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반젤린
고향을 떠나 타국에서 어버이날을 맞은 결혼 이민자 여성들에게 오늘은 더욱 특별하게 다가온다.
한국남편과 종교적 이유로 결혼하면서 무작정 부산 서구 남부민동으로 이사온 필리핀 출신 에반 젤린(39)씨.
필리핀에 있을 당시 그녀의 직업은 5년차 화가였지만, 이제 ''김나라''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한 남자의 아내, 세 아이를 키우는 어머니이다.
또, 김치와 깍두기를 곧잘 담그고 ''고마해라''는 경상도 사투리를 잘 쓰는 영락없는 한국주부이기도 하다.
어버이날을 맞아 둘째딸 선이(10)가 손수 만든 종이 카네이션을 나라씨 가슴에 달아줬다.
삐뚤삐뚤하게 적은 딸의 편지를 읽는 순간 나라씨의 눈시울이 붉어진다.
"친구들이 엄마보고 필리핀 원주민이라고 놀려요. 저한테는 얼굴이 새까맣다며 아프리카로 돌아가라고 장난도 쳐요.엄마, 그래도 전 아무렇지도 않아요. 우리 엄마니깐, 나를 낳아주신 엄마니깐 무조건 사랑해요."
딸이 정성들여 써놓은 글자 한자라도 놓칠세라 글자 하나하나를 곱씹으며 읽는다.
한국에 온 지 벌써 12년째.
나라씨는 동사무소와 인근 시민단체를 통해 틈틈이 한국말을 배우고 있지만, 아직 완벽한 의사소통은 어려운 상황이다.
그동안 아이들의 알림장을 읽지 못해 준비물도 제대로 챙겨주지 못하고, 숙제도 도와주지 못한 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지고 눈시울이 붉어진다.
" 내 아이인데. 시원하게 말도 많이 하고싶죠. 처음 한국에 들어와서 아기 낳았을때는 애한테 한국말을 못해줘서 많이 울곤했어요.아이랑 어떻게 소통을 해야할까 고민도 많이하고요."
세아이들은 엄마의 특별한 피부색 때문에 학교 반 아이들에게 놀림당하기 일쑤.
처음 학교를 나갔을 때는 또래 아이들과 다르게 생긴것이 속상해 엄마에게 무작정 투정을 부리고 눈물도 많이 쏟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깊은 어머니의 사랑을 확인한 아이들.
이제 엄마의 든든한 응원군이다.
둘째딸 초등학교 3학년 김선이(10)양은 엄마의 피부색을 ''사랑색''이라고 붙여줬다. "반친구들이 엄마가 필리핀인이라고 놀리면 제가 오히려 반대로 아이들을 놀려요. 우리엄마는 귀화해서 이제 한국인이거든. 너희들은 ''귀화''가 뭔지 모르는 꼬마들이지?또, 우리엄마 피부색은 ''사랑색''이야. 마음이 착한 사람들 눈에만 보이는 색깔이지"
선이양은 10년 뒤 어버이날에 어머니에게 드릴 근사한 선물을 계획하고 있다.
"빨리 커서 돈을 많이 벌어서 부모님께 근사한 세탁기를 사드리고 싶어요. 엄마가 손빨래 하시면서, 매일 ''힘들다, 힘들다''하시는게 항상 마음 아팠거든요"
나라씨는 딸의 착한 마음 씀씀이 만으로도 세상을 다 가진듯 하다며 딸의 얼굴을 계속 어루만진다.
" 지금 시어머니와 우리부부, 아이셋 이렇게 10평 조금넘는 집에 다 같이 살고 있어요. 너무 좁죠(웃음)아이들 방만들어줘서 편안하게 공부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제 인생의 꿈이예요.꼭 그런날이 오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