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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냉전시대 유물 '여의도 비밀 지하벙커'에 가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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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신시대 박정희 대통령 경호시설로 추정, 내년 10월 시민에 개방

(사진=서울시 제공)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10월 첫날 오전에 여의도를 찾았다. 서울 여의도 한복판의 비밀 지하벙커를 본다는 사실에 묘한 흥분까지 느꼈다.

서울시 직원이 기자들을 지하벙커 쪽으로 안내했다. 지하벙커 입구는 버스환승센터 2번 승강장 한가운데에 자리하고 있었다. 버스를 기다리는 시민들이 입구가 열린 지하 계단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내려다봤다.

여의도 한복판에 비밀 지하벙커라니, 놀랍기도 했지만 수십년 동안 땅밑에 이런 비밀 지하벙커가 있었다는 사실을 아무도 몰랐다는 사실이 의외이기도 했다. 지하벙커는 여의도에 버스환승센터를 건립하던 지난 2005년 옛 중소기업전시장 앞길 7m 땅밑에서 처음 발견됐다.

(사진=김규완 기자)

 

지하벙커로 내려가는 계단은 생각보다 가파르고 깊었다. 벙커를 내려가 왼쪽으로 돌아 들어가니 길고 널따란 공간이 드러났다. 180여평(595㎡) 정도로 축구경기는 못해도 풋살게임 정도는 가능할 정도의 크기였다.

지상의 빗소리까지 겹쳐 지하 특유의 축축한 냄새가 나고 공명현상이 일었다. 복도처럼 생긴 중앙공간의 양쪽 끝에는 기계실과 화장실, 철문으로 굳게 닫힌 출입문이 2개 더 있다. 이 문은 지금은 폐쇄돼 외부와 차단돼 있다.

(사진=서울시 제공)

 

(사진=김규완 기자)

 

출입구를 내려와 우측에는 VIP 인사가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20여평(66㎡) 크기의 공간이 또 있다. 호피 무늬의 옛날식 쇼파가 있고 화장실과 샤워장도 갖추고 있었다.

(사진=김규완 기자)

 

누가 왜 이런 지하시설을 만들었을까? 서울시 직원들은 모른다고 했다. 소관부처에 관련 자료는 물론 기록이나 근거가 전혀 없다고 했다. 증언해줄 만한 사람도 찾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다만, 1970년대에 만들어졌을 것이라는 추정이 있다.

서울시가 지하 비밀벙커의 유래를 알아보기 위해 서울시가 갖고 있던 항공사진을 일일이 대조해봤다. 그랬더니 76년 11월 항공사진에 지하벙커가 있던 지역에 공사흔적이 없다가 이듬해 11월 항공사진에는 벙커 출입구로 보이는 시설물이 찍혀있었다.

1976년 11월 8일 여의도 항공사진 (사진=서울시 제공)

 

1977년 11월11일 여의도 항공사진 (사진=서울시 제공)

 

이로 미루어볼 때 지하벙커의 탄생일은 1977년 11월 직전이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특히, 지하벙커 위치가 국군의 날 사열식 때 단상이 있던 곳과 일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답이 나왔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여의도에서 국군의 날 행사가 열릴 때 찾아와 쉬기도 하고 비상시 긴급 대피시설로 만든 것으로 보인다.

(사진=서울시 제공)

 

서울시는 앞으로 지하벙커를 시민들에게 전면 공개하고 시민들을 위한 시설로 활용하겠다고 밝혔다. 안전시설과 냉난방 시설, 소방 설비 등을 갖춘 뒤 내년 10월에 일반 시민들에게도 공개하기로 했다.

2005년 발견 당시만 해도 지하벙커에 버스 환승객 편의시설을 설치하려 했지만 수익성 문제로 백지화하고 박원순 서울시장이 취임한 이후 벙커의 역사적 가치를 고려해 서울시 미래유산으로 지정했다. 특히, 지하벙커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시민들의 아이디어와 제안을 받을 계획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240여평(793㎡) 크기 지하벙커의 구조나 특징으로 볼 때 전시장으로 활용하면 좋을 것 같다는 시민들의 의견이 많다고 살짝 귀띔했다.

(사진=서울시 제공)

 

이에 앞서, 오는 10일(토)부터 11월1일(일)까지 주말에 사전예약을 통해 선착순으로 일반 시민들도 지하벙커를 구경할 수 있도록 했다. 아이디어나 체험 신청은 서울시 안전·소방·민방위 홈페이지(http://safe.seoul.go.kr)에서 접수하면 된다.

때마침 오늘은 국군의 날 67주년 기념일이다. 날씨가 나빠 올해 국군의 날 행사는 충남 계룡대에서 실내행사로 치러졌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여의도 비밀 지하벙커를 3년밖에 사용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후 군사정권을 이은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도 그 시설을 사용했을 수도 있다. 최소한 벙커의 존재 자체는 알고 있을 것이다.

벙커의 존재를 아는 또 한사람이 있다. 바로 박근혜 대통령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1974년 육영수 여사 서거 이후 1979년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서거할 때까지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수행했다. 따라서, 아버지를 수행해 여의도 지하 비밀벙커를 찾았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 면에서, 여의도 지하벙커는 박근혜 대통령에게는 아버지의 유물인 셈이다.

만약에 지금 서울시장이 야당이 아닌 여당 출신이었다면 이 지하벙커의 운명은 어떻게 됐을까를 상상해봤다. 지금처럼 시민에게 돌려준다는 발상을 할 수도 있었겠지만, 최소한 청와대의 뜻을 물은 뒤에 활용도를 검토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냉전시대의 유물, 여의도 비밀 지하벙커는 숨 가쁜 현대사와 함께 수십년을 돌고 돌아 아버지가 만들고 그 딸이 대통령인 시대에 와서야 공개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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