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제제 결의안 채택이 러시아의 막판 제동에 적잖은 진통을 겪었다.
안보리는 당초 지난 주말 결의안 채택이 예상됐지만 러시아가 추가 검토시간을 요구하면서 1일 오후 3시(한국시간 2일 오전 5시)로 1차 연기된데 이어 2일 오전 10시(한국시간 3일 0시)로 다시 연기됐다.
러시아는 2차 연기의 사유로 결의안 상정안(blue text·블루 텍스트)을 회람한지 24시간 경과 후 표결을 진행해온 관행을 거론하며 절차상 문제를 지적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이번 안보리 대북제재안 도출을 주도한 한국과 미국은 물론 중국까지 한 편에 서서 러시아를 설득하는, 국제 외교무대에서는 보기 드문 진풍경이 연출되기도 했다.
그 결과 결의안 초안은 러시아의 요구대로 내용 일부가 수정된 채 블루 텍스트로 상정됐다.
우선, 외국산(러시아) 석탄의 나진항을 통한 제3국 수출은 초안에 담긴 북한 석탄 수출제한의 예외로 인정했다.
항공유 금수 조치의 경우도 고려항공 같은 민항기가 모스크바 같은 장거리 비행을 한 뒤 귀환할 때 재급유하는 경우에 대해서는 인도주의 관점에서 허용했다.
제재 대상 인물도 당초 17명에서 조선광업개발무역회사(KOMID·코미드) 러시아 대표를 제외했다. 이미 제재 대상 기관에 지정된 코미드에 대한 러시아의 제재 이행 책임을 벗어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이밖에 결의안의 5개 부속서 가운데 1개 부속서에 나열돼있는 핵탄두·미사일 관련 민감품목(choke point)의 목록은 추후 조정하기로 했다.
이처럼 내용상으로 보면 중국에 이어 북한의 2대 교역국인 러시아로선 나름대로 자국의 경제적 이해관계를 고려한 결과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수정된 내용이 미세조정 수준이고 러시아 측에 미칠 경제적 파장도 미미한 정도임을 감안하면 뭔가 그 이상의 노림수가 있었다고 보는 것이 상식적이다.
이는 '안보리판 필리버스터'에 비견되는 '김 빼기 작전'의 수혜자가 누구인지를 보면 그 의도를 짐작할 수 있다.
1차적 수혜는 중국마저 외면하며 국제적 고립이 가속화되고 있는 북한에 돌아간다.
러시아의 문제 제기에도 결의안의 내용은 거의 바뀌지 않았지만, 결의 채택이 늦어졌다는 것 자체가 북한에 그릇된 신호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이에 대한 보답과 자기 활로를 찾기 위해서라도 러시아로의 접근전략을 강화할 가능성이 높다.
이미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는 집권 후 첫 외국 방문지로 중국 대신 러시아를 고려한 바 있다.
러시아 역시 취약한 극동·태평양 지역의 관할권을 강화하기 위해 북한의 지정학적 가치에 주목, 북한 내 중국 영향력의 공백을 차지하려 할 것으로 전망된다.
러시아가 대북제재 논의가 한창이던 지난달 말 북한에 밀가루 2,500톤을 전달하고, 지난 1일에는 탈북자 송환 관련 유엔의 성명을 거부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읽힌다.
러시아가 이번에 나진항을 경유한 자국산 석탄 수출은 예외로 인정할 것을 요구한 것은 나진·하산 경협프로젝트 등 장기적으로는 한국과의 제휴를 노린 것으로 보인다.
물론 안보리 제재에 이어 북한 기항 선박의 입항금지 등 추가적 독자제재를 검토 중인 한국으로선 다소 곤혹스런 상황이다.
그러나 러시아로선 우크라이나 문제로 인해 미국 등 서방국의 제재를 받고 있는 상황에서 극동·시베리아 개발은 더욱 절실한 문제가 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러시아는 미·중의 합의마저 제동을 걸 수 있는, 과거 슈퍼파워로서의 글로벌 존재감을 과시하는 소득도 챙겼다.
이는 러시아의 힘이 실제로 그만큼 세기 때문이 아니라 미·중이 경솔하게 일을 처리하다 발을 헛디딘 측면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