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뱃값이 오른 지난 1월초 서울 시내 한 노점에 '개비 담배'가 등장했다. /윤성호기자
정부가 '국민 건강 증진'을 명분으로 담뱃세를 올렸지만, 정작 금연자는 별로 눈에 띄지 않고 세수만 두 배 가까이 늘어나면서 '서민 증세' 비판이 불거지고 있다.
특히 천문학적인 세금을 새로 '창조'해놓고도, 지속적인 금연 정책 유지를 위한 건강증진기금엔 한 푼도 예산을 책정하지 않아 빈축을 사고 있다.
실제로 2500원이던 담배를 4500원씩 내고 살 때마다 화가 치밀면서도, 금연까지 결행한 이를 주변에서 찾아보기란 그리 쉽지 않다는 게 시민들의 얘기다.
'55년째 애연가'라는 서울 송파구의 주차관리원 원용설(70)씨는 "우린 금연이라는 거 생각해보지도 않았다"며 "30명 중에 한 명 정도 끊었다고 하지만, 담배를 주면 다 피우고 하더라"고 했다.
원씨는 "담배를 폈다고 큰 병이 있는 것도 아니다"며 "안 피면 스트레스도 많이 받고 살도 찌고 하니까 며칠 끊었다 도로 피는 사람들도 많다"고 덧붙였다.
서울 강남에서 자영업을 하는 김정찬(42)씨도 "담배 피는 사람으로서 어차피 흡연율은 원상복귀될 것으로 예상했다"며 "정부도 알면서 세금 더 걷으려 올린 것 아니겠냐"고 했다.
국민 건강 증진을 위해 세금을 올렸다는 정부 논리엔 그저 헛웃음만 나온다는 게 한결같은 반응이다. 경기도 화성에 사는 회사원 박재진(38)씨는 "가격을 올려선 금연이 안되고, 남 좋은 일만 시키는 것 같다"며 "이럴 거면 정부가 아예 담배를 만들지 말던가 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기획재정부와 납세자연맹 등에 따르면, 지난해 6조 7425억원이던 담배 세수는 내년엔 5조 8659억원 늘어난 12조 6084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정부가 당초 예상했던 수치인 2조 8천억원보다도 두 배가 넘는 규모다.
올해 역시 최근 3개월간 평균 판매량인 월 3억 1700만갑이 유지될 경우 지난해보다 4조 4292억원 늘어난 11조 1717억원이 될 전망이다.
납세자연맹 관계자는 "정부가 올해 담배 소비량이 34%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지만 최근 추이로 보면 올해는 23%, 내년엔 13% 감소에 그칠 것"이라고 설명했다.
담배소비자협회 관계자는 "가격 인상 효과를 강조하며 담뱃값 인상을 주도했던 정부나 이를 통과시킨 국회 모두 사과하고 책임을 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심지어는 정부조차 내년 담배 판매량이 늘어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기재부와 보건복지부는 내년 담배 판매량이 올해보다 21% 많은 6억갑 증가할 것으로 보고 세입예산을 편성했다.
이에 따라 담뱃값에 붙는 건강증진부담금이 늘어날 게 뻔한데도, 건강보험에 지원해야 할 국민건강증진기금 3729억원은 모두 예산안에서 빼버렸다. 또 국고지원금 예산 3311억원도 추가 삭감했다.
이러다보니 애꿎은 서민 호주머니를 털어 세수만 늘렸다는 비판이 불거질 수밖에 없다.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오건호 공동운영위원장은 "진짜로 건강 증진이 목적이었다면 오히려 흡연율을 낮추는 선만큼 가격을 조정했어야 한다"며 "담뱃세라는 게 확실히 목적 재원인만큼 보건의료와 건강에만 써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보건복지부는 "내년에 담배 판매량이 늘어날 거라는 전망치는 담뱃값이 500원 올랐던 2005년 추이를 바탕으로 기획재정부에서 추정한 수치일 뿐"이라며 "금연 정책 등을 고려해 복지부와 협의해 산정한 게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또 지난 7월 내놓은 '수시조사'를 근거로 "비교 대상이 다르긴 하지만 2013년 42.1%이던 남녀 흡연율이 올 상반기엔 35%(남성)로 나왔다"며 "2020년까지 29%로 낮추겠다는 목표 달성은 가능할 걸로 보고 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새정치민주연합 윤호중 의원은 "담배협회가 제출한 자료를 보면, 7월 판매량은 3억 5천만갑으로 최근 3년간 월평균인 3억 6200만갑에 근접했다"며 "불과 반년만에 담뱃값 인상 전 수준으로 돌아간 셈"이라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