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모만 썼어도"…어느 청소노동자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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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청소노동자…안전사고에 무방비 ①] 안전불감증이 빚은 후진적인 인재(人災)

우리 사회의 가장 낮은 곳에서 일하는 청소노동자들이 크고 작은 안전사고와 열악한 작업환경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습니다. 이에 따라 CBS 노컷뉴스는 '위기의 청소노동자…안전사고에 무방비'라는 주제로 모두 세 차례에 걸쳐 연속 기획보도를 마련했습니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안전모만 썼어도"…어느 청소노동자의 죽음
(계속)
최근 인천의 한 지하철역에서 50대 청소 노동자가 사다리에서 떨어져 숨지는 안타까운 사고가 일어났다.

이 청소노동자는 '안전모'만 썼어도 살릴 수 있었지만, 인천교통공사는 '안전모 지급 의무'조차 무시한 것으로 드러났다.

추락사고 현장 (민주노총 인천본부 제공)

 

◇ "안전모 지급했다면 목숨 잃지 않았을 것"

사고가 일어난 곳은 지난 10일 오후 1시 45분쯤, 인천지하철 1호선 예술회관역 역무실 앞.

높이 2.7m의 A자형 사다리에 올라가 에스컬레이터 벽면을 청소하던 인천교통공사 무기계약직 A(59)씨가 순간적으로 균형을 잃고 떨어져 머리를 심하게 다쳤다.

A 씨는 병원으로 긴급 후송됐지만 결국 2시간 만에 숨졌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부검 결과, 직접적인 사인은 두개골 골절로 인한 뇌 파손으로 밝혀졌다.

사고를 목격한 여성 청소노동자 3명도 큰 충격을 받아 심리치료를 받고 있다.

용역직이던 A 씨는 지난 2013년 기간제 노동자가 됐고 다시 2년이 흐른 뒤인 2015년 4월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됐다.

하지만 '고용 불안'에서 해방된 기쁨도 잠시였다.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된 지 채 1년도 되지 않아 허망한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동료들은 "불평이나 불만 없이 위에서 시키는 대로 언제나 성실하고 묵묵하게 일했던 조용한 성품이었다"고 그를 평했다.

특히 인천교통공사가 계약직에도 '안전모'를 지급했다면 목슴을 잃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한 동료는 "사실 2.7m 높이의 사다리는 그렇게 높은 곳은 아니다"면서 "A씨가 안전모만 썼어도 지금 살아계실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 "예산 부족으로 안전모 공동사용"…명백한 불법

그렇다면 인천교통공사는 왜 청소노동자들에게는 '안전모'를 지급하지 않았을까?

이와 관련해 안전방재단 관계자는 "청소노동자들은 높은 곳에서 작업할 일이 많지 않은 데다 예산 부족문제도 있어 안전모를 개별 지급하지 않고 공동으로 사용하도록 한다"고 말했다.

이동식 비계

 

하지만 이는 명백한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이다.

현행 산업안전보건법과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에 따르면, 사업주는 노동자가 추락 위험이 있는 장소에서 일할 때는 보호구(안전모나 안전대)를 작업자 수 이상으로 지급하고 착용하도록 하고 있다.

또 작업자가 추락 위험이 있을 때는 비계를 조립하는 등의 방법으로 작업 발판도 설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인천교통공사의 법규 위반은 이뿐만이 아니다.

현행법은 사업주는 중대재해 발생 시 이를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보고하도록 하고 있으며 보고서 내용은 반드시 사전에 근로자대표의 확인을 받아야 한다. 이는 사업주가 보고서 내용을 허위로 작성하는 것을 막으려는 조치다.

하지만 인천교통공사는 근로자대표 확인절차도 무시한 것으로 드러났다.

◇ 인천교통공사의 안전불감증이 빚은 후진적인 인재(人災)

더 큰 문제는 인천지하철 2호선이 오는 7월 개통한다는 사실이다.

현재 청소를 담당하는 인천교통공사 계약직은 약 200여 명이다. 하지만 미화직종은 2호선 개통에도 불구하고 인력 충원계획이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작업 장소와 설비는 많이 늘어나는데 인력이 충원되지 않는다면 그만큼 안전사고의 위험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인천교통공사 이정호 사장은 지난 10일 A 씨가 사고로 운명한 지 약 1시간 30분 뒤인 오후 5시 정각에 전 직원에게 CEO 편지를 보냈다. 주요 내용은 이세돌 9단을 물리친 '알파고'에 관한 것이었다.

이 사장은 "인공지능 혁명의 거대한 흐름에 올라타기 위한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고인이 된 A 씨와 청소노동자의 소중한 생명을 앗아간 주먹구구식 작업시스템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없었다.

이번 사고는 결국 인천교통공사의 안전불감증이 빚은 후진적인 인재라는 지적이 많다. '인공지능 혁명'에 대한 관심을 촉구한 CEO의 외침은 그래서 공허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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