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만감이 교차하는 성인식이었다. 혹독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제20회 부산국제영화제는 성공적으로 자존심을 지켜냈다. 폐막식 이후 일주일 넘게 흐른 지금, 뜨거웠던 열기는 식었지만 과정이 어려웠던만큼 영화제의 족적은 더욱 뜻깊게 남았다. 파격적인 시작을 알린 제1회부터 아픔을 겪고 성숙해진 현재까지. CBS노컷뉴스는 이명희 영화 평론가와 함께 부산국제영화제를 되짚어보는 연속 보도를 준비했다. [편집자 주]<글 싣는="" 순서="">
① 공든 탑이 무너지랴…스무 살 BIFF의 어제와 오늘
② 휴머니즘 외면 않은 용기…'난민문제'를 품다 <상>
② 휴머니즘 외면 않은 용기…'난민문제'를 품다 <하>하>(계속)
영화 '나라없는 국기' 스틸컷(사진=부산영화제 제공)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는 심각한 전쟁의 고통을 겪고 있는, 실제로 시리아 사태나 IS와의 전투에서 가장 희생이 크지만 가장 당당하게 대적하는 쿠르드 사람들의 외침을 보여 주는 영화가 세 편이나 소개된 점도 눈길을 끈다.
'나라없는 국기'(바흐만 고바디 감독, 이라크), '검은 말의 기억'(샤흐람 알리디 감독, 이란), '국경의 아이들'(하젬 크호데이데 감독 외, 시리아·이라크)이 그 면면이다. 이들 세 편의 영화는 모두 부산영화제에서 세계 최초로 상영됐다.
전쟁 상황에도 노래, 예술, 아이들의 교육 등을 통해 희망과 긍정을 보여주는 이들 영화는 나라 없는 설움으로 오래 고통 받는 쿠르드 민족에 관한 이해심을 불러일으킨다.
칸영화제 황금카메라상 수상작인 '취한 말들의 시간'을 비롯해 '거북이도 난다' '코뿔소의 계절'로 우리나라에서도 수많은 관객의 감정을 동요하게 만들었던 바흐만 고바디 감독.
그는 이란 출신 쿠르드인이지만 이란에서 더 이상 영화를 만들 수 없게 되자, 이라크에서 만든 쿠르드 영화 '나라없는 국기'를 내놓았다.
나라 없는 고통에 더해 IS와 전쟁까지 치러야 하는 쿠르드 민족의 투지를 보여주는 비감한 장면과 노래들, 폭격이 있는 마지막 장면이 큰 여운을 남기는 작품이다. (CBS노컷뉴스 10월 13일자 기사 '[BIFF에서 만난 감독] 난민 생활 700년…쿠르드를 아십니까' 참조)
◇ "죽은 여자의 눈은 절대 감겨지지 않아…잊지 않고 기억하는 것 중요"
영화 '검은 말의 기억' 스틸컷(사진=부산영화제 제공)
'나라없는 국기'가 이라크 시리아 국경의 실제 난민수용소에서 전쟁 상황 아래 찍은 다큐멘터리에 가까운 사실주의 영화인 반면, 뉴커런츠 섹션의 '검은 말의 기억'은 표현주의적이고 상징적인 장면들로 구성됐다.
이 영화는 쿠르드 문화 활동가 아세케가 살해 당하자 검은 말을 보고 싶어 한 그녀의 소원을 친구들이 이뤄주기로 하는 내용을 담았다.
로드무비로서 문화를 보존하고 계승시키는 여성의 역할을 강조하는 이란 쿠르드인 영화다. 이를 통해 터키에 근접한 시리아 코바니 지역의 화학무기로 인한 비극을 소재로, 쿠르드 민족의 꺾을 수 없는 투지와 문화적 자부심을 보여준다.
"죽은 여자의 눈은 절대로 감겨지지 않는다.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상징"이라고 설명하는 감독은 "독립운동을 하는 쿠르드인들이 전에는 테러리스트 취급을 받았으나, 국경에서 IS를 대적하고 승리하는 유일한 군대가 쿠르드인뿐이어서 현재는 존경받고 있다"고 말했다. 복잡한 이야기 구조 때문에 수상작이 되지는 못했다.
글 = 이명희 영화 평론가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