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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마항쟁 발단된 시위 주동자, 37년만에 누명 벗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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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마항쟁의 발단이 된 1979년 10월 부산대 시위 주동자가 재심을 청구해 무려 37년 만에 무죄를 선고받았다.

부산지법 형사합의 6부(유창훈 부장판사)는 정광민(58)씨가 제기한 '국가안전과 공공질서의 수호를 위한 대통령 긴급조치 위반 등' 혐의 면소 판결에 대한 재심 청구소송에서 정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고 22일 밝혔다.

재판부는 "공소사실은 적용법령인 긴급조치 제9호가 당초부터 위헌·무효여서 범죄가 되지 않기 때문에, 형사소송법에 따라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한다"고 밝혔다.

정씨는 부산대 경제학과 2학년 재학중이던 1979년 10월 16일 오전 9시 40분쯤, 인문사회관에서 미리 제작해둔 '언론집회 결사의 자유 보장, 헌법철폐와 대통령 하야' 등의 내용이 담긴 유인물 90매가량을 뿌리고 집회를 열었다.

이에 부산대 학생 1천여 명이 연대해 함께 집회에 나섰고, 정씨는 학생들과 함께 애국가, 교가 등을 부르며 부산대 정문으로 나가며 행진을 하다가 경찰에 의해 해산됐다.

결국 정씨는 수사당국에 수배됐고 1979년 10월 19일 경찰에 자수했지만, 시위 주동자라는 이유로 유치장에서 형사들에게 온갖 고문을 당했다.

그는 긴급조치 제9호 위반 혐의로 구속돼 재판을 받다가 1979년 12월 8일 긴급조치 9호가 해제돼 석방됐다.

이어 1979년 12월 27일 부산지법에서 면소 판결을 받고 학교로 복귀했지만 1980년 5월 17일 비상계엄이 전국으로 확대되면서 예비검속 대상으로 체포돼 고문을 받았다.

1980년 8월 8일 군법회의에서 유죄판결을 받고 부산대에서 출학처분을 받는 등 체포와 고문을 반복해서 받으며 갖은 고통을 당했다.

부마 민주항쟁계승사업회 회장인 정씨는 "국가권력이 불법적 공권력으로 당시 시위에 참가했던 사람들을 나라를 위태롭게 하는 빨갱이로 몰아 구속과 고문 등 갖은 고초를 겪었다"며 "37년이나 흘러 늦은 감이 많지만, 한 사람의 인생을 짓밟는 이런 일들이 되풀이돼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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