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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컷 영화톡]'검은 사제들' 돌풍…"강동원이 끌고 엄혹한 현실이 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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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11-1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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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고 보는 배우 캐스팅 '마중물'…비판적 사회인식 '원동력'

김윤석·강동원 주연의 '검은 사제들'(감독 장재현)이 늦가을 극장가에 돌풍을 몰고 왔다. 천주교 사제들의 '구마'(마귀를 쫓아냄) 의식이라는, 한국영화에서는 다소 낯선 소재를 다뤘다는 점에서 "한계를 지녔다"는 목소리도 있었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뛰어난 연기력과 티켓파워를 지닌 배우들을 앞세워 초반 흥행에 불을 지폈다. 이 영화가 빠른 속도로 400만 관객 고지를 점령해 가는 데는 또 다른 힘이 숨어 있지는 않을까. CBS노컷뉴스 이진욱·유원정 기자가 검은 사제들을 두고 나눈 이야기를 전한다. [편집자 주]

 

이진욱: 수능 다음날인 13일 극장을 찾아 검은 사제들 입장권을 끊는데, 옆에 있던 10대들이 "검은 사제들 몇 명이요"라면서 수험표를 내보이더라. 극장 스태프에게 물어보니 "수험생들에게 할인 혜택을 주고 있다"고 답했다. 강동원이라는 배우의 티켓파워를 떠올리면서 '보다 싸게 영화를 볼 기회를 얻은 10대들의 선택은 검은 사제들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다. 이 영화의 흥행세가 쉽게 수그러들지는 않을 것 같다.

유원정: 검은 사제들의 흥행에는 강동원의 공이 커 보인다. 무시할 수 없는 티켓파워를 지닌 젊은 배우가 중심에 선 영화는 오랜만이라는 느낌이랄까. 10대는 물론 20~30대까지 젊은 세대의 폭넓은 열광을 이끌어내면서 재관람으로도 이어지는 분위기다.

이진욱: 기존에 봐 온, 천주교 사제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영화의 근엄한 분위기가 이 영화에서는 부각되지 않는다. 사제들의 일상을 자세히 그려내면서 교단의 세력 갈등도 살짝 녹여냈다. 속세와의 연결점을 잘 찾아간 모습이랄까. 극중 인물들을 바라보면서 '저들은 나와는 다른 존재'라는 괴리감이 덜하더라. '결국 우리네 이야기를 하려는구나'라는, 일상성이라는 포석을 잘 깐 느낌이다.

유원정: 영화에 처음 도입되는 소재의 중요성을 새삼 깨달았다. 천주교 사제를 등장시켜 '엑소시즘'을 다룬 할리우드 영화는 많이 봐 왔다. 국내에서는 낯설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점에서 잘 다뤄오지 않았던 듯한데, 검은 사제들은 특별한 정서적 충돌 없이 괜찮은 결과물을 뽑아냈다. 검은 사제들은 장르적으로 완전한 공포영화가 아니다. 키아누 리브스 주연의 '콘스탄틴'(2005)처럼 액션을 강조하지도 않았다. 결국 한국의 정서에 맞춰 배우들과 소재의 힘을 최대한 활용한 점이 주요했다. 곳곳에 비치된 유머 코드도 흥미롭다.

이진욱: '대물림'이라는 코드를 접목시켰다는 점에서 이 영화의 정서는 한국적이다. 극중 주류 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구마사'의 길을 택한 소수의 사제들은 어두운 곳에서 활동하며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그 길은 극중 정신부(이호재 분)에서 김신부(김윤석 분), 그리고 최부제(강동원 분)에게로 대물림 된다. 영화에 등장하는 무속인 부녀도 같은 맥락이다. 영화 속 대사를 빌리면 "선을 넘는" 최부제의 각성은 그 대물림이 어떠한 함의를 지니는지 단적으로 드러낸다.

유원정: 이 영화의 각본과 연출을 맡은 장재현 감독 역시 비주류의 사람들이 세상을 바꿔 간다는 메시지에 대해 이야기하더라. 영화에도 그러한 점이 배우들의 이름값에 묻히지 않고 잘 드러났다고 본다. 극중 빛이 들지 않는 어두운 방 안에서 구마 의식을 벌이는 김신부, 최부제의 모습은 소위 할리우드 영화 속 슈퍼 히어로들과는 거리가 멀다. 구마의식이라는 초현실적인 소재를 다뤘음에도 현실 인식에 바탕을 둔 사실주의를 놓치지 않은 점이 관객들에게 특별한 희망을 안기는 듯하다.

