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서울 도심에서 열린 '민중총궐기' 집회에 참석했다가 경찰의 물대포에 맞고 쓰러진 농민 백남기(69) 씨가 중태에 빠져 생명이 위태로운 가운데, 구은수 서울지방경찰청장은 "과잉진압하지 않았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구 청장은 15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부상당한 농민은 안타깝지만, 수술이 잘 됐으니 빠른 쾌유를 빈다"며 이같이 밝혔다.
백씨는 전날 저녁 6시 50분쯤 서울 광화문광장 일대에서 열린 민중총궐기 집회 도중 경찰이 직접분사한 물대포에 맞아 쓰러지면서 머리를 다쳐 서울대병원으로 옮겨졌다.
백씨는 외상성 경막하출혈(traumatic SDH)로 혼수상태에 빠져 4시간여에 걸친 대수술을 받았지만, 아직 의식을 찾지 못한 채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이에 대해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조영선 사무총장은 "백씨가 쓰러져 근처 인도로 구조될 때까지 최소 20여초 이상 물대포를 맞았다"며 "경찰이 관련 법령의 살수 주의사항을 무시했고, 이는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의도"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구 청장은 "청문감사관을 통해 조사했지만 이번 살수 사용은 규정 위반이 아니다"라며 "방법과 시기, 절차 등에서 운용 규정에 맞게 쐈다"고 잘라말했다.
◇ 영상 고스란히 남은 물대포 '조준사격'… 일흔 노인 상반신을 '직격'
하지만 경찰이 물대포로 백씨의 상체를 '조준사격'했다는 지적이 제기되자 구 청장은 "영상을 봤지만, 거리가 있어서 가슴 위인지, 아래인지는 더 확인해야 한다"고 한 발 물러섰다.
실제로 CBS노컷뉴스가 집회현장에서 백씨가 물대포에 맞아 쓰러진 순간을 촬영한 영상 등을 살펴보면 경찰이 관련 규정을 위반한 채 물대포를 살포한 사실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경찰 운영지침에서는 물대포를 직선으로 쏘는 직사살수 요건으로 '쇠파이프·죽봉·화염병·돌 등 폭력시위용품을 소지하거나 경찰관 폭행 또는 경력과 몸싸움을 하는 경우' 또는 '차벽 등 폴리스라인의 전도·훼손·방화를 기도하는 경우'로 규정하고 있다.
또 직사살수를 할 경우 안전을 고려해 가슴 이하 부위를 겨냥해 사용하도록 규정됐다.
그러나 영상에서 백씨는 폭력 시위용품은커녕 차벽 버스를 끌어내기 위한 밧줄도 잡지 않았고, 물대포에 가슴 아래가 아닌 얼굴을 곧바로 직격당해 쓰러졌다.
백씨는 물줄기에 맞아 약 2m 가량 밀려났고, 이후 20여초 동안 의식을 잃은 채 물대포를 맞았다.
이에 대해 구은수 서울청장은 "사용자가 현장을 유리창을 통해 직접 볼 수 없고, 카메라를 통해 물대포를 조작한다"며 "청문감사관도 이 부분을 지적해 개선해야겠다고 생각한다"고 해명했다.
◇ 구 청장, '물대포 몇 rpm으로 쐈나 기록 없다' 경찰의 살수차 운영지침에는 먼저 살수차를 사용한다고 경고방송한 다음 경고살수→분산살수→곡사살수→직사살수의 과정을 거치도록 되어있다.
그러나 구 청장은 "경고 살수한 뒤 곡사한 다음 직사해야 하지만, 곡사로 해서는 큰 영향력이 없어 곧이어 직사한다"며 그동안 적절한 사전 조치를 취해오지 못한 점을 인정했다.
이와 관련해 경찰 관계자는 "살수 세기는 운전자가 페달을 밟으면 rpm이 올라가는 식으로, 당시 몇 rpm으로 쐈는지 정확한 기록이 없다"며 "3000rpm 이상 살포할 수 없도록 차량이 제한됐고, 어제는 2500rpm 이하로 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하지만 운영지침에 따르면 시위대가 10m 거리에 있는 경우 1000rpm(3bar) 내외, 15m 거리는 1500rpm(5bar), 20m 거리는 2000rpm(7bar) 등으로 거리 규정을 엄격하게 두고 있다.
조 사무총장은 "백씨가 코뼈가 함몰되고 안구에도 이상이 있다"며 "물대포에 맞아 뒤로 쓰러졌던 만큼 넘어지면서 얼굴을 다친 게 아니라 물대포에 맞으면서 뼈가 부러졌던 것으로 본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와 함께 구은수 서울청장은 "집회 시위 현장 주변에는 절대 차벽을 치지 않는다"며 "우리도 주차해야 하니 언제든 차벽을 칠 수 있도록 차량을 대기시킨 것 뿐"이라고 해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