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식민사관 비판하면 감옥가는 것 아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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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일 소장 유죄 판결에 사법부 비판 여론 확산

23일 오전 서울 태평로 뉴국제호텔에서 학문의 자유와 나라의 정체성을 지키는 시민 모임 주최로 열린 ‘역사학자 이덕일 소장 유죄판결 항의성명 발표’ 기자회견에 참석한 박정신 전 오클라호마대 종신교수(오른쪽 두번째)가 발언을 하고 있다. (황진환 기자)

 

학문적 논쟁을 재판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는가? 대한민국 재판부는 식민사관을 비판한 역사학자에게 유죄 판결을 내렸다. 이 판결이 내려진 이후 앞으로 역사적 논쟁을 하려면 검사나 판사에게 논쟁을 해도 되느냐고 물어봐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는 자조가 나온다.

지난 2월 5일 서울 서부지법 나상훈 판사는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에게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한 학자의 역사관을 가지고 징역형을 선고한 것은 유신 때는 물론 일제강점기 때도 없었던 일이다.

당초 이 사건은 이덕일 소장이 <우리 안의="" 식민사관="">에서 김현구 고려대 명예교수의 <임나일본부설은 허구인가="">의 내용을 식민사관이라고 비판한 데서 시작되었다. 김현구씨가 이씨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했을 때 서울 서부지검 이지윤 검사는 "학문 및 표현의 자유 보장"이란 측면과 이씨가 "자신의 분석 견해 및 재해석 결과"를 표명한 것이라며 불기소 처분했다.

그런데 서울고검의 임무영 검사가 불기소 결정을 뒤집고 이례적으로 직접 기소했다.

판결에 이르는 과정에서도 피고인의 방어권이 무시됐다는 주장이 나온다. 선고를 나흘 앞둔 시점에 검찰이 변론재개를 신청했고, 변호인의 반대에도 받아들여져 공소장 변경이 이뤄졌다는 항변이다. 판결선고 하루 전날인 2월 4일 오후 4시에 담당판사실은 검찰이 새로 제출한 자료 68쪽을 변호인에게 팩스로 보냈고, 이튿날 오전 10시에 선고한 판결문에 그 내용이 반영됐다것이 이소장측의 설명이다. 윤홍배 변호사는 "법정 밖에서 제출된 참고자료를 근거삼아 유죄판결 이유로 삼아서는 곤란하다. 이 참고자료는 공판에서 증거조사를 거치지 않은 자료이기 때문에 이는 공판중심주의, 증거재판주의에 위배된다"고 밝혔다.

이덕일 소장 유죄 판결 이후 학문적 비판의 자유 침해를 우려하는 여론이 확산되고 있다.'학문의 자유와 나라의 정체성을 지키는 시민모임'중 '학계 원로 모임'은 23일 모임을 갖고, "대한민국은 학문의 자유가 존재하는가?"라는 제목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성명서에는 김명호(성공회대 교수, 사학, <중국인 이야기=""> 저자), 박정신(전 오클라호마대 종신교수, 사학) , 이정우(전 청와대 정책실장, 경제학) 허성관 (전 행정자치부 장관, 회계학) 등 학계 원로 47명이 참여했다.

성명서는 '대한민국은 학문과 비평의 자유가 있는 나라인가?'라고 묻는다. 김현구씨의 <임나일본부설은 허구인가="">에는 두 가지 상반된 기술이 상존하는 데, 검찰과 법원은 김현구씨 저서의 표면적 기술만 받아들여 그 이면을 비평한 이씨에게 징역형을 선고했다는 것이다. 역사학자 E.H 카는 "역사는 어떤 면에서 표면이 아니라 이면을 읽고 해석하는 학문이다. 역사가의 주요한 임무는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평가하는 것을 의미한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지금 대한민국에서 '역사가의 주요한 임무인 평가'를 했다고 징역형을 선고받은 믿을 수 없는 일이 발생했다고 개탄했다.

성명서는 또 '학문의 장에서 다룰 문제를 왜 법정에서 단죄하나?'라고 묻고 있다. 우선 역사학자인 이씨가 전문학자인 김교수를 비판한만큼, 김씨는 법에 호소할 게 아니라 학자 본연의 자세에 맞게 얼마든지 논문이나 책을 통해 반론을 제기했어야 마땅하는 것이다. 김씨가 설사 법에 호소했더라도 앞서 이지윤 검사의 불기소 처분이 맞다는 논리이다. 성명서는 "이 검사의 불기소처분은 대한민국 검찰이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학문의 자유를 옹호하는 사법기관임을 보여준 것이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이후 이 사건의 기소와 유죄판결에 대해 성명서는 "왜 하필 역사논쟁의 장이 재판정이이어야 하는가? 그것도 역사학자를 인질처럼 피고인의 신분으로 묶어놓고 윽박지르는 상황에서 학문의 본질인 자유로운 논쟁이 된다고 생각하는가? 중세 마녀사냥과 무엇이 다른가?"라고 우려했다. 허성관 전 행정자치부 장관은 "명예훼손으로 유죄이기 때문에 임나일본부설을 학자가 더 이상 비판하는 것은 불가능하게 됐다. 앞으로 누가 반박하겠는가. 일본 극우파만 좋아할 일이다"고 지적했다.

