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유럽에선 약 20만 명이 의약품 부작용으로 사망한다. 진통제 과잉 복용으로 사망한 사람의 수가 마약중독자들의 수보다 많다. 65세 이상의 노인이 하루에 많게는 7가지 의약품으로 복용한다는 요즘, 우리는 안일하게 약을 복용하고 있는 건 아닐까. 건강 공포심을 자극하는 예방 의학은 누구를 위한 정책일까.
'의약에서 독약으로'는 건강한 사람도 중독자로 만드는 약의 엄청난 부작용을 다룬다. 의약산업 시장의 부조리를 취재해온 저자 미켈 보쉬 야콥슨은 10여 년 전부터 제약산업의 폐단을 경고해온 세계적인 의학전문가 12인을 선별하고 그들의 대표 저작물과 인터뷰를 통해 의학계의 현주소를 가감 없이 진단해 보여준다.
이 책은 유명 약품의 효능과 질병에 대한 개념 정리는 물론, 제약산업이 금융, 정치, 나아가 정부 및 국제기관들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추적한다. 이로써 약에 대한 우리의 신뢰가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 앞으로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주시해야 할 것인지를 일깨운다.
제약산업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전방위 취재 기록은 거대 제약회사 즉, 빅 파마 시대를 맞이한 의료계의 문제점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게 해준다. 1천여 종의 약품과 거대 제약회사의 변천사는 물론 주요 질병 및 치료제의 흐름, 거대 의약 스캔들, 범세계적 의약 마케팅의 파급력, 임상실험의 모든 것, WHO와 빅 파마와 의학계의 결탁에 이르기까지.
제약산업이 의약품 연구와 의료 행위에 얼마나 깊숙이 침투해 독점적 지배를 해왔는지를 폭로한 용감한 이들의 공로를 보자. 처음으로 항우울제의 위험성을 고발했고, 항우울제 치료 효과의 거품이 얼마나 심한지를 폭로했다.소염제인 COX-2의 위험성을 세상에 알렸으며, 알츠하이머 치료제와 신종플루 H1N1 치료제의 허상도 알려준다.
이 책에 등장하는 제약사와 약품들은 소재지와 개발국을 넘어 전 세계 어디에서든, 한국에도 마찬가지로 이미 상용화된 익숙한 대상들이다. 즉, 의약품의 과잉처방과 부작용은 더 이상 먼 나라 남의 일로 치부해버릴 수 없게 되었다. 저자는 이 책이 각성의 계기가 되기를 희망한다. 의약품의 효능과 리스크를 염두에 두고 한 번쯤은 의사의 진단과 처방전을 들여다보며 꼼꼼히 따져보는, 주도적인 소비자가 될 것을 촉구한다.
약품의 오남용 문제는 우리가 의약품을 신봉하고 의사와 전문가의 말을 맹신하기 때문에 생긴다. 특히 전방위로 펼쳐지는 제약산업의 교묘한 전략을 눈치 채지 못하면 자칫 한순간에 건강을 잃고 만신창이가 되어버릴 수 있다. 그것을 방지하기 위해 이 책은 당장 의심해야 할 몇 가지 지점을 주목한다.
△의약품의 개발과 판매 전략은 ‘인간의 건강 증진’을 위한 것이 아니다.△ ‘의약품 덕분에 건강이 보장되고 평균 수명이 늘어났다’는 것은 과장된 진실이다. △‘특정 질병의 대표적 치료제이자 베스트셀러 약품은 충분히 안전하며 약효도 출중하다’는 믿음은 위험하다. 우울증의 프로작, 신경안정제 자낙스, 위궤양의 잔탁, 폐경기 여성의 호르몬 치료제 프레마린과 프렘프로, 비만 치료제 펜-펜(프랑스 상표명 메디에이터)과 리덕스, 조루증 치료제 다폭세틴 등, 어느새 특정 질병에는 특정 약품을 써야 한다는 인식이 상식처럼 자리 잡았다. 그러나 30여 년에 걸친 세계적 블록버스터급 약품의 판매 결과는 모두 심각한 부작용과 재발 위험, 중독 증세로 인한 또 다른 문제들을 낳았다. 이 책의 프롤로그에는 세계적으로 심각한 파장을 불러온 의약 스캔들 사례들이 상세히 소개된다.
