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우측)가 28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당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윤창원 기자)
새누리당이 27일 박근혜 대통령의 시정연설 이후 역사전쟁 출구전략을 모색하는 모양새를 보이고 있다.
국정화 선봉장을 자임했던 김무성 대표는 28일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대통령이 국가와 국민을 위하는 일에 하나가 돼야 한다고 말했는데 우리 정치권이 할 일을 정확하게 제시한 것이라 생각한다"며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기초가 튼튼한 경제를 만들기 위해 하루빨리 경제활성화 법안을 처리하고 노동개혁을 비롯한 4대 개혁을 완수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원유철 원내대표도 "야당의 길거리 정치와 장외집회는 민생우선이 아니라 민생도탄을 불러올 것"이라며 "하루빨리 야당은 이성을 되찾고 국회로 돌아와 민생을 살피고 청년일자리를 만들고 서민경제를 살리자는 우리 당의 요구에 즉각 응해야 될 것"이라고 호소했다.
박 대통령이 시정연설을 통해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강행 의지를 확고하게 밝히며 전면에 나서자 이제 '세대의 사명'은 거스를 수 없으니 교과서 문제는 정부와 학계에 맡겨두고 민생에 집중하자며 야당을 압박한 것이다.
박 대통령이 시정연설에서 '경제'를 56차례나 언급하면서 경제와 민생 살리기를 강조한 것에 적극 호응하며 국회가 할 일을 하겠다는 말이지만 자세히 뜯어보면 이제 역사전쟁에서 2선으로 물러나겠다는 뜻으로도 들린다.
실제로 김 대표는 "야당은 역사교과서와 관련해서 더 이상 장외투쟁을 하지 말고, 역사교과서 문제는 정부와 역사학·경제학·정치학·사회학 등 학계에 맡기고 국회에서 민생법안을 처리하고 예산심사 하는 데에 열과 성을 쏟아달라"고 촉구했다.
여당이 교과서 전쟁에서 손을 터는 시점은 다음달 5일 확정 고시 이후가 될 전망이다. 역사교과서 국정화가 공식적으로 본 궤도에 오르는 만큼 더 이상 당이 전면에 나설 필요성이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여당의 출구전략에는 고개를 갸웃하게 하는 대목이 있다. 한국사 교과서 좌편향의 원흉으로 지목하며 "90%가 좌파"라고 맹비난했던 국사학계에 교과서 문제를 맡기자는건데 이를 두고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다른 분야 학자들도 참여한다지만 주 집필은 사학자가 맡아야 하는데 여당이 좌파라고 비난하는 사학자들은 대부분 집필을 거부했다. 이대로라면 결국 집필은 뉴라이트 진영 사학자들이 맡을 수 밖에 없는 실정이다. 박 대통령과 정부여당이 주장하는 국민통합을 위한 균형 잡힌 교과서가 만들어질 토양 자체가 아닌 셈이다.
지난 2008년 출간된 뉴라이트의 한국사 교과서에 비추어볼 때 박 대통령의 “역사왜곡이나 미화 교과서는 저부터 절대로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는 공언도 빈말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28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국정교과서 반대 홍보 버스 출정식에서 '국정교과서 반대' 홍보 스티커를 붙이고 있다. (사진=윤창원 기자)
야당은 진정 민생을 위한다면 국정교과서 추진부터 중단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는 이날 역사교과서 국정화 저지 토론회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김무성 대표의 주장 속에는 자기들만 애국이고 생각이 다르면 모두 비애국이라는 무서운 사고가 깔려있다"면서 "국정교과서는 결국 민주주의의 퇴행이고 독재의 문을 다시 여는 것이고 이는 국정화를 반드시 막아야 할 중요한 이유"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