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정부의 개성공단 가동 전면중단 조치에 북한이 하루 만에 남측 인원 전원을 추방하고 자산을 전면 동결한 가운데 11일 저녁 개성공단에 남았던 남측 인원들을 태운 차량이 남북출입국사무소를 지나 통일대교를 건너고 있다. (사진=윤창원 기자)
어렵사리 시작한 사업이 정부 한 마디에 끝났다. 8년 전, 개성공단에 입주할 때만 해도 이렇게 허무하게, 빈손으로 내쫓기듯 나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전자통신 부품을 도금하는 업체 대표 정모씨는 가족들의 걱정과 수백억 원의 대출금을 껴안고 지난 2007년 개성에 공장을 짓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듬해 입주했다. 처음에는 눈도 마주치지 않으려던 북한 직원들이었다. 그래도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자꾸 보니 정도 들고, 연대감은 그렇게 쌓여갔다. 직원도 점차 늘어 북한 근로자는 어느새 1300명을 훌쩍 넘겼다.
설 연휴 대체휴일이던 지난 10일, 믿기 힘든 일이 벌어졌다. 우리 정부가 개성공단 전면 폐쇄를 선언한 것이다. "정부가 미쳤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국민을 담보로, 하루아침에 이렇게 해도 되는지 대통령한테 따지고 싶었다.
3년 전 악몽이 떠올랐다. 그러나 지금에 비하면 그때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때는 완제품이나 원자재 등을 상당 부분 빼 오기라도 했다. 그럼에도 100억원 가량 손해를 봤다.
이번에는 북한의 추방 명령과 자산동결로 제품, 설비들을 모두 남겨둔 채 황급히 공단을 빠져나와야만 했다. 서둘러 차에 짐을 싣기는 했지만 한 대로는 어림도 없었다.
연휴가 끝나고 당장 다음 주부터 설비와 발주를 맡은 게 산더미인데, 거래처와의 약속을 모두 못 지키게 됐다. 위약금도 물어야 한다. 이에 대한 손실만 따져도 무려 300억 원. 무형의 거래처까지 모두 사라지게 됐다. 여기에 영업권, 투자비, 설비비 등에 직원들 인건비까지…계산조차 되지 않는다. 지금은 거래처에 "사정을 봐달라"고 빌어보는 것 외에는 아무런 방법도 떠오르지 않는다.
정부에서는 남북경협보험으로 입주 기업들의 손실을 보전해주겠다고 한다. 하지만 입주 기업 상황은 알기나 아는 걸까. 입주 기업 절반은 보험에 들고 싶어도 자본잠식 등 이런저런 이유로 보험가입조차 못 한 상황이다. 나 역시 여기에 포함된다. 피해액을 보전받을 길이 막막하다. 3년 전에도 보상해준다고 했지만 2% 이자로 10억 대출받은 게 전부였다.
배신감이 밀려온다. 정부가 들어가라 해서 들어갔고 나오라고 해서 두 번 나왔다. 대한민국 국민 대접을 받고 싶은데 대접을 못 받는다는 게 한탄스럽다. 정부 정책에 의해서 아무런 보상도 없이 8년간의 사업을 철수해야 한다는 현실이 막막하다.
당장 하루아침에, 짐을 챙길 여력도 없이, 북한 근로자와 작별 인사를 나눌 틈도 없이, 두 번 다시 안 볼 것처럼 갈라서게 됐다. 반드시, 갑작스레, 개성공단 문을 닫는 것 외에는 방안이 없었던 건지 묻고 싶다. 적어도 입주 기업에는 충분한 철수 시간이라도 줘야 하는 게 아니었을까.
개성공단은 이제 끝이다. 사태가 개선된다 해도 다시 돌아갈 일은 없다. 신뢰가 생명인 기업 입장에서, 또 북한에서 미사일 쏘면 철수해야 하는 위험 부담을 안고, 운영과 투자를 시작할 수는 없다.
빚만 200억 원이다. 큰아들은 이제 대학생이다. 둘째는 중학생, 막내아들은 아직 초등학생이다. 큰 애 대학등록금을 포함해, 지금까지 들인 돈보다 들어갈 돈이 더 많다.
직원들 역시 대부분 중년이다. 내가 힘들다고 직원들을 내친다면 그 가족들을 볼 낯이 없다. 정부는 기업을 '나 몰라라' 하지만 나는 직원들을 품고 가려 한다. 직원들도 모두 내 새끼다. 가장인 내가 해결할 일이다. 돈도 벌면서 남북교류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될까 했던 바람은 욕심이었나 싶다. 그저 정치적 볼모로 잡힌 대한민국 기업인일 뿐이었는데.
나와 같은 개성공단 입주 기업인들이 정부에 책임을 촉구했다. 정부가 기업들의 피해를 보상해주지 않으면 소송도 불사하겠다는 각오다. 124개 업체에 보상금을 다 쥐여줄 계산이 있었으니 과감히 철수 명령을 내린 것이리라. 그것마저 안 한다면 정부는 더이상 정부가 아님을 증명하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