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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당 서두르면 망해…국민과 함께 문제 풀어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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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 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 방 송 : FM 98.1 (18:30~20:00)
■ 방송일 : 2016년 4월 20일 (수) 오후 7시 5분
■ 진 행 : 정관용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교수)
■ 출 연 : 김영춘 비대위원 (더불어민주당)

◇ 정관용> 오늘도 화제의 당선자 주목해 볼 당선자 한 분 모시겠습니다. 새누리당의 텃밭이죠. 부산 진갑 선거구에서 현역 의원을 물리치고 당선된 더불어민주당의 김영춘 당선자. 3선 고지에 올랐고요. 이번에 또 비대위원이 되기도 했습니다. 스튜디오에 직접 초대했어요. 어서 오십시오.

◆ 김영춘> 네, 안녕하세요. 김영춘입니다.

◇ 정관용> 축하드립니다.

◆ 김영춘> 네, 감사합니다.

◇ 정관용> 지난번 총선에도 여기에서 낙선하셨죠?

◆ 김영춘> 여기라는 게 부산 진갑구?

◇ 정관용> 네.

◆ 김영춘> 네, 같은 지역입니다.

◇ 정관용> 그때 몇 % 차이였어요?

◆ 김영춘> 그때 3500표 정도 차이 났죠.

◇ 정관용> 3500표. 아슬아슬했네요, 그때도.

◆ 김영춘> 네. 개표 출구조사도 이겼는데 막판에 개표 12시 넘어서, 막판에 뒤집어졌어요. 그래서 다들 일찍 주무신 분들은 제가 이겼다고 알고 주무셨는데 일어나보니까 세상이 바뀌어 있더라. 그런 얘기도 하시고요.

◇ 정관용> 이번에는 출구조사에서는 아슬아슬하게.

◆ 김영춘> 한 1.5% 졌는데.

◇ 정관용> 그런데 그건 사실 졌다고 말하면 안 되죠. 오차범위 내니까. 그런데 아무튼 이번에 몇 표 차이로 이기셨죠?

◆ 김영춘> 이번에 한 3.1%인가요? 3% 좀 넘게 이겼습니다.

◇ 정관용> 부산에 출마했던 것은 지난 총선이 처음이었죠?

◆ 김영춘> 네. 4년 전에 첫 출마를 했고 2년 전에는 부산시장 선거에 민주당 후보로 선출됐다가 막바지에 오거돈 후보에게 양보를 하고 단일화를 했죠.

◇ 정관용> 16, 17대 때는 서울 광진에서 재선을 하셨고. 18대 때는 불출마를 하셨고.

◆ 김영춘> 네.

◇ 정관용> 그때 왜 불출마를 했었죠?

◆ 김영춘> 그때 열린우리당이 이쪽 개혁정당으로서는 사상 최초의 과반수 정당이었지 않습니까?

◇ 정관용> 그렇죠.

◆ 김영춘> 집권여당으로서 과반수 정당을 국민들이 만들어주셨는데 문을 닫게 됐어요. 문 닫을 때는 참여정부에 대한 아주 혹독한 평가와 함께 열린우리당도 총선을 앞두고서 선거용 일종의 신장개업을 하려고 문을 닫은 건데요. 저는 그런 상황이 도저히 못 견디는 마음이었습니다. 그리고 아무도 그렇게 문을 닫는 것에 대해서.

◇ 정관용> 책임을 안 지고?

◆ 김영춘> ‘내 탓이오, 내 책임이오’라고 말하는 사람도 없고. 그렇게 해서 문패만 바꿔 달아서 선거를 치른다, 저는 그게 도저히 인정이 안 되고 해서 그럼 나라도 책임을 지겠소 하고 그리고 내가 불출마하고 우리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다시 새로운 정치가 어떤 정치여야 되는 것인지 모색하는 시간을 갖겠습니다라는 의미에서 출마를 안 했습니다.

◇ 정관용> 그리고 부산으로 19대 때는 내려가신 거예요.

◆ 김영춘> 네.

◇ 정관용> 왜 갔습니까? 서울에서 재선했고 거기서 또 계속 나가면 더 유리할 수도 있을 텐데.

◆ 김영춘> 제가 부산에 가기로 결심한 게 2011년도인데 그 전 해, 2010년도에 당시 정세균 당대표가 저한테 당으로 복귀해서 옛날 지역구 광진으로 돌아가 달라, 그런 요청 혹은 이야기를 하셨는데 저를 또 걱정을 해서 그러셨겠죠. 그런데 제가 아무리 생각을 해도 그때 우리 당으로서는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고 ‘이렇게 해서 우리가 새롭게 새출발하겠습니다’라는 그런 준비와 결의가 안 보였습니다. 여전히 이명박 정부에 대한 반사이익에 편승해서 당선될 수밖에 없는 그런 상황이라서. 이대로는 내가 꿈꾸는 새로운 정치 또 정치개혁 이런 게 되겠냐. 또 국회의원 되기는 쉽겠지만 그렇게 해서 점점 선수만 쌓여가고 거기에 안주하는 정치인이 될 것 같아서 고맙지만 사양을 하고요. 그다음 해에 부산으로 가기로 결심했습니다. 많은 이유가 있습니다. 제가 곰곰이 생각해보니까 한 10가지 이유가 있던데.

◇ 정관용> 우선 고향이죠?

◆ 김영춘> 네, 그렇습니다. 제가 태어나고 고등학교까지를 부산 진구에서 다 학교를 다니고 졸업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 고향인 부산이 제가 떠날 때만 해도 한 30년 전인데 아주 활기가 넘치고 전국 팔도에서 다 가난한 우리 국민들이 와서 막노동하더라도 열심히 일하기만 하면 자식들하고 같이 살 수 있는 그런 좋은 도시였죠. 그런데 이게 한 30년 만에 특히 새누리당 일당독재 몇 십 년 만에 완전히 추락하는 도시가 됐습니다. 인구가 40만명이나 줄어버리고 지금도 매년 젊은이들이 1만명 이상 부산을 떠나가고 있습니다. 일자리가 없으니까요. 미래 희망이 없는 도시가 됐다. 그런 자각이 나라도 돌아가서 몰락하는 부산을 좀 일으키는 데 일조라도 해보자. 그런 마음이 가장 컸고요. 두번째는 제가 국회에서 봤던 지금의 새누리당과 민주당의 2인 3각 경기 같은 이 모양으로는 한국정치의 개혁 혹은 선진화가 요원한 것 아니냐. 그렇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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