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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시인의 고백 "이것도 없으면 너무 가난하다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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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이현승 시집 '생활이라는 생각'…삶의 가장자리에서 길어 올린 시들

(자료사진/사진=스마트 이미지 제공)

 

'가족이라는 게 뭔가./ 젊은 시절 남편을 떠나보내고/ 하나 있는 아들은 감옥으로 보내고/ 할머니는 독방을 차고앉아서// 한글 공부를 시작했다./ 삼인 가족인 할머니네는 인생의 대부분을 따로 있고/ 게다가 모두 만학도에 독방 차지다./ 하지만 깨칠 때까지 배우는 것이 삶이다./ 아들과 남편에게 편지를 쓸 계획이다.// 나이 육십에 그런 건 배워 뭐에 쓰려고 그러느냐고 묻자/ 꿈조차 없다면 너무 가난한 것 같다고/ 지그시 웃는다. 할머니의 그 말을/ 절망조차 없다면 삶이 너무 초라한 것 같다로 듣는다.' - 이현승 시집 '생활이라는 생각' 중에서 '이것도 없으면 너무 가난하다는 말'

시인 이현승은 구체적인 삶의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단어들을 길어 올려 시를 직조한다.

새로운 각도로 일상을 들여다보는 그의 눈은 "꿈조차 없다면 너무 가난한 것 같다"는 할머니의 말을 "절망조차 없다면 삶이 너무 초라한 것 같다"라는 뜻으로 받아들인다. '꿈'을 '절망'과 동일시하는 그의 시선에는 육체로 경험하는 삶의 맨얼굴이 오롯이 배 있다.

이현승의 세번째 시집 '생활이라는 생각'(펴낸곳 창비)이 삶의 아이러니로 가득한 이유도 여기서 찾을 수 있다.

시 '이것도 없으면 너무 가난하다는 말'을 두고 문학평론가 이찬은 시집에 포함된 '주름, 몸의 정치경제학'이라는 제목의 해설을 통해 "시인이 오랫동안 품어왔을 실천적 태도와 윤리학적 비전을 돋을새김의 필치로 그려냈다"고 평한다.

'물론 시인에게 꿈이란 곧 절망의 다른 이름에 불과할 뿐이다. 저 비극적 허무감에 시인이 흠씬 젖어들어 있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겠지만, 그가 더 나은 삶을 향한 사람들의 원초적 충동에서 알 수 없는 기쁨과 즐거움을 느낀다는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일 것이다. 그것이 비록 실패와 고통과 절망만을 안겨준다 하더라도 이것도 없으면 너무 가난하다는 말을 바보처럼 믿고 있을 것이 틀림없기에.' (120, 121쪽)

◇ "섬세한 필치로 한국인들의 육체성, 또는 시인 제 자신의 몸의 정치경제학 탐사"

생활이라는 생각ㅣ이현승ㅣ창비

 

먹고 자고를 반복해야만 움직이는 몸을, 그렇게 생각을 지배하는 육체를 대하는 시인의 예민한 눈길은 책의 제목으로도 쓰인 시 '생활이라는 생각'에서 보다 뚜렷한 윤곽을 드러낸다.

'꿈이 현실이 되려면 상상은 얼마나 아파야 하는가./ 상상이 현실이 되려면 절망은 얼마나 깊어야 하는가.// 참으로 이기지 못할 것은 생활이라는 생각이다./ 그럭저럭 살아지고 그럭저럭 살아가면서/ 우리는 도피 중이고, 유배 중이고, 망명 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뭘 해야 한다면// 이런 질문,/ 한날한시에 한 친구가 결혼을 하고/ 다른 친구의 혈육이 돌아가셨다면,/ 나는 슬픔의 손을 먼저 잡고 나중/ 사과의 말로 축하를 전하는 입이 될 것이다.// 회복실의 얇은 잠 사이로 들치는 통증처럼/ 그렇게 잠깐 현실이 보이고/ 거기서 기도까지 가려면 또/ 얼마나 깊이 절망해야 하는가.// 고독이 수면유도제밖에 안되는 이 삶에서/ 정말 필요한 건 잠이겠지만/ 술도 안 마셨는데 해장국이 필요한 아침처럼 다들/ 그래서 버스에서 전철에서 방에서 의자에서 자고 있지만/ 참으로 모자란 것은 생활이다.'

이찬의 해설을 빌리면, 이현승의 시는 결국 '사회의 정치경제학적 압력과 배치와 관계망에 의해 규율되고 통어되는 우리 시대 한국인들의 육체성, 또는 시인 제 자신의 몸의 정치경제학을 섬세한 필치로 탐사하는 것'으로 귀결된다.

그래서일까, 숙명적으로 동시대인의 아픔을 외면할 수 없는 몸을 지닌 시인은 제목부터 적나라한 '봉급생활자'라는 시를 통해 이렇게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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