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 전당에서 열린 ‘제20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개막식. (사진=황진환 기자/자료사진)
"저희도 사실 억울합니다."
긴 침묵을 뚫고 부산시의 입이 열렸다. 2014년 영화 '다이빙벨' 상영을 두고 벌어진 표현의 자유 논란부터 신규 자문위원들의 효력이 정지된 오늘에 이르기까지. 부산시는 정확한 입장을 표명하지 않은 채, 늘 부산국제영화제를 둘러싼 논란에서 한 발 물러서 있었다.
영화계 9개 직능단체는 현재 부산시가 부산영화제에 대한 자율성·독립성 보장 의지가 없다고 여겨 보이콧까지 결정한 상태다. 이들 단체는 지난 18일 올해 열리는 제21회 부산국제영화제에 불참하겠다고 결의했다.
부산시로서도 20일 열린 이번 서울 기자간담회는 이례적이다. 통상 부산에서 언론 매체들과 소통해왔고, 서울로 직접 올라와 이 같은 해명의 자리를 갖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 그만큼 부산영화제 사태가 심각하게 치닫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부산시는 '우리도 누구보다 부산영화제를 아끼는 주체'라는 것을 강조하며 그간 세간이 부산시에게 쏟아낸 비난들을 해명해 나갔다. 김규옥 경제부시장과 나눈 핵심적 이야기들을 일문일답으로 정리해봤다.
▶ 서병수 시장은 2014년 조직위원장의 권한으로 세월호 다큐멘터리 영화인 '다이빙벨' 상영을 중지할 것을 요청했다. 당시 서 시장은 이 영화를 보지도 않은 상황이었는데 그 요청의 이유가 무엇인가?- 세월호 일반인 유가족 대책위원회에서 서병수 시장을 찾아왔다. 어떤 의도를 가진 영화이기 때문에 영화제에 상영하는 것이 정치적으로 이용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줬다. 서 시장도 그런 취지에서 상영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을 피력한 것이다. 프로그램을 결정하는 차원에서 간섭을 한 것이 아니라, 프로그램을 통보받고 사후 의견을 낸 것이다.
▶ 영화인들은 사퇴 의사를 표명한 서병수 시장의 실질적 사퇴를 바라고 있다. 왜 아직까지 사퇴가 이뤄지고 있지 않은 것인가?
- 현재 정관에는 시장이 조직위원장을 맡도록 되어 있다. 이것이 빨리 개정되어야 사퇴할 수 있다. 하고 싶어도 개정이 안되면 계속 이름이 올라있다. 서병수 시장 본인도 사퇴에 대한 의지가 강하고, 민간에 넘기겠다고 말한 것은 꼭 지켜질 것이다.
▶ 영화인들이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은 영화제의 자율성과 독립성 보장이다. '다이빙벨' 사태가 하나의 침해 사례가 됐는데, 향후 부산시는 영화인들의 요구를 받아들일 생각이 있는가?- 예술적 영역에서의 독립성은 확실하게 보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국가 재정지원을 받는 기관으로서의 공익적 책임은 있어야 된다. 재정적으로 투명하고 절차에 대해 공정한 것은 필요하지 않겠나. 프로그램 같은 경우는 우리가 사전적으로 관여할 수 있는 장치가 없고, 받아보고 알게 된다. 일단 서병수 시장이 조직위원장에서 사퇴한다는 것 자체가 독립성 보장의 의지다. 예술적 능력도 없고, 영화제의 그런 부분에 관여할 의사도 없다는 말씀을 드린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다른 조직위원장에 대한 우려가 있다. 부산시 입맛에 맞는 인물이 들어와 서병수 시장과 같은 전철을 밟지 않을까 하는 우려다.- 서병수 시장의 아바타가 와서 조직위원장 자리에 앉을 거라는 이야기도 있는데 저희는 일단 임명하려고 하는 사람이 없다. 부산시 입맛에 맞는 조직위원장을 세우려는 계획도 없다. 애초에 영화제에서 조직위원장의 권한이 별로 없다. 영화제 때 개막 선언을 하거나 1년에 한 번 정도 총회를 주재하는 정도다. 조직위원회 위원들이 모이는 임원회도 거의 열리지 않는다. 영화계와 협의해, 영화계 또한 받아들일 수 있는 분으로 추대하려 한다.
