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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수도권의 호남표 없다면…야당에 어떤 일이 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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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윤성호 기자/자료사진)

 

장면1: 지난 9월 말 서울 광화문의 한 음식점. 광주에서 고교를 졸업한 동문 6명의 식사 자리. 공직자들과 언론인들이 함께 모인 자리인지라 정치적 발언을 가급적 삼갔으나 우연히 정치 얘기가 나오자 “새정치연합이 못해도 너무 못한다”는 의견이 주류를 이뤘다. 급기야 두세 명이 “이번엔 여당을 찍을 수 있다”는 말까지 했다. 한두 명은 “투표장에 가지 않겠다”고 말했다.

장면2: 고교 친구들이 지난 추석 연휴 때 고향(광주)을 찾은 친구를 위해 마련한 자리. 자연스럽게 정치와 선거 얘기가 나왔다. 줄곧 새정치연합(민주당)을 지지했는데 이제 ‘문재인당’을 찍지 않겠다는 말이 나왔다. 한 명만이 그래도 새정치연합이 우리를 대변하지 않느냐는 주장을 폈다. 두 명은 “지난 7월 재보궐 선거 때 천정배 후보에게 투표를 했다”며 “내년 선거에서도 지금의 새정치연합을 선택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장면3: 추석 연휴 호남의 한 가정. 극도로 꺼리던 정치 문제가 불거지자 내년 선거도 여당이 이길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됐다. 형제 5명 가운데 새누리당을 찍겠다는 사람이 2명이고 그래도 새정치연합을 지켜보자는 입장이 2명, 1명은 입장 표명 유보였다.

호남이 고향으로 중고교를 광주에서 졸업한 뒤 수도권에서 살고 있는 호남 출신들이 이런 표심을 갖고 있다면 내년 4월 총선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은 한마디로 “야당 망한다”로 규정했다.

위의 장면들이 극히 제한적인 사람들의 의견이라고 할지라도 호남인들이 달라진 것만은 분명하다는데 이의를 제기하는 정치인은 별로 없다.

그 결과가 지난 10·28 재·보궐 선거에서도 여실히 나타났다. 투표율(20.1%)이 현저히 낮아 민심의 풍향계가 될 수 없다는 주장을 인정하더라도 강세 지역인 광역·기초의원 선거에서 새정치민주연합이 패한 것은 수도권의 호남인들이 투표장에 가지 않았다는 게 일반적인 분석이다.

경기 광명의 경우 야당 후보는 여당 후보보다 나으면 나았지 못하지 않다는 평가가 있었으나 1,500표 차이로 낙선의 고배를 마셨고, 서울 영등포 서울시 의원 선거도 마찬가지로 석패했다. 서울 양천은 새정치민주연합의 텃밭인데도 2백여표 차이로 졌다. 재·보궐 선거의 결과는 15대 2였다. 새정치연합은 적지 않은 지역에서 3등을 했다.

한 중진 의원은 “호남표가 움직이기 않았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한 출마자는 “호남 사람들 중 재·보궐 선거가 있는지조차 모르는 분이 많았다”며 “그들이 움직이지 않으면 선거는 해보나마나”라고 말했다. 또 다른 의원은 “문재인 대표가 경남 고성군수 선거전에만 유세 지원을 가고 수도권 선거에는 운동조차 하지 않은 것이 패인”이라고 분석했다.

수도권에 사는 호남 출신들이 새정치연합에 대한 절대적인 지지를 철회하고 무당파로 돌아서거나 새누리당을 찍게 되는 기류가 감지되고 있다. 새누리당 정두언 의원은 “호남 출신들이 원래 많이 사는 서울 서대문 지역을 근래에 돌아다녀 보면 그들이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예전보다 더 좋아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재오 의원 역시 “호남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택수 리얼미터 대표는 ‘수도권의 호남 출신들이 새정치연합을 지지하지 않는다면 어떤 일이 날 것 같으냐’는 질문에 대해 “일본처럼 될 것”이라며 수도권의 호남 표심이 변하고 있다는 의견에 동조했다.

야당은 전통적으로 호남을 기반으로 서울과 경기 남·서부권 장악을 통해 집권도 하고 제1 야당으로서 명맥을 유지했다. 작금엔 그런 정치적 기반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는 얘기다. 새누리당으로선 더없이 반갑겠으나 야당으로선 지지 기반 붕괴를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절망감으로 다가올 것이다. 야당이 호남 출신들을 투표장으로 끌어내지 못하거나 그들의 지지를 받지 못한다면 선거 결과는 뻔하다. 야당의 존립 자체가 위기에 맞닥뜨리게 된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내년 4월 총선 목표를 180석으로 잡은 것은 그냥 나온 발언이 아니다. 정치 지형과 호남인들의 표심을 익히 파악하고 내다 본 견해다. 새누리당의 한 관계자는 “호남 출신들이 새정치연합에 등을 돌리는 현상이 더 심해진다면 새누리당이 200석 이상을 차지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수도권의 호남표가 부분적(20%만)이나마 새정치연합을 버린다면 새누리당은 영남을 넘어 수도권에서도 대승을 거두게 된다. 정장선 전 민주당 사무총장(경기 평택)은 “새정치연합의 대패가 예상되는 만큼 연장전이라도 가려면 멋진 홈런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내년 총선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새정치연합의 서울지역 국회의원은 과연 몇 명이나 될까? 대중적 인기가 높고 지역기반이 튼튼한 의원조차 당선을 장담할 수 없을지 모른다. 수도권의 싹쓸이 광풍이 새누리당을 향해 불 것 같은 국면이다. 지난 2008년 4월 이명박 정권 출범과 뉴타운 바람이 한나라당(새누리당)에 ‘압승’을 안겼듯이 이번에도 그럴 개연성이 움트고 있다. 2008년(18대)엔 새정치연합 의원 8명만이 서울(국회의원 48명)에서 생존했다. 박영선 전 원내대표와 추미애·전병헌 최고위원 등이다.

호남인들의 표심이 변하고 있는 것을 모른다면 ‘무능’한 것이고 알고서도 내 지역구에서는 아무 일 일어나지 않을 듯이 그냥 앉아 있다면 그건 ‘무식’ 때문이다. 세상을, 시대를 보는 안목과 예지력이 없다는 것을 고백하는 격이다.

동물이나 곤충은 사람과 달리 생존의 위기를 몸으로 먼저 깨닫는다.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논픽션 <체르노빌의 목소리="">에서 읽은 구절이 생각난다.

체르노빌 원전 폭발사고가 난 이튿날 인근 양봉업자가 벌통을 봤더니 벌이 한 마리도 나와 있지 않아 이상하다고 생각해 살펴보니 벌통 안에서(나가면 죽는다는 것을 알고) 나오지 않더라는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낚시꾼이 미끼용 지렁이를 잡기 위해 땅을 팠지만 보이지 않아 50cm 이상을 파내려가자 지렁이들이 깊이 숨어 있었다고 했다. 사라졌던 말벌은 6년 뒤에야 돌아왔다고 기록했다.

새정치연합 의원들에게도 벌이나 지렁이 같은 감각과 예지력이 절실한 시기인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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