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를 잘못한 거니' 한화 송창식이 14일 두산과 홈 경기에서 투구하는 모습.(대전=한화 이글스)
'2016 타이어뱅크 KBO 리그' 최하위에 처진 한화. 14일까지 최근 3연패에 빠지면서 2승9패, 승률 1할8푼2리에 머물러 있다.
더 큰 문제는 가라앉을 대로 가라앉은 팀 분위기다. 한화는 14일 두산과 대전 홈 경기에서 2-17, 무기력한 대패를 안았다. 1회부터 선발 김용주가 2아웃만 잡고 강판하면서 심상찮은 조짐을 보이더니 3회까지 10점을 내주며 걷잡을 수 없이 무너졌다.
여기에 한화에 대한 비판 여론까지 비등하면서 선수단 사기는 더 떨어지는 상황이다. 특히 야신으로 추앙받던 김성근 감독의 난해한 마운드 운용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야신 김성근 감독, 그러나 마운드 운용은…
김 감독은 예전 쌍방울 시절부터 이른바 '벌떼 야구'로 정평이 나 있었다. 부족한 투수진을 벌충하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불펜을 폭넓게 활용했다. SK 시절을 거쳐 한화에서도 이런 투수진 운용이 이어졌다.
문제는 최근 야구 흐름과 맞지 않는다는 점이다. 현대 야구는 메이저리그(MLB)식 분업화가 철저하게 이뤄지고 있다. 선발과 불펜, 마무리 등 역할이 확실하게 정해져 있다. 그러나 김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한화는 이 경계가 무너져 있다. 선발 투수는 그야말로 처음 등판하는 투수일 뿐 의미가 없는 상황이다.
올 시즌 한화 선발진의 평균 투구 이닝은 3⅓이닝에 불과하다. 퀄리티스타트(6이닝 3자책)는 지난 10일 NC전 알렉스 마에스트리의 6이닝 비자책 1실점이 유일하다. 선발승도 마에스트리뿐이다.
물론 한화의 선발진은 정상이 아니다. 에이스 에스밀 로저스와 안영명, 배영수, 이태양 등이 빠져 있다. 마에스트리와 송은범, 김재영, 김민우 등이 근근히 버텨내고 있는 상황이다.
김성근 감독은 야신으로 칭송받는 명장이지만 지난해부터 무리한 마운드 운용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는 게 사실이다.(자료사진=박종민 기자)
하지만 김 감독의 이른바 '퀵후크'(3자책 이하 선발 투수의 6회 이전 강판)도 한몫을 하고 있다. 선발 투수를 조금 더 믿고 기다리는 추세와 달리 한번 흔들리면 곧바로 내리는 마운드 운용이다.
선발 투수가 조기 강판하면 그만큼 불펜의 부담이 커진다. 책임져야 할 이닝이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 감독은 "그래도 4, 5실점까지는 선발 투수를 기다린다"면서 "아니면 불펜 투수들이 너무 힘들어진다"고 운용 방침을 밝힌 바 있다.
불펜진의 구위는 자연스럽게 떨어질 수밖에 없다. 지난해도 한화는 전반기 선전의 주역이던 불펜 자원 권혁과 박정진의 구위가 후반기 현저하게 떨어졌다. 마무리 윤규진은 부상을 당하기도 했다.
올해 역시 마찬가지다. 4이닝도 채우지 못하는 선발진에 한화 불펜진은 그만큼 더 던져야 한다. 또 연습 투구로 몸을 데우는 과정까지 체력 소모가 클 수밖에 없다. 올해 한화의 평균자책점은 무려 6.17로 최하위다.
▲희생양 송창식…자칫 상대 선수까지 다친다이 마운드 운용의 희생양이 된 선수가 송창식이다. 송창식은 14일 0-1로 뒤진 1회 2사 만루에서 등판해 4⅓이닝 12실점했다. 90개의 공을 던지면서 9안타(4홈런), 2볼넷을 내줬다. 1경기 12실점은 KBO 리그 역대 4위의 기록이다.
송창식은 전날도 구원 등판해 ⅔이닝 15개 투구를 소화했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14일 90개 투구는 무리다. 사실상 웬만한 선발만큼 던진 것이다. '벌투 논란'이 불거진 이유다. 특히 3회까지 6실점이면 바꿔줬어야 했는데도 5회까지 던지게 한 것 때문에 논란이 더 커지고 있다.
사실 송창식은 분업이 사라진 한화 마운드의 현실을 보여주는 사례다. 올해 송창식은 지난 9일 NC전에 선발 등판했지만 13, 14일 구원으로 나섰다. 등판하지 않았어도 불펜에서 몸을 푼 경우도 많았다. 지난해 송창식은 선발로 10경기, 구원으로 50경기 이상 등판이라는 KBO 초유의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혹사 논란이 나올 만한 등판 패턴이었다.
무엇보다 송창식은 특별한 사연을 가진 선수라 이번 벌투 논란이 더 커진 모양새다. 2004년 입단해 8승을 거두며 기대를 모았던 송창식은 이후 팔꿈치 수술과 손가락 혈행 장애 등으로 고생했다. 2010년 복귀해 2012년부터 불펜 주축으로 거듭나 인간 승리의 주인공으로 감동을 안겼다.
14일 두산과 홈 경기에서 아웃카운트 2개만 잡고 강판된 한화 좌완 김용주. 이때는 1점만 내준 상황이었지만 이후 송창식이 만루홈런을 맞으면서 자책점이 4개로 늘었다.(자료사진=한화)
14일 투구는 송창식뿐 아니라 다른 선수들에게까지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어쩌면더 심각하다. 일단 한화 선발진은 자신감을 잃을 수밖에 없다. 위기를 넘겨봐야 고비에서도 강해질 텐데 조기 강판이 이어지면 시련을 이길 경험이 쌓이지 않게 된다.
상대팀도 피해가 간다. 3회 송창식은 이미 투구할 의지를 잃었다. 유격수 실책과 볼넷 등으로 무사 만루에서 몰린 송창식은 허경민을 몸에 맞는 공으로 내보내 밀어내기 실점했다. 이후 정수빈에게 폭투를 던져 추가 실점했다.
모두 몸쪽으로 바짝 붙이다 내준 점수다. 종종 점수 차가 크게 벌어진 경기에서 지는 팀 투수들은 상대 타자를 맞혀 벤치에 대한 불만을 드러내는 경우가 있다. 빨리 교체해 달라는 무언의 시위다. 팀의 필승조에 속하는 송창식이 던질 상황이 아니었다.
이런 경우 역시 우려되는 것은 부상이다. 상대 타자들이 애꿎게 부상의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것이다. 마운드 위의 송창식은 마음이 다칠 수 있고, 상대 선수들은 몸이 다칠 가능성이 컸다. 이런 상황이 이어지면 그라운드 대치 등 선수단끼리 감정이 상할 장면이 나올 수 있다. 다행히 두산에서는 이렇다 할 반응을 보이지 않고 넘겼다.
현재 한화가 처한 상황은 최악이다. 김 감독은 이날 큰 점수 차로 벌어진 경기 후반 어지럼증으로 병원으로 향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주축 투수들이 빠진 난국이 파국 직전으로 치달았다. 그나마 15일 LG전 선발은 현재 가장 믿을 만한 마에스트리다. 과연 한화가 사면초가의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