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의 한 고깃집에서 3개월을 일하고도 업주에게 20여만원밖에 받지 못했던 A(25)씨.
남은 월급을 달라고 노동청에 진정을 넣은 그는 업주로부터 "벌금을 내더라도 네 월급은 줄 수 없다"는 말과 함께 폭행당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사건을 맡은 담당 근로감독관은 한달 동안 '업주가 출석 일정을 계속 미룬다'며 조사를 하지 않았고, 결국 A씨는 시간만 낭비한 채 업주를 상대로 민사소송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근로감독관의 소극적 조사 태도에 항의해 민원까지 낸 A씨는 "이게 이렇게 오래 걸릴 일이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인천의 한 주점에서 일했던 김모(26)씨 또한 체불 임금을 받겠다며 노동청을 찾았다가 고개만 숙인 채 돌아왔다.
담당 근로감독관으로부터 "근무시간을 확인하기 위해 출퇴근 명부를 가져오라"는 답을 들었지만, 수당 문제로 이미 여러차례 다퉜던 업주가 지켜보는 업소에 들어가 명부를 가져올 방법이 없기 때문.
"업주가 자료 제출을 강제할 권한이 없다"는 근로감독관은 "민사 소송까지 진행하면 시간도 비용도 많이 소모되니 요구한 수당 일부라도 받으라"며 합의를 종용했다고, 김씨는 전했다.
◇ '접수폭발' 예상에도…절반도 안 되는 해결률
고용노동청 근로감독관은 해고나 임금체불 등 노사분쟁에서 노동자들이 일일이 송사를 벌이지 않고도 권리를 구제받도록 하는 일종의 원스톱(One-stop) 서비스 역할을 한다.
하지만 위와 같은 사례처럼 근로감독관의 부실한 업무처리로 인한 불만이 커지고 있다.
실제로 2015 고용노동백서에 따르면, 지난 2014년 전국 노동청에 신고된 사건 중 행정종결이나 사법처리된 사건의 비율(지도해결률)은 48.9%로 절반에 미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노동자들 사이에서는 근로감독관이 '업주 편들기'를 한다는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어서, 알바노조는 이러한 이유로 지난달 22일 서울고용노동청 민원실 점거농성을 벌이기도 했다.
올해 이같은 노사 갈등은 더욱 격화될 전망이다.
정부가 추진하는 노동관련법 개정안이 국회에 계류 중인 가운데 '쉬운 해고'와 취업규칙 변경요건 완화 등 '양대 지침'이 25일부터 현장에 적용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그동안은 양대 노동조합 중심으로 제기하던 문제가 현장으로 이어질 것으로 보여, 정부가 분쟁에 개입하는 사실상 첫 관문인 고용노동청에 접수가 '폭발'할 것으로 보인다.
◇ 감독관 결정에 엎어진 물…"주워 담기도 힘들다"
문제는 근로감독관이 사건을 어설프게 처리하거나 소홀히 넘기게 되면 이는 자칫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낳기도 한다는 점.
노사 갈등이 형사소송으로까지 이어질 경우 사건이 검찰에 송치되기 전 근로감독관은 사법경찰관/리의 지위로 1차 판단을 내리는 까닭이다.
노무법인 삶 홍종기 노무사는 "검사들은 일반적으로 근로감독관에게 전문성이 있다고 인정하기 때문에 그들이 내린 결정을 뒤집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고 밝혔다.
이어 "민사소송에서도 사측이 노동부의 결정을 참고자료로 제출하면 영향을 주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 "그럼에도 근로감독관의 결정을 행정행위로 보지 않아 근로감독관의 잘못된 판단에 대해 불복할 수 있는 장치가 없다"고 덧붙였다.
노동자의 권리구제를 위해 마련한 근로감독관 제도가 경우에 따라서는 문제를 악화시키고 만다는 지적이다.
민주노총 서울본부 최진수 노무사는 "근로감독관은 어려운 소송 절차를 대신해 노동자들에게 보다 친숙하게 이용하라는 취지로 만들어진 제도"라며 "하지만 여기서 문제 해결이 좌절되는 경우가 많아 노동자들이 신음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