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서울 세종대로에서 열린 민중총궐기대회에서 민주노총 등 53개 노동·농민·시민사회단체로 이뤄진 '민중총궐기 투쟁본부' 참가자들이 경찰들과 충돌했다. (사진=윤성호 기자)
지난 주말 서울 도심에서 벌어진 과격시위를 계기로 공권력의 정당성과 범위를 놓고 또다시 논란이 되고 있다.
때마침 프랑스 파리에서 130명의 생명을 앗아간 IS(이슬람국가)의 테러와 중첩되면서 시위의 폭력성은 더욱 강렬한 반감을 남겼다.
그런데, 그 와중에 쓰러져 사경을 헤매고 있는 한 70대 농민에 대해 정부에서 누구도 자비의 시선을 보내지 않고 있다.
김현웅 법무부 장관은 15일 대국민 긴급담화문을 발표하고 "불법 폭력시위에 엄정대처하고 배후를 끝까지 추적하겠다"고 말했다.
쓰러진 농민에 대해는 일체의 언급이 없었다. 경찰의 후속조치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강신명 경찰청장과 구은수 서울경찰청장은 "시위진압 과정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대한민국 공권력이 어쩌면 이렇게 가혹할 수 있다는 말인가?
공권력이 최강인 미국과 중국에서조차 범인을 체포하는 과정에서 불미스런 일이 벌어지면 경위조사를 하고 피해자의 상태를 확인하는게 관례다.
그런데, 우리경찰은 중태에 빠진 백 모씨에 대해 형식적이라도 안타까움을 표시하기는커녕 "물대포 살수차 운용에 문제가 없었다"며 공권력의 정당함을 강조하는데만 급급하고 있다.
지난 14일 서울 종로구청 입구 사거리에서 시위대가 캡사이신을 섞은 물대포를 맞고 쓰러진 전남 보성군 농민회 백남기(69) 씨를 긴급히 옮기고 있다. 백 씨는 서울대병원 응급실로 긴급 후송됐지만 생명이 위독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윤성호 기자)
경찰이 15m 밖에서 물대포를 쏘아야 한다는 규정을 위반하고 백씨 가까이에서 물대포를 직사했다는 증언과 영상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조차 공권력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것을 정당화하고 있다.
물론 폭력시위는 국민들의 공감을 얻지 못한다. 그렇다고 경찰의 규정을 어긴 비인도적 진압방식까지 용인되는 것은 아니다.
경찰이 중태에 빠진 농민 백씨에게 따뜻하고 진솔한 아량을 베풀면서 공권력의 정당성을 강조한다면 공권력은 더욱 위엄을 가질 것이다.
서울역고가공원을 둘러싼 경찰의 처신에서도 편협함은 그대로 드러난다.
서울고가공원 조성사업은 박원순 서울시장의 대권 치적쌓기라는 정치적 논란에서 경찰이 절대자유를 누려야 할 사안이다.
차량통제의 권한이나 책임이 경찰과는 상관없고 서울시에 온전히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경찰은 7월과 8월 교통안전시설심의위원회에서 두 차례나 심의를 보류했다. 사실상의 불허다. 마땅한 이유나 논리도 없다.
그저, 교통혼잡을 가중시킬 것이라는 말만 '전가의 보도'처럼 되뇌이고 있다.
'서울역고가공원' 조감도 (사진=서울시 제공)
그때마다 서울시는 교통혼잡 보완대책을 보강해 서울시에 거듭 심의를 요청했다.
그러자, 국토교통부에 바통을 떠넘겼다. 고가차도에 공원을 조성하는 것이 노선변경에 해당하는 것인지 국토부의 유권해석을 받으라는 것이다.
그러는 동안 교통심의위원회가 2차례나 더 열렸지만 경찰은 서울역고가공원 문제는 안건에 조차 상정하지 않았다. 무책임의 극치요 편협함의 절정이 아닐 수 없다.
국토교통부 산하 국토연구원측은 "고가차도를 폐쇄해도 교통에 큰 문제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서울시에 공식통보만 남은 상태다.
이제 다시 바통은 경찰로 넘어왔다. 이명박 서울시장 시절 청계천복원 사업 때는 물론이고 지자체의 사업과 관련해 경찰이 교통심의를 보류한 사례가 단 한 차례도 없다.
서울역고가공원 사업을 불편한 정권의 따가운 시선에 경찰의 심장이 쪼그라들고 있다고 진솔하게 고백하는게 차라리 낫다.
진실하지 못한 편협함이 국민의 생명과 시민의 안전을 외면하고 있다.
"진실한 사람만 선택받게 해달라"는 대통령의 말씀은 "진실한 공권력만 선택받게 해달라"라는 표현의 보충설명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