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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불편해야 할 '스포트라이트'가 불편하지 않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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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스포트라이트 포스터

 

폭력은 나쁘다. 그렇지만 폭력을 고발한다면서 폭력을 가하거나 당하는 장면을 여과장치 없이 잔인하게 또는 끔찍하게 그대로 표현하는 것은 또 하나의 간접폭력이다. 경계지점이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예술과 외설로 갈리기도 한다.

토마스 맥카시(Thomas McCarthy) 감독의 폭력에 관한 영화 '스포트라이트'는 다수의 가톨릭 사제가 소년을 성추행한 사건을 소재로 만든 무거운 영화였다. 영화를 보기 전 이 사건이 실제로 일어난 2002년 '보스턴 교구 사제 성추행 사건'을 보도한 기사를 찾아보았다.

당시 열 살 난 소년을 성추행한 혐의로 10년형을 선고받은 존 J. 가이간(66) 사제는 30여 년 동안 무려 130여명의 소년을 성추행했다. 그러나 대교구는 이를 알고도 은폐하다가 문제가 확산되자 그동안 어린이를 성추행한 혐의가 드러난 70여명의 사제 명단을 사법당국에 제출한다.

너무나 충격적인 사건이었기에 영화를 보기도 전, 사제들이 교구 내 소년들을 성추행하는 장면을 어떻게 표현할지 궁금했다.

나의 예상은 빗나갔다. 성직자의 성추행이라는 매우 예민하고 불편한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스포트라이트'에서 그런 장면은 단 한 컷도 없었다. 사제에게 성추행을 당했던 피해자들이 10여 년 전, 자신이 소년이었을 때 겪었던 수치스럽고 모욕적인 순간을 기자에서 폭로하는 '말'(言)이 전부였다. 분노를 억제하면서 때로는 울먹이면서… 그것이 성추행 장면을 전달하는 장치였다. 눈을 감고 싶을 만큼, 숨이 막힐 만큼 불편한 추행 장면은 없었다.

그런데도 '스포트라이트'는 지루하지 않았다. 짜임새 있는 구조와 전개, 진지한 증언, 가톨릭이라는 종교적 성역에 기죽지 않는 기자들의 열정이 맞물리면서 영화는 관객을 사로잡았다.

영화 스파이브릿지 포스터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만든 '스파이 브릿지'에서 보여주는 고문 장면 역시 불편하지 않았다. 1950년대 동서냉전 시대 소련 상공에 침투했다가 포로가 된 미군 조종사가 고문을 받는 장면은 절제와 품위를 지니고 있었다. 미국과 소련 스파이들의 인권문제를 다룬 영화지만, 스파이 교환 과정에 드러나는 인물들 간의 격조 높은 대화와 예우, 존중이 아름답고 품격 높았다.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Bernardo Bertolucci) 감독의 영화 '순응자'는 폭력을 다루는 절제미와 영상미가 돋보였다. 주인공 마르첼로의 연인인 안나의 남편 콰드리 교수가 숲속에서 칼에 찔려 처형당하는 장면은 오마주로 쓰일 만큼 유명하다.

영화 순응자 포스터

 

영화 속에 폭력 장면이 불가피할 때, 잔혹한 장면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방법과 상징을 통해 보여주는 방법 중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는 감독의 몫이라는 데 이의가 없다. 그런데 칼과 도끼로 손목을 자르고 비명이 울려 퍼지는가 하면 발가벗은 몸으로 드러낸 채 춤을 추며 폭탄주를 마시는 장면을 노골적으로 보여주는 영화를 보고 온 날은 어쩐지 불편하고 사납다. 폭력을 비판하고 고발하기 위해 보여주는 폭력 장면이 또 다른 간접 폭력이 되어버린 것 같아서.

시차를 두고 '스포트라이트'와 '스파이 브릿지', '순응자'를 보는 동안 나는 내내, 폭력을 고발하면서도 폭력적이지 않고 품격 있는 한국 영화가 그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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