영화 '검은 사제들' 스틸컷(사진=영화사 집 제공)

 

이진욱: 카메라에 담긴 대도시의 모습은 몹시 인상적이더라. 인파로 가득찬 불야성의 대로에서 한 발짝만 벗어나면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는 듯한 어두컴컴한 골목들이 자리하고 있다. 빛으로 넘쳐나는 대로에서 한줌 빛을 보기 힘든 골목을 바라보거나, 그 반대의 시선이 영화에서 주를 이룬다. 대로의 사람들이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그 골목에는 구원의 손길을 기다리는 이들이 있다. 김신부의 대사처럼 "아무도 안 알아 주고, 아무런 보상도 없을 텐데"도 극중 개인적 고통을 타인에 대한 구원으로 승화시키는 최부제의 각성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유원정: 동감이다. 극 말미 골목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대로로 뛰쳐나왔던 최부제가 조금 전까지 몸담고 있던 그 골목을 바라본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아픈 과거와 마주한다. 누구나 힘든 길을 벗어나 주류에 편승하고 싶은 마음을 지니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상처를 지닌 사람들을 그 어두운 골목에 남겨두고 떠날 수 없다는 마음, 그 고통을 직시하고 개인의 아픔을 이겨내는 최부제의 모습에 크게 공감했다. 고교생 영신(박소담)의 몸에 깃든 악령 이야기를 안할 수 없다. "너희가 나를 만들었고, 내가 너희를 해할 것"이라는 악령의 대사는 결국 그 책임이 인간에게 있다는 말과 다름없다. 결국 인간의 잔인함이 악령을 키웠다는 말로 다가오더라.

이진욱: "네 어미의 유방을 돌덩이로 만들어 버리겠어"라는 악령의 대사가 잊히지 않는다. '일베'(일간베스트저장소) 등을 통해 우리가 현실에서 맞닥뜨리고 있는, 여성·이주노동자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혐오로 가득찬 말이 떠오른 까닭이다. 뚜렷한 이유도 없이 사회적 모순의 탓을 약자에게 돌려 버리는 이러한 혐오문화가 한국 사회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 이는 성찰 없는 우리 사회의 악마성이다.

유원정: 그처럼 섬뜩한 말이 악령의 입에서 나왔느냐, 인간의 입에서 나왔느냐라는 차이만 있을 뿐 결국 사회에 미치는 해악은 다르지 않다. 이 점에서 영화 속 악령의 모습은 우리를 비추는 거울과 같다. 중국어를 섞어 말하는 악령이 난징대학살을 언급하는 부분이 있다. 인류 역사에서 지울 수 없는 잔인한 사건을 접할 때면 '정말 악마가 한 짓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결국 인간이 벌인 일들이다. 원인으로서의 악마가 아닌, 결과로서의 악마성인 셈이다.

이진욱: 검은 사제들을 보면서 "가만히 있으라"는 표현으로 드러나는 한국 사회 권력층의 동물성이 떠오른 것은 왜일까. 최부제가 과거를 직시하는 장면, 악마가 깃든 극한의 상황에서도 최선을 다해 싸우는 고교생 영신의 모습은 세월호 참사로 하늘의 별이 된 아이들과 겹쳐진다. 이 영화는 사회적 사건을 외면하기 쉬운 현실에서 우리에게 "선을 넘으라"고 말한다. 상업영화라는 외형을 띤 검은 사제들의 속살은 사회파 영화였다.

영화 '검은 사제들' 스틸컷(사진=영화사 집 제공)

 

유원정: 검은 사제들의 원작이 단편영화 '12번째 보조사제'다. 상업성을 전제로 하지 않은 작품에 근간을 두고 있기에 뚜렷한 사회적 메시지를 담을 수 있었을 것이다. 선을 넘는 비주류, 그러니까 역사를 발전시키는 데 힘을 보태 온 이들에게 관대한 사회였다면 이 영화가 이처럼 의미심장하게 다가오지는 않았을 것 같다. 선을 넘는 사람들에게 프레임을 씌우면서 배척하는 우리네 현실이 안타깝다. 사회 현실을 되돌아볼 수 있는 동시대성을 지닌 이 영화의 힘은 원작에 있다고 본다. 검은 사제들을 시작으로 비주류 단편영화를 장편화 하는 작업이 많이 이뤄졌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이진욱: 물론 스펙터클한 볼거리를 강조하는 상업영화의 당연한 선택이었겠지만, 극중 두 사제의 실천이 영웅적으로 비칠 수도 있는 점은 아쉽다. 소수 영웅들이 역사를 발전시킨다는 관점은 우리 사회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 사회 구성원 전반의 노력으로 역사가 발전한다는 민주주의적 역사관은 한국영화 안에서도 알게 모르게 외면당하고 있다. 뜯어보면 이 영화에서 악령을 잡으려는 노력은 많은 사람들의 힘으로 이뤄지고 있다. 감독도 이를 의도한 것으로 보인다. 극 초반 등장하는 외국 사제들과 중반의 무속인이 그렇고, 악령이 깃든 영신의 노력도 그러하다. 단순 소비되기 십상인 상업영화를 비판적 관점으로 바라보면서 '감상'의 영역으로 끌어들이는 것은 오롯이 관객의 몫이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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