성명서는 "이 문제에 대해 앞으로 우리들은 다양한 학문의 공론의 장을 만들 것이다. 이 자리에는 김현구씨와 그 견해에 찬성하는 학자들은 물론 김현구씨의 견해에 반대하는 학자들에게도 폭넓게 개방될 것이고, 이 사건에 관여했던 판· 검사들에게도 개방될 것이다."고 제안했다.

23일 오전 서울 태평로 뉴국제호텔에서 학문의 자유와 나라의 정체성을 지키는 시민 모임 주최로 열린 ‘역사학자 이덕일 소장 유죄판결 항의성명 발표’ 기자회견에 참석한 이종찬 우당장학회 이사장(왼쪽 세번째)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황진환 기자)

 

김현구 교수의 세 가지 관점에 대한 비평

성명서는 이번 재판에서 김현구 교수와 이덕일 교수간에 논란이 됐던 세 가지 쟁점에 대해 대강을 살펴보고 견해를 피력했다.

첫째 임나일본부의 위치이다. 김현구 교수는 임나가 한반도 남부에 있었다고 주장하는데, 이는 메이지 이래 한국을 점령하려는 정한론자들의 시각과 같다. 남한의 최재석·윤내현 등의 학자들과 북한의 김석형 등 모두 임나의 위치를 일본 열도 내로 보면서 한반도 남부설을 강하게 비판했다.

둘째 백제와 야마토왜를 보는 시각이다. 김현구씨는 임나를 지배한 것은 백제라는 논리로 독자를 호도하고 있다. 그러면서 백제와 야마토왜는 대등한 관계였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이덕일씨는 수사에 불과할 뿐이라며 김씨의 저서 이면을 보면 백제를 야마토왜의 속국이라고 서술하고 있다고 비평했다.

셋째 김현구씨가 조선총부의 스에마쓰 야스카즈의 학설을 비판했는가의 여부다. 김현구씨는 총론에서는 스에마쓰를 비판하는 척한다. 스에마쓰설을 비판한다는 것은 그의 핵심논리를 비판해야 하는 것이다. 김현구씨는 <임나일본부설은 허구인가="">에서 자신의 속내를 감추기 위해서 여러 기술을 꾸몄지만 그 이면까지 분석해보면 임나가 4-6세기 한반도 남부에 있었고, 이를 백제가 지배했는데, 그 백제는 야마토의 속국이라고 썼고, 또 야먀토에서 온 왜인들이 전라도까지 직접 지배했다고 썼다.

성명서는 "이런 식민사학의 이면까지 분석해서 비판한 학자가 왜 조선총독부가 아닌 대한민국 법정에 피고인으로 서고 징역형을 선고받아야 하는가? 판사가 적시한 이 소장의 '범행'은 역사서를 서술했다는 것인데, 언제부터 책을 쓰는 것이 이 나라에서 범죄행위가 되었는가?" 묻고 있다.

이번 역사학자 이덕일 소장 유죄 판결은 '독후감이 다르다고 유죄 판결을 할 수 있는거냐?' '앞으로 식민사관 비판하면 감옥가는 것 아니냐'는 말을 낳았다. 이는 학문적 비판의 자유가 심각하게 훼손당했음을, 그리고 사법부의 권위가 추락했음을 의미한다. '이덕일 유죄 판결에 대한 역사학적 반론'을 쓴 황순종(고대사연구가)씨는 글 말미에 이렇게 적고 있다."이제 상급심에서도 이런 판단을 유지한다면 대한민국에서 식민사관을 비판하면 감옥에 가야 한다는 이야기가 된다. 누가 이들에게 이런 권력을 주었는가? 역사의 정의가 승리하리라는 한 가닥의 믿음으로 글을 마친다(주위에서 필자도 감옥갈 지 모른다고 우려하는 소리가 많다)." 이 재판은 이덕일 소장측과 검찰측 모두 항소한 상태여서 항소심과 대법원 최종심을 남겨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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