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검은 사제들' 주연배우 김윤석. (사진=황진환 기자/자료사진)
50대를 앞둔 배우 김윤석을 이야기할 때는 '리얼리티'를 빼고 논할 수 없다.
김윤석의 연기는 언제나 현실감이 넘친다. 그래서 비현실도 현실로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다. 영화 '검은 사제들'은 그런 '납득 가능한 연기'의 힘이 제대로 발휘된 영화다.
영화 속 김 신부는 곧 김윤석이었다. 철저한 이성으로 무장한 김윤석은 특유의 묵직함으로 중심이 무너지지 않도록 버텼다.
충무로 대표 배우인 그가 원하는 것은 화려한 주목이나 원톱 배역이 아니었다. 김윤석은 자신이 가야 할 길을 명확히 알고 있었다.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하는 많은 것들. 배우에게 있어서는 그것이 낙오일 수도, 절망일 수도 있다. 김윤석은 이미 그 변화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준비를 마친 듯 했다. 그가 지금까지 어떤 배역이든 정면 돌파해온 것처럼 그것은 배우가 가질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용기다.
다음은 영화보다 현실에서 더 유쾌한 배우 김윤석과의 일문일답이다.
▶ 감독님이 '검은 사제들'을 두고 '말로 하는 액션'이라더라. 구마예식의 중심에 있던 김 신부 역할을 연기한만큼, 힘든 지점이 있었나?
- 예식을 하는 장면이 거의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이다. 직접 해보니까 힘들더라. 이게 정신적인 싸움이다. 일단 내면으로 싸우다 보니 긴장감을 유지하는 게 힘들었다. 차가운 이성으로 작전을 짜면서 당근과 채찍을 사용해야 되고 에너지를 유지하는 부분도 힘들었다. 촬영 감독들도 고생이 많았다. 좁은 다락방에서 다양한 각도 촬영을 해야 하니까 벽을 뜯어내고 다시 붙이고 그런 과정들이 있었다.
▶ 궁극적으로 '검은 사제들'이 주는 메시지는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나?- 이 영화는 현대인들이 모두 갖고 있는 트라우마에 대한 두려움과 싸워 이기는 내용이기도 하다. 특히 비주류에 속한 사람들이 구원해 낸다는 의미가 제게는 현실감이 있었다. 사실 지금 우리 사회는 정의와 불의가 무엇인지 헷갈릴 정도다. 종교 이야기를 소재로 했지만 소신과 믿음을 갖고 나아가라는 측면에서는 거의 우리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영화 '검은 사제들' 주연배우 김윤석. (사진=황진환 기자/자료사진)
▶ 판타지적인 설정이라서 현실감을 살리기 위해 노력했을 것 같다.- 김 신부 역할이 예식에 대한 현실감을 획득해야 하는 인물이다. 감독님 왈, 신부 같지 않은 신부인데 또 종교적인 아우라는 책임져야 한다고 하더라. (웃음) 웃기는 딜레마이지만 김 신부는 그걸 해야 한다. 구마예식에서 사령이 인간의 가장 약한 부분을 계속 쑤시는데 그럼에도 감정을 절제하고 이성적으로만 대해야 한다. 아니면 감정 싸움에서 지는 거니까. 마지막에 김 신부가 감정을 폭발시키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장면은 신부인 직업을 떠나 한 인간으로서 설움이 드러난 부분이다.
▶ 연기이긴 하지만 예식을 다 끝냈을 때, 복잡한 감정이 있었겠다.- 사령이 깃든 여고생 영신은 다 끝났을 때 그냥 누워있으면 된다. 그런데 영신을 연기한 박소담 양이 도리어 자기가 눈물이 났다고 하더라. 촬영할 때는 차마 그 이야기를 못했다고. 눈물이 나서 너무 힘들었다고 그렇게 나중에 고백했다. 당시 말을 못했던 이유는 제가 흔들릴 수도 있어서 그랬다고 한다.
▶ 국내에는 흔치 않은 소재에 신인 감독과의 작업이었다. 배우에게도 모험이었을 것 같다.- 그 용기에 일단 힘을 줘야지. 데뷔작으로 이런 소재의 영화를 만들겠다는 것은 굉장한 용기다. 인상적인 데뷔작이 될 것 같다. 좀 더 상업적이고 대중적인 작품을 선택하지 않고, 작가주의 정신이 담긴 작품을 만들겠다는 의지가 있었다. 거기에 우리도 동참한 거고. 힘들 때마다 서로 독려하면서 영화를 만들어 나갔다.
▶ 사실 배우 입장에서는 흥행이 보장된 대작에 참여하는 것이 좋을 거 같은데?
- 새롭고 완성도가 높으면서 깊이가 있는 좋은 작품을 찾게 된다. 배우들에게 1순위는 흥행이 아니라 좋은 작품이다. 물론 제일 좋은 건 흥행과 작품성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거지만. 제가 영화를 선택하는 기준은 배역보다 작품이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비중이 작았던 '쎄시봉' 같은 작품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뭘 많이 해 놓았는데 다 쓸모없는 느낌이 드는 것보다 메인 디쉬로 깊게 파고드는 것들이 좋은 작품이다. 보는 사람도 재밌고 하는 저도 재밌어야지.
영화 '검은 사제들' 주연배우 김윤석. (사진=황진환 기자/자료사진)
▶ 항상 보면 남자 배우 '투톱'으로 나오는 영화에 많이 출연하는 것 같다. '원톱'이나 여배우와의 호흡 등에 대한 아쉬움은 없나?- (여배우와의 호흡은) '도둑들' 약발이 아직 남아 있다. (웃음) 장르적으로 남자 투톱 영화들이 많은 것 같다. 제가 튀면서 열정적인 역할을 해보지 않은 사람이 아니다. 지금 제 나이의 배우가 해야 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깊게 파고 들어가서 갈등을 연기해야 하고 작품의 두께를 책임져야 하는 그 재미가 있다. '타짜'를 놓고 보면 그냥 어느 순간 제가 백윤식 선생님 역할을 해야 하는 것 같다. 제가 멘토가 되어서 끌고 나가야 되는 거다. 지금은 아직 거칠기도 한 중견 호랑이 정도? 연극에서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두고 이런 이야기를 한다. 로미오를 못하면 햄릿이, 햄릿을 못하면 멕베스가, 멕베스를 못하면 리어왕이 남아 있다.
▶ 뿌리는 연극에 있는데, 다시 무대에 설 계획은 없는지 궁금하다.- 무대는 실수를 할 수 없는 공간이다. 너무 오래 하지 않아서 무섭다. 동료들이 하는 걸 보러 가면 그립기도 하고 아쉬움도 남는다. 우리나라 연극 환경이 너무 열악하니까.
▶ 배우 김윤석하면 현실감 있는 연기로 정평이 나있다. 평소에 어떻게 작품을 분석하고, 준비하는지 궁금하다.- 전 감성적인 사람인데 오글거리는 건 잘 못 견딘다. 배역에 푹 빠지지 않고 금방 빠져나와서 바라보는 스타일이다. 한 쪽 머리에서는 계속 배역에 대해 생각하고, 다른 쪽 머리에서는 바라보고 있는 거다. 대본에 낙서하거나 적지는 않는다. 그냥 생각을 많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