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28일 부산 롯데호텔에서 회동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28일 부산 회동에서 '안심번호'를 활용한 국민공천제를 실시한다는데 뜻을 모으면서 내년 20대 총선에 적용할 여야간 선거제도 개편 논의가 일단 물꼬를 트게 됐다.
◈ 여야, 선거제 개편 협의 돌파구 여당의 오픈프라이머리(완전국민경선제)와 야당의 권역별 비례대표 도입 주장이 팽팽히 맞서면서 답보 상태가 지속됐던 여야 협상에 돌파구가 마련된 것이다.
양당 대표는 개인정보를 보호할 수 있는 임시번호인 ‘안심번호’를 활용한 국민공천제를 실시하기로 하고 세부 방안을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정개특위)에서 강구하기로 했다.
또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주관으로 실시하되 일부 정당만 시행할 경우 역선택을 방지할 방안을 법제화하기로 했다.
정치신인과 여성, 청년, 장애인 등에 대한 가산점도 법규로 지정해 현역 의원과의 형평성 문제도 부족하나마 고려했다.
◈ ‘동병상련’ 여야 대표, 정치적 호응 이처럼 여야 대표가 안심번호 국민공천제에 공감한 것은 두 사람의 정치적 상황과 필요성이 맞아떨어졌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김무성 대표는 개인적인 문제에 친박계의 오픈프라이머리 흔들기가 본격화되면서 상당한 어려움에 봉착했었다. 친박 진영은 오픈프라이머리에 정치생명을 걸겠다고 한 김 대표의 말을 상기시키며 야당과의 합의가 불가능하니 현실적인 대안을 내놓으라고 압박했다. 서청원 최고위원은 “국정감사 뒤에 제3의 공천제를 만들어야 한다”고 시한까지 못박았다. 당내에서도 오픈프라이머리는 물건너 갔다는 말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김 대표는 반격에 나섰다. “전략공천을 단 한 명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더니 추석 연휴 전날인 24일 문 대표와 비밀 사전접촉을 거쳐 28일에는 회동을 통해 합의점을 찾아냈다.
문재인 대표도 재신임 사태로 당내 갈등이 극단으로 치달았다가 가까스로 수습한 상태로 분위기를 일신할 전기가 필요했다. 문 대표가 김 대표의 회동 제안에 선뜻 응했던 이유다.
◈ 김무성, 문재인의 Win-Win김 대표가 회동에서 얻은 성과물은 국민공천제에 대한 야당의 동의다. 친박의 공격 포인트는 야당과 합의가 없는 국민공천제는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는데, 친박계에 야당 대표와의 합의를 들이댈 수 있게 된 것이다.
김 대표는 이를 위해 새정치연합 혁신위의 아이디어인 안심번호를 국민공천제에 도입했다. 사실상 야당안을 ‘제3의 길’, ‘플랜B'로 선택한 것이다. 원래 추구한 현장 투표를 버리는 대신 전화투표를 통해서라도 국민에게 공천권을 돌려준다는 명분은 지켜낸 것이다.
같은 대안이라도 친박에 등 떠밀린 것이 아니고 야당과 합의해 내놓게 되는 실리도 챙겼다.
문 대표 역시 당내 분란의 한가운데 있었던 혁신안에 여야 대표 합의를 통해 무게를 싣게 됐다. 안심번호 도입을 위해서는 선거법 개정이 반드시 필요했는데 이런 실질적인 문제도 해결하게 됐다.
또 안심번호 국민공천제는 사실상 야당의 혁신안이어서 손해볼 게 없는데다 권역별 비례대표제에 대한 논의를 계속할 여지까지 생긴 점도 수확이다.
◈ 공감 이면, 남은 변수들그러나 김무성, 문재인 대표의 합의가 실행에 옮겨질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합의 내용에 대한 소속 의원들의 동의가 있어야 하지만 당내 비주류의 반발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오픈프라이머리를 반대해온 새누리당 친박계는 여야 대표의 합의 내용에 대해 즉각적인 반응은 자제했다.
한 친박계 인사는 "안심번호 국민공천제가 어떤 내용인지 선뜻 와닿지 않는다"며 "합의 내용을 면밀히 분석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친박계는 그러나 그동안 오픈프라이머리를 대신할 플랜B로 거론돼온 100% 여론조사
경선에 대해서도 반대해 왔다는 점에서 사실상의 '전화 오픈프라이머리'인 안심번호 국민공천제에 대해서도 반대할 것으로 보인다.
한 친박계 의원은 “하향식 공천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는 있겠지만 여론을 제대로 반영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고, 당원의 자리가 위축되면서 정당정치의 후퇴로 이어지지 않을지 우려된다”며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한 당직자는 “사실상 여론조사 방식으로 진행될텐데 여론조사는 조작 가능성이 높다”면서 “오픈프라이머리는 미국 제도인데 미국에서 100% 여론조사를 하는 주는 없다”고 지적했다.
특히 전략공천 여부에 민감한 친박계는 여야 대표 합의사항에 이에 대한 언급이 없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국민공천제를 일부 정당만 시행할 경우 역선택 방지 법안을 마련하기로 한 조항이 야당만 전략공천을 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보이고 있다.
한 친박계 당직자는 “야당이 전략공천을 하면 우리만 국민공천을 할 것인가”라며 “아예 여야가 전략공천 지역구를 협상해서 정해야 되는 것 아니냐”고 꼬집었다.
또 다른 친박 의원은 “야당에게 전략공천의 빌미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진정한 여야 합의의 국민공천이 아니다”라며 “야당이 독자적으로 전략공천을 한다면 의미가 없다”고 평가절하했다.
새누리당은 29일 긴급 최고위원회와 30일 의원총회를 잇따라 열어 총선룰과 선거구 획정 문제를 논의할 예정이지만 여야 대표 합의 내용에 대한 친박계의 반발이 예상된다.
새정치민주연합도 사정은 녹록지 않다. 안심번호제가 도입될 경우 100% 국민선거인단을 구성해 총선 후보자를 선출하기로 하고 당규 개정까지 마쳤지만 비주류의 반발이 거셌다.
여야 대표 합의사항이 야당 안처럼 선거인단까지 구성하자는 것인지, 여론조사만 실시하자는 것인지 명확치 않지만 새정치민주연합 비주류측은 어떤 방식이든 친노(親盧) 성향 후보자가 유리할 것이라는 의구심을 갖고 있다.
문재인 대표로서도 국민공천방식이 특정계파에게만 유리하지 않은 공정한 공천 룰이라는 점을 설득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