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직은 커녕 비정규직 일자리도 구하지 못해 꿈을 포기하는 젊은이들. 취업난 속에 연애, 결혼, 출산은 이미 포기했다는 '삼포세대'들은 "눈높이를 낮추라"는 어른들의 충고에 "낮춰도 갈곳이 없다"며 발끈한다. 졸업 후 평균 학자금 빚만 1500만원에 육박하는 현실. 부모님 잘 만나 아르바이트 걱정없이 공부에 전념하는 일부 '금수저'를 제외한 대부분의 '흙수저'들은 오늘도 '컵밥'으로 허기를 달래며 하루를 산다.취업을 위한 스펙쌓기에 거리공연까지 동원하고 극한 아르바이트가 만년 직업이 되는 청춘들. 고학력에 외국어능력, 전문 자격증까지 소지해도 서류전형조차 통과할 수 없는 좁은 취업문. 그리고 끝내 범죄에까지 내몰리는 이땅의 신음하는 젊은이들을 CBS노컷뉴스가 3차례에 걸쳐 돌아본다. [편집자주]"일자리는 최고의 복지이자 인간의 존엄성입니다, (취업준비생 수당지급이 포퓰리즘이란 지적은) 청년실업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당하는 고통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비판들을 합니다, 현장에 20일이라도 가보고 그런 말을 하셔야지요."
박원순 서울시장은 9일 청년수당 지급정책에 대한 중앙정부와 여당의 비판에 대해 이렇게 일침을 가했다.
제대로 된 일자리조차 얻지 못해 좌충우돌하는 이땅의 '흙수저'들의 삶은 과연 어떨까?
단돈 몇천원이라도 손에 쥐기 위해 생계형 아르바이트에 나서는 취업준비생들에게 취업은 지상과제다.
◇ "흙수저의 삶 받아들이고 살고 있어요"
오리 공장에서 일했던 김진우(28)씨
땀이 많은 김진우(가명·남·28)씨는 지난해 여름 방학 때도 쉬지 않고 거리를 돌아다니며 일거리를 찾았다.
방학 동안 뼈 빠지게 일하지 않으면 다음 학기 대학 등록은 꿈도 꾸지 못하는 상황.
전남 광주에 있는 오리 정육 공장에서 일당 1만원을 더 얹어 주겠다는 말에 진우씨는 한달음에 달려갔다.
진우씨는 이곳만 생각하면 아직도 속이 매스껍다고 한다.
"약품냄새랑 오리 내장냄새가 섞인 악취가 진동했는데 마스크도 주지 않았어요, 머리가 어지럽고 속이 매슥거릴 정도였습니다."
진우씨는 "바닥에는 오리 내장들이 굴러다니고 공장은 1980년대에 나올법한 허름한 모습이었다"며 말끝을 흐렸다.
진우씨는 수백마리의 오리를 산채로 컨베이어벨트에 거꾸로 매다는 작업을 했다.
오리들은 비명을 지르다가 곧 기계에 의해 목이 달아났고, 호스가 오리의 항문으로 들어가 내장을 빨아들였다.
진우씨는 "호스가 내장을 빨아들일 때마다 피와 내장이 사방팔방으로 튀면서 얼굴에 묻기도 했다"며 "그런 장면을 보니까 정말 한동안 오리나 닭고기를 못먹겠더라"고 말했다.
열악한 환경에서 10일 동안 일하면서 진우씨가 번 돈은 고작 80만원. 일반 사립대학 등록금의 1/4에도 못 미치는 돈이다.
오물 배수관 철거 등 안 해본 일이 없다는 진우씨는 "정말 치사하고 서럽지만 아르바이트는 내게 단순한 용돈벌이가 아닌 생존수단"이라며 "흙수저의 삶을 받아들이며 살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집안 사정이 어려워 가족들이 흩어져 사는 데다 최근 아버지가 공장에서 다치셨다"며 "괜히 내 이야기를 해 또다른 걱정을 끼쳐드릴 수는 없다"고 고개를 떨궜다.
◇ "집에 올 때마다 동상에 걸린 몸을 녹였어요"
경마장에서 일했던 정명조(28)씨
졸업을 앞두고 취업을 준비 중인 정명조(가명·남·27)씨는 지난해 겨울 학업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하기 위해 금요일과 주말에만 열리는 경마장에서 '문자카드'를 판매했다.
문자카드는 경마업계에 잔뼈가 굵은 사람들이 나름의 분석으로 경마경기를 예측한 정보가 담겨있다.
이때 명조씨는 난생처음 경찰에 신고를 당했다.
명조씨는 "문자카드의 예상이 틀리면 술 취한 사람들이 욕을 하며 주먹으로 위협을 가하기도 했다"며 "한번은 고객이 문자카드가 사기라며 경찰에 신고해 신분조회를 당했다"고 말했다.
이어 "매번 항의하는 고객에게 머리를 조아리며 사과해야 했다"며 "내 잘못이 아닌 일로 사과하는 게 굴욕적이었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돈이 급했다"고 서러움을 토로했다.
들고 나간 물병이 얼어붙을 정도로 추운 날씨에 밖에 계속 서 있는 일도 곤욕이었다.
명조씨는 "집에 올 때마다 동상에 걸린 몸을 녹였다"며 "몸이 뻣뻣해졌고 퉁퉁 부은 발가락이 간지러워 괴로웠다"고 회상했다.
명조씨의 가세가 기울기 시작한 건 2010년 아버지 사업이 어려워지면서부터다.
"군대에 갔을 때 집이 이사를 했어요, 휴가를 나와보니 내 장롱이 밖에 나와 있더라구요, 힘든 사정을 알게 되니 전역 이후에 가리지 않고 일거리를 찾았지요."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8월 20대 비정규직 노동자는 111만 8000명으로 20대 임금근로자의 32.1%에 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