돌아보는 기획을 CBS노컷뉴스에서 마련했습니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난치희귀병 걸렸어도…'귀향'은 꼭 찍어야 했죠"
② '귀향' 본 日 유학생 "역사 알 권리, 국가에게 빼앗겨"
③ "할머니들 돌아가시면? '위안부' 문제는 이대로 끝"

영화 '귀향'의 한 장면. (사진=영화 '귀향' 스틸컷)

 

일본인 유학생 사쿠라이 스미레(여·26) 씨는 6년 전 한국에 첫 발을 딛었다. 한 대학교에서 1년 가량 유학을 하고 본격적으로 한국과 중국을 오가며 식민지 침략의 역사 현장을 직접 방문하고 있다.

스미레 씨가 처음 한국어와 중국어를 공부했던 이유는 일본에서 잘 가르쳐주지 않는 역사를 직접 보고, 듣고, 느끼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 역시 두 달 전 개봉한 영화 '귀향'의 350만 관객 중 하나다. 5년 째 서울에서 생활한 스미레 씨의 한국말은 유창했다.

"일본에서 온 아는 언니랑 같이 보러 갔어요. 저보다 세 살이 많은데 그런 역사를 배웠던 기억은 없다고 하더라고요. 저랑 만나면서 '위안부' 문제나 과거 식민지 침략 역사에 대해 관심을 가졌고 보러 갔어요. 그런데 너무 충격을 받아서 잠이 오지를 않았대요. 우리나라가 그런 짓을 저지른게 충격적이라기보다는 어린 소녀들이 그렇게 짓밟히는 것을 보며 느끼는 보편적인 충격에 가까웠어요."

그가 '귀향'을 보며 가장 인상 깊게 남았던 장면은 위안소로 끌려온 소녀들의 자유 시간이다. 고향을 그리며 노래를 부르는 모습에서 기분이 이상했다고 한다. 스스로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의 무게 속에서 그들이 웃을 수 있었던 그 순간이.

스미레 씨는 초등학교 때 처음으로 식민지 침략의 역사를 접했다. 당시 그는 731부대가 행했던 생체실험 이야기를 듣고 큰 충격에 빠졌다. 역사에 관심을 갖게 되는 시작점이었다.

"제가 다녔던 초등학교는 일반적인 학교는 아니었어요. 선생님들이 직접 교과서를 만들어서 위안부, 731부대 등의 역사를 가르쳤죠. 평화교육을 중심으로 하는 학교였는데 일반적인 학교들이 모두 그렇다고 할 수는 없어요. 나가사키나 히로시마 원자폭탄 투하 사건 때문에 일본 사람들은 우리가 전쟁의 피해자라는 역사의식이 강해요. 그런데 그 학교는 가해자였다는 것을 동시에 가르쳐주는 곳이었어요."

스미레 씨의 기억으로 90년대까지만 해도, 일본 내부에서도 '위안부' 문제에 큰 충격을 받았다. 당시 '교과서에 이 역사적 사건을 실어야 한다'는 의견이 대두됐고, 많은 교과서에 이야기가 실렸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이제 '위안부'라는 말이 교과서에서 사라졌어요. 어떻게 보면 젊은 세대는 역사를 알 권리를 빼앗기고 있는 겁니다. 국가적 차원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기 때문에 개인에게 '모르는 네가 나쁘다'고 할 수가 없더라고요. 일본이 교과서를 통해서 잘못된 애국심을 키워 나가려고 하는게 저는 좀 무섭죠."

'귀향'을 보고 스미레 씨는 한 가지 고민이 생겼다. 과연 우리가 '위안부' 문제를 냉정하게 바라볼 수 있는 세대일 수 있느냐의 문제다.

"'귀향'이 주고 있는 메시지는 '일본이 나쁘다'가 아니라, 전쟁이라는 것이 사람을 어떻게 만들고, 어떤 비극을 가져오는지에 대해 말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메시지를 보면서 한편으로 생각을 했어요. 한일 모두 당시 전쟁을 겪었던 세대와 저희 세대는 시간적 거리가 멀거든요. 그렇다면 우리는 그렇게 냉정하게 일본군과 '위안부' 할머니들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세대인가. 그런 고민이 들더라고요."

영화 '귀향'의 한 장면. (사진=영화 '귀향' 스틸컷)

 

궁극적으로 이런 고민은 한중일 청년 세대가 어떻게 소통할 것인지와도 이어진다. 그 시대를 직접 겪지 않은 3국의 청년들이 어떻게 이 문제를 받아들이고 풀어나갈 것인지가 관건이다.

"'위안부' 문제가 놓이게 되면 저는 가해자의 후손이 되고, 기자님은 피해자의 후손이 되죠. 어떤 입장으로 봐야 하는지가 최대 고민입니다. 예를 들면 영화 비평 수업을 들을 때 일본군이 침략을 했던 역사를 바탕으로 한 영화가 나오면 주변 친구들이 저를 쳐다봐요. 괜찮을까 싶은 거죠. 그 때야 제가 일본인임을 깨닫고, 어떤 식으로 책임을 져야 되는가 고민해요. 만약 국가적 차원에서 올바른 역사 교육이 이뤄졌다면 이런 고민은 없었을 수도 있었겠죠?"

한국말에 능숙하지 못했던 스미레 씨는 첫 한국 유학길에서 일본어학과를 선택했었다. 당시 한 친구에게 들었던 말을 그는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한국어 배우러 왔냐고 물어서 '침략의 역사를 배우고 싶어서 왔다'고 하니까 '그건 과거의 일인데 무엇하러 그걸 배우러 여기까지 왔냐'고 했죠. 이게 현실인가 싶고, 좀 충격이었어요. 제가 가해자 후손이니까 조심스러운 이야기지만 피해자 후손들도 어두운 역사를 피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사실 어디에도 모든 면이 밝은 역사는 없어요. 일단 직면하고, 그 다음에 어떤 관점으로 그걸 바라볼 것인지 결정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답이 나올지, 나오지 않을지는 모르지만요."

우리가 친일파 청산에 실패한 것처럼 전후의 일본 역시 전범 청산에 실패했다. 스미레 씨는 전쟁의 가장 큰 책임이 '천왕'에게 있다고 이야기한다. 당시 천왕이 군통수권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쟁 이후 천왕은 신에서 인간으로 '격하'됐을 뿐 어떤 처벌도 받지 않았다. 첫 단추부터 잘못 꿰어진 셈이다.

돌이킬 수 없는 과거가 답답하지만 그래도 스미레 씨는 아직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다. 언젠가는 어두운 역사로 묶인 한중일 3국의 청년들이 서로 터놓고 이야기할 그 시간이 오기를 바라는 마음 뿐이다.

"현실에 역사적 문제가 있는데 제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일지 생각하게 됩니다. 일단 '위안부' 문제에 있어서는 증언자인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어야 해요. 함께 운동하는 분들의 이야기도 들어야 되고요. 저는 3국 청년들이 대화하고 소통할 기회가 많았으면 좋겠어요. 우리 세대가 이 역사를 어떻게 봐야하는지를 이야기하는 자리요."

최근 일본에도 변화의 움직임이 일고 있다. '실즈'(SEALDs)라고 하는 새로운 시민사회운동 세력들이 사회에서 움트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아베 신조 총리가 행하고 있는 각종 우경화 정책들에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그러나 '실즈' 안에서도 역사 인식에 대한 한계는 분명히 존재한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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