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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살균제 피해 신청했더니.."2018년에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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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 판정 병원 전국에 단 한 곳 뿐...신청자 750명 몰려 하염없이 대기 중

가습기 살균제 3차 피해신청자 김 씨. 진단을 받기 위해서는 최장 2018년까지 기다려야 한다. (사진=장규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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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 예정일을 불과 열흘 앞둔 김모(30대 여성)씨는 19일 인터뷰 도중 자주 마른 기침을 했다. “2008년에 일하던 미용실이 건조해서 가습기를 틀어놓고 지냈어요. 가습기 살균제를 넣어서 사용했구요. 피부가 건조해질까봐 가습기 스팀을 얼굴에 직접 쐬기도 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아찔한 일이다. 그러나 당시에 ‘99.9% 항균 효과’에 ‘아이에게도 안심’이라고 적혀있는 가습기 살균제가 자신의 폐를 망가뜨릴 것이라고 어느 누가 생각했을까.

김 씨는 이듬해에 잦은 기침이 심해지더니 급기야 폐렴으로 병원에 입원했다. 그리고 폐렴 비슷한 증상은 해마다 반복됐다.

심지어 지난해 3월에는 숨 쉬기 힘들 정도로 가슴이 아파서 심장에 문제가 있는 줄 알고 심장 검사를 했다. 심장에 이상이 없자 알레르기 검사에 췌장 검사까지 하던 도중 의료진이 폐 이상을 발견했다.

“그 때 병원에서 폐렴이라고는 하는데, 모양이 폐렴이랑 좀 다르다고 하더라구요.” 병원에서는 폐 관련 검사를 6개월에서 1년 단위로 정기적으로 받아 볼 것을 권유했다. 이 당시만 하더라도 가습기 살균제 때문이라는 생각은 못하고 있었다.

“가습기 살균제에 대해 들어본 적은 있지만 사실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들은 드물 거에요. 저도 그랬으니까요.” 김 씨는 가습기 살균제 문제를 다룬 고발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싶다'를 보고나서 문제의 심각성을 알게 됐다.

◇ 번거로운 피해 신청절차.. 신청 뒤엔 "무소식"

가습기 살균제 피해 신청이 지난해 연말에 마무리 된다는 사실도 그 때 알고, 뒤늦게 3차 피해신청 대열에 합류했다. 무거운 몸을 이끌고 수차례 병원을 오가며 진단서와 CT 사진 등 진료기록을 떼어 피해신청을 접수했다.

환경보건시민센터 사진자료

 

속 터지는 일은 그 때부터 시작됐다. 피해조사를 위한 조사표가 피해신청 두 달이나 지나서야 도착했다. 조사원은 아직 언제 온다는 기별도 없다. 게다가 검사는 빨라야 내년 말, 늦으면 2년 뒤인 2018년 초에나 가능하다는 통보를 받은 것이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 검사와 판정은 현대 아산병원에서만 진행된다. 판정 병원이 단 한 곳 뿐이고 정도가 심한 신청자부터 검사를 하다 보니 김 씨처럼 일상생활이 가능한 사람은 한정없이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그렇게 기약없이 차례를 기다리던 와중에 김 씨는 얼마 전 심한 독감을 앓았다. 기침을 너무 심하게 해서 구토를 했다. 그러나 임신한 몸이라 응급실에서도 감기약 처방도 받지 못하고 열이 펄펄 끓는 채 참아 넘겨야 했다.

해를 더할수록 심해지는 호흡기 질환. 그 원인은 무엇이고, 치료 방법이 있는 것인지 알고 싶다, 그러나 돌아오는 것은 기다리라는 말 뿐.

“우리나라에 병원이 하나 밖에 없는 것도 아닌데, 왜 병원을 한 곳만 지정해놨는지 모르겠어요. 부산이며 제주에 계신 분들도 그 병원에만 가야 하는 거잖아요. 정부에서 병원 한 곳만 지정해놓고 할 일을 다 했다고 책임회피 하려는 것 아닌가 싶어요.” 김 씨는 분통을 터트렸다.

환경부에 따르면, 마지막 3차 가습기 살균제 피해 신청자는 752명에 달한다. 1차 때 361명, 2차 169명과 비교하면 마지막에 피해신청이 크게 몰렸다. 신청자가 몰리면서 검사 대기 시간도 무한정 길어졌다. 김 씨처럼 2년 이상 기다려야 하는 신청자도 속출하고 있다.

◇ 정부, "대기시간 앞당기는 방안 강구 중"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경부 관계자는 “가습기 살균제 피해 판정은 경험이 매우 중요하고 일반화하기 힘들다”며 “판정 실패 가능성 때문에 판정 기관을 늘리는 것은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상태가 심한 분들을 우선으로 순위를 정해서 하고 있고, 대기 시간을 앞당기는 방안을 강구 중”이라고 말했지만, 아직 뾰족한 대책은 없는 상황이다.

김 씨는 가습기 살균제 피해 신청을 접수하면서 피해 신청을 하지 않은 신청자가 더 많을 것으로 확신했다. 병원을 오가며 진단기록을 떼어야 하고 CT 사진도 찍어서 CD로 제출해야하는 등 절차가 매우 번거롭기 때문이다.

“아마 제가 직장인이라면 피해 신청을 할 엄두를 못 냈을 것 같아요. 중도에 포기 했겠죠. 그래서 정부에서도 3차 신청자 예상인원을 너무 적게 잡은 것 아닌가 싶어요. 주변에 얘기를 들어보면 가습기 살균제를 쓴 사람이 많은데 다들 어떻게 해야하는지 잘 모르거든요.”

가습기 살균제 피해 신청은 지난해 연말, 3차 신청을 마지막으로 종료됐다. 그러나 김 씨의 말처럼 많은 잠재적 피해자들이 남아있을 가능성이 높다. 마침 검찰의 수사가 시작되면서 가습기 살균제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추가 피해신청을 적극 고려해야하는 이유다.

아울러 피해 판정을 보다 신속하게 할 수 있는 장치도 시급히 마련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억울하게 피해를 당하고도 구제를 받지 못하거나, 차례를 기다리다가 상태가 악화되거나 불상사를 당하는 사람은 없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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