▶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의 사퇴 건도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영화계에서는 이 전 위원장이 부산영화제에 꼭 필요한 인물인데 '다이빙벨' 문제로 밉보여 사퇴를 압박받았다는 주장이다. 정확한 사퇴의 이유는 뭔가?
- 이 부분은 이미 영화제와 합의가 된 문제다. 이용관 전 위원장이 사퇴하면서 서병수 부산시장도 사퇴하기로 되어 있었다. 부산시에서는 이 전 위원장을 위해 고문 등 명예직도 준비를 했었지만 사퇴를 하겠다고 했다. 분명히 그렇게 정해져 있었는데 총회에서 갑자기 본인의 거취를 이곳에서 결정할 수 없다고 했다. 저희로서도 황당한 일이었다. 3년 연임한 이 전 위원장이 또 연임할 수 없었던 이유는 일단 감사원 감사 결과로 고발을 당해 시 입장에서는 재위촉이 어려웠다. 또 부산시 내부에서도 소수에 의한 폐쇄성이 있다는 지적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다이빙벨' 문제를 처리하는 과정에서도 부드럽게 잘 처리됐다고 말할 수는 없다.
▶ 감사원의 감사가 유독 길었고, '표적 감사'였다는 이야기가 있다. 다른 영화제의 경우 유사한 사유로 경미한 조치를 받았는데 부산시는 왜 해당 책임자들의 검찰 고발까지 갔느냐는 문제다.- 이건 정말 억울하다. 저희가 감사를 해달라고 한 것도 아니고, 저희 역시 감사를 당하는 기관이다. 감사 이후에 결과를 가지고 책임자들을 검찰 고발하라는 요청이 내려왔다. 그러면 우리는 그 요청대로 할 수밖에 없다. 다른 영화제에도 유사한 사례들이 있었는데 허위계약서를 작성해 돈을 유용한 것은 부산영화제 밖에 없어서 죄질이 중하다는 이유였다. 또 다른 영화제에서는 해당 책임자들이 잘못을 인정해 시정의 여지가 있었는데 여기에서는 세 사람이 혐의를 부인해 수사를 해야 책임소재를 가릴 수 있다고 했다. 이런 두 가지 이유로 고발이 불가피했다.
▶ 지금 현재 부산시와 부산영화제 갈등 현안은 무엇인가? 일단 지금 신규 자문위원들의 효력은 정지된 상태인데 법원에 효력 정지 가처분 신청을 낸 이유가 궁금하다.- 일단 법원에서는 한꺼번에 68명의 자문위원을 위촉한 것이 사단법인의 기본 원칙에 위반된다는 것을 인정했다. 이들이 총회의 대다수를 차지하게 되면서 의사결정 구조를 중대하게 왜곡할 수 있다는 게 인용 파단의 가장 큰 요인이었다. 자격을 문제 삼아 가처분 신청을 한 게 아니다. 정관을 보면 집행위원장이 모든 자문위원을 위촉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그런데 107명 중에서 3분의 2를 초과한 숫자의 신규 자문위원들을 집행위에서 위촉을 했고, 저희 입장에서는 모든 주권이 다 넘어갔다고 느꼈다. 그 때 자문위원의 의미를 알게 됐다. 집행위에서는 총회 승인이 필요 없으니까 그냥 보고를 했는데 서병수 시장은 접수가 됐다고 이야기하지 않았다. 판단을 해보니 무효로 돌리는 것이 맞겠다고 생각이 돼, 저희 나름대로는 방어적인 차원의 가처분 신청이었다.
▶ 지금 현재 부산시와 부산영화제 사이에서 협의해야 할 가장 큰 문제가 무엇인가?- 가장 큰 것 중의 하나는 조직위원장 선출 방식이다. 집행위 측은 총회에서 선출하길 바라고, 부산시는 임원회에서 조직위원장을 추천해, 총회에서 찬반 형태의 회의를 거쳐 위촉하자는 입장이다. 저희는 조직위원장이 큰 명예직 중의 하나이기 때문에 선거전이 생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느낀다. 부산을 대표하고, 부산 시민을 대표하는 분이 조직위원장이 됐으면 한다. 부산영화제에 부산은 없고, 영화인들만 있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