△‘과학과 의학의 발전으로 질병 퇴치율이 높아지고 신종 질환은 감소하고 있다’는 기대는 착각이다. 오히려 지난 30년 동안 듣도 보도 못한 신종 질병들이 잇따라 등장했다. 특히 정신 의학과 관련된 증상과 질병들이 쏟아져 나왔다. 미국정신과협회에서 발간하는 DSM(정신질환의 진단 및 통계 편람)에 정리된 정신질환 목록을 보면, 초판에는 106가지였던 것이 4판에서는 297가지로 늘어났다. 조울증, 월경전증후군, 외상후 스트레스장애, 과잉행동장애, 공황장애, 감정조절장애, 저장강박장애 등이 그것이다. 이렇게 늘어나는 신종 질병에는 당연히 그에 상응하는 치료제가 등장하는데, 이것이 소위 질병의 ‘브랜드화’다. 최근에는 미국의학협회의 정의에 따라 비만도 질병에 포함되었다. 결국 이 시대의 비만은 ‘복합적인 대사증후군과 비정상적인 호르몬 분비’로 인한 질병이자, 나아가 제2형 당뇨병과 심혈관 질환을 일으킬 수 있는 리스크가 매우 심각한 질환이 되었다.
△‘만성질환은 완치가 아닌 악화 방지를 목적으로 복용해야 한다’는 기준은 왜 위험한가.항암제를 제외하고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의약품 품목의 상위 5위까지를 살펴보면 향정신성 의약품(항우울제, 정신병 치료제 등), 콜레스테롤 저하제, 천식 치료제, 당뇨병 치료제, 위궤양 치료제가 자리한다. 이들 약품은 규칙적으로 복용해야 하며 처방약을 먹었다고 완치를 기대할 순 없다. 만성적 증상을 억제하거나 악화를 예방하는 용도의 약품은 하루라도 복용을 거를 경우 금단증상이 생길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여기서 특히 주시해야 할 부분은 질환을 가늠하는 기준 수치의 지속적인 변화다. 고혈압의 정의는 140/90에서 120/80까지로 권고 기준이 넓어졌고,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도 300에서 240, 200에서 130까지 주의 기준이 계속 하향하고 있다. 골다공증의 기준도 마찬가지여서 현재 미국 국립골다공증재단이 발표한 통계에 따르자면 미국인 중 1,000만 명이 골다공증 환자이며 3,500만 명이 조기골다공증 진단을 받았다. 빅 파마는 수치에 민감한 현대인의 성향을 공략해, 계속해서 정상 수치를 끌어내리도록 로비하며 해당 약품을 팔기 위해 갖은 수를 쓰고 있다.
△ ‘임상실험은 중증 환자의 마지막 희망’이라는 기대는 위험하다. 1945년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모든 신약은 임상실험을 거쳐야 한다. 치료제로서의 효능 정도에 상관없이 모든 약품이 거쳐야 하는 통과 의례가 된 것이다. 어떤 약품이 진정한 효과가 있는지 알기 위해서는 20~30년의 연구기간이 필요한데, 당장의 승인을 위해 요식행위로 진행하는 임상실험에서는 절대 기대할 수 없는 부분이다. 더군다나 제약회사는 의사들이 자사 제품을 처방하게끔 유도하기 위해 실험 결과 중 유리한 데이터만 골라낸다. 이런 상황에서라면 획기적인 치료제를 기대하며 몸을 내맡긴 임상실험은 무모한 모험일 뿐이다. 조직적으로 전 세계에 걸쳐 이루어지고 있는 임상실험산업의 전모와 그 안에서 환자와 가난한 이들이 실험용 인간으로 전락해버린 불편한 진실을 22장에서 상세히 마주할 수 있다.
△ ‘세계적 전염병을 예방하고 억제하는 데 주력하는 국제보건기구WHO’라는 믿음에도 의심이 필요하다. 2009년 WHO는 엄숙하게 세계적인 유행 독감 H1N1 즉, 신종플루를 공표했다. 그로부터 1년 동안 WHO의 진단상 20억 건 이상의 (돼지독감으로 불리는) H1N1 사례가 발생했지만 결과적으로 신종플루의 전체 발생 건수는 연간 발생하는 일반적인 독감 사례의 절반 수치에 그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 정부들은 국민에게 독감 백신과 항바이러스 약품을 쓰도록 장려했다. 조류독감 때와 마찬가지로 이러한 세계적 전염병의 발표 다음에는 백신 열풍이 뒤따른다. 독감 대유행을 예상하고 적극적인 예방 캠페인을 벌이는 바람에 충분히 테스트하지 않은 비효율적인 백신을 양호한 사람들에게까지 접종함으로써 부작용의 위험을 감당하게 만들었다. 18장에서는 잘못된 경보를 울릴 수밖에 없었던 WHO의 배경, 초국가적인 규모로 연계된 제약업계의 커넥션을 상세히 짚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