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경제가 장기 불황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면서 젊은 층의 취업난이 점점 심해지고 있다.
직장을 구하기가 어려워지면서 결혼, 출산을 미루거나 포기하는 젊은 세대도 늘고 있다.
한국에선 '3포 세대'가, 미국과 일본에서는 각각 '밀레니얼(millennials)', '사토리' 세대가 저성장의 고착화에 따른 우울한 현실을 잘 말해주고 있다.
◇ 불황의 그늘…3포·밀레니얼·사토리 세대
'3포 세대'는 취업, 결혼, 출산을 포기한 한국의 젊은 세대를 말한다.
1970년대 후반과 1980년대에 태어난 한국의 20∼30대는 높은 실업률 속에 직장을 구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취직을 해도 모아놓은 돈이 없어 결혼을 결심하기 어렵다. 결혼을 해도 많은 육아비용과 사교육비 부담 때문에 출산을 머뭇거린다.
한국 경제가 저성장에서 벗어나지 못하면서 젊은이들은 포기해야 하는 항목도 늘어났다.
주택마련과 인간관계가 '포기 목록'에 추가로 들어가면서 '3포'는 '5포'로 확장됐고 결국 희망과 꿈마저 포기해야 하는 청년(7포 세대)들도 늘어났다.
한국에 3포 세대가 있다면 미국에는 '밀레니얼 세대'가 있다.
1981년부터 2000년대에 태어난 밀레니얼 세대는 현재 미국 노동시장의 주축으로 떠올랐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노동인구에 편입된 밀레니얼 세대는 올해 1분기 기준 5천350만명으로 미국 인구 전체의 3분의 1 가량을 차지한다"며 "이들은 미국 경제 성장을 뒷받침할 노동력을 제공하고 있다"고 전했다.
밀레니얼 세대는 미국 어느 세대보다 대학 진학률이 높고 인터넷에 익숙하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또 세계 금융위기를 사회 초년병 시절에 겪었다는 점에서 소비와 투자에 보수적인 성향을 띤다.
일본의 젊은 층은 '사토리 세대'라고 한다. 사토리는 '깨달음'을 뜻하는 일본말로 현실을 냉정하고 직시해 인정하고 적응하는 세대를 말한다.
사토리 세대라는 용어는 높은 실업률로 좌절한 청년들이 희망과 의욕도 없이 무기력해진 모습을 반영하고 있다.
◇ 저성장 속 높은 실업률에 좌절감만 늘어 '삼포·밀레니얼·사토리' 세대는 불황이 낳은 산물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저성장으로 실업률이 점점 높아지면서 젊은이들은 일자리 구하기는 점점 어렵게 됐다.
청년 실업 문제는 전 세계적인 고민거리이지만 한국에서 특히 심각하다.
2013년 기준 한국의 청년(15∼29세)의 실업률은 8.0%로 나타났다.
장년층 대비 청년층 실업률 배율은 3.7배였다. 이는 OECD 평균(2.1배)은 물론 미국(2.1배), 독일(1.6배), 프랑스(2.4배), 이탈리아(3.1배) 등 주요국보다 높은 수치다.
시간이 갈수록 상황은 더 나빠져 지난달 기준 청년 실업률은 10.2%까지 올라갔다.
교육·훈련을 받지 않으면서 구직 의욕마저 없는 '니트족'(NEET·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도 많아졌다.
2013년 기준 한국의 니트족 비중(15.6%)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3개국 가운데 3번째로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 젊은 층은 고속 성장기에 태어나 자랐지만 정작 자신들이 사회로 나갈 때에는 성장 둔화로 어려움을 겪었다. 1997년 IMF(국제통화기금) 구제금융 시기 부모의 실직을 마주한 청년 세대는 정작 본인들 높은 취업 문턱에 좌절해야만 했다.
사회생활에 진입할 무렵 금융위기를 겪은 미국 밀레니얼 세대는 대량 해고와 고용난에 시달렸다.
취업난에 졸업을 미루거나 상급 학교로 진학하는 사람이 많아졌고 결국 학자금 대출이 부메랑이 돼 부모로부터의 독립마저 미루는 미국 젊은이들도 늘어났다.
뉴욕타임스는 "소득 대비 주거 비용이 늘어나고 학자금 대출을 받은 학생이 많아 젊은 세대가 독립을 주저하고 있다"며 "어엿한 성인이 됐지만 부모와 함께 사는 것이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는 추세"라고 전했다. 사토리 세대는 과거 일본 거품 붕괴의 부작용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장기 불황이 일자리나 희망을 주지 않자 일본 젊은이들은 돈과 명예에 관심이 없는 '경지'에 이르렀다.
일본 아사히신문은 "사토리 세대의 특징은 과정보다 결과를 중시하고 결과가 뻔히 예측되는 일에는 나서지 않으며 낭비를 하지 않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물질과 출세에 관심이 없는 청년들이 늘어나자 일본에서는 20∼30대 젊은 창업자의 비율이 점점 감소해 일본 정부가 대책 마련에 나섰다.
◇ 젊은 층, 소비 여력 감소…성장 둔화 악순환
현재 한국에선 극심한 청년 실업으로 대졸 미취업자들이 아르바이트 시장으로 내몰리고 있다.
지난 5월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20∼34세 대졸 미취업자 1천명을 조사한 결과, 20대 대졸 미취업자 70% 이상은 '취업'을 가장 큰 걱정거리로 꼽았고 30대는 '경제적 문제'(52.6%)를 가장 심각하게 생각했다.
김동원 SK증권 연구원은 "어렵게 얻은 일자리에서 받은 월급은 학자금 대출 상환과 월세 등으로 없어진다"며 "늦어진 취업으로 자본 축적이 어려운 상황에서 결혼이 늦어지고 출산마저 늦어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평균 초혼연령은 남자가 32.4세, 여자가 29.8세로 10년 전과 비교하면 각각 1.9세, 2.3세 올라갔다.
경제 성장이 둔화된 상황에서 직장 구하기는 어렵고 결혼을 미루거나 포기하는 모습은 밀레니얼 세대라고 다르지 않다.
미국에서는 1980년대 20대 절반이 결혼했다면 지금은 20대의 25%만 가정을 꾸렸다.
결혼이 늦어지고 출산을 주저하는 것은 금융위기 이후 이어진 고용 불안과 소득 감소 때문이다.
소득이 줄어들면서 자연히 주택은 물론 차량, 음식, 의류 등에 대한 지출도 감소했다.
젊은 층들의 내 집 마련이 어려워지면서 미국인의 주택 소유 비율은 지난해 2분기 48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일본의 사토리 세대는 소비에 아예 무관심한 태도마저 보인다.
이들은 대체로 목돈이 드는 해외 여행, 자가용 보유 등에도 별 관심이 없다. 연애조차 낭비라고 생각할 정도로 지갑을 굳게 닫았다.
소비 시장의 주축인 젊은 층의 소비가 줄어드는 것은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 이들이 경제활동으로 벌어들인 소득이 소비시장에 풀려야 내수 경기 진작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경기 불황에 직장 구하기가 어려워지고 취업난 가중이 내수시장의 침체로 이어져 결국 저성장을 고착화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