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세훈 숨통 터준 낡은 법, 법조계 "구시대적" 한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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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증거 좁게 해석하면 범죄혐의 입증 어려워 기준 다시 마련해야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의 지난 2012년 대선 개입 의혹 사건이 파기환송된 이후 법조계를 중심으로 현행 증거법을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원 전 원장 사건처럼 디지털시대에 맞지 않는 '아날로그' 판결이 반복되고 있는 만큼, 하루라도 빨리 법 개정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공안 사건 등 '국가 안보' 영역에서만 증거법 논의가 활발했다면 이제는 학계와 법조계 안팎 등 전 영역에서 논의는 활발해지는 양상이다.

지난 16일 대법원이 원 전 원장 사건에서 항소심이 증거능력을 오인해 받아들였다고 판단한 파일은 국정원 직원 김모씨의 이메일에 첨부됐던 '425지논'과 'ssecurity' 파일 2개였다.

425지논 파일은 원 전 원장이 내린 지시사항과 요점을 담고 있고, ssecurity 파일은 김씨가 썼던 트위터 계정과 비밀번호가 기재된 파일이다.

대법원은 김씨의 이메일에서 이 파일들이 발견된 것은 맞지만, 김씨가 "파일을 작성한 사람이 누구인지 모른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일관하는 상태에서 작성자로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또 여행이나 경조사 일정 등 업무와 무관한 개인적 내용도 포함돼 있다는 등의 이유로 업무상 목적으로 작성된 파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같은 대법원의 판결 이후 법조계 안팎에서 현행 형사소송법의 한계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디지털 관련 증거들이 많이 발생하고 있는 사회현상을 법령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 형사소송법의 증거법 관련 부분은 1961년 개정된 이래 한 번도 개정이 되지 않고 있다.

때문에 법적으로만 보면 원 전 원장의 판결도 근본적인 한계를 지니고 있다고 법조계 인사들은 입을 모은다.

수도권에 근무하는 한 판사는 "이번 원세훈 전 원장 판결은 대법원이 현행 법령을 해석할 수 있는 한계가 여기까지라는 취지로 보인다"며 "하나의 해석 기준을 제시한 것"이라고 말했다.

명확한 법 규정에 의거해서만 형을 정하고 처벌할 수 있다는 형사법상의 대원칙 '죄형법정주의'에 따라 이번 원 전 원장의 판결도 법리적 임계치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죄형법정주의에 위배되게 확대해석을 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입법'이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특히 특수부 검사들이나 공안수사를 담당하는 검사들은 "과거부터 해오던 주장"이라며 "이제야 논의되는 게 이상할 정도"라며 법 개정을 압박하고 있다.

한 특수부 검사는 "전자문서의 경우 손으로 쓰는 문서처럼 본인 감정도 안되는데 지금처럼 좁게 해석해버리면 특수수사에서도 범죄혐의를 증명하기 어렵다"며 "어느 누가 자신이 작성한 문서라고 하겠느냐"고 불만을 드러냈다.

또 다른 검사는 "요즘 노트를 쓰는 사람이 어디 있나"라며 "모든 기기와 활동은 다 IT로 들어가는데 증거능력을 인정하는 것은 옛날식이다 보니 혐의 입증이 어렵다"고 말했다.

공안통으로 분류되는 한 검찰 고위 간부는 "현행 법은 디지털 세계를 염두에 둔 법이 전혀 아니기 때문에 현실에 맞게 빨리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북한에서 운영하는 사이트에서 나온 문건도 증거로 인정하지 않고, 북한 대남부서 담당자를 불러 올 수도 없는데 무조건 증거로 제시한 문서의 원작자를 요구하는 지금의 법은 문제가 심하다"고 덧붙였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박주민 변호사는 "김용판 재판이나 이석기 재판, 원세훈 재판을 보면서 법관의 자율심증주의에 기대는 경향이 크다고 느꼈고 따라서 증거법에 대한 기준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고 동의했다.

다만 박 변호사는 "하지만 증거법이 국가보안법 등에 대해 과잉 적용하는 방향으로 논의되는 것은 경계해야 할 것"이라며 이같은 논의의 부작용도 우려했다.

단순히 전자문서의 증거능력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법이 개정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라는 의견도 나온다.

법이 전자문서의 증거능력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개정되더라도 정치적 사안에 따라 다르게 잣대를 들이대는 사례가 반복되는 이상 증거법으로 기준을 제시할 수는 있어도 악용될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정태호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증거의 존재나 형태도 계속해서 IT기술 발달에 따라 달라질텐데 매번 바꾸기 보다는 집행기관들의 일관된 자세도 중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법무부는 형사소송법 개정을 위한 태스크포스를 꾸려 운영 중이며 지난 5월에는 김진태 새누리당 의원이 기술적 방법으로 디지털 증거능력을 인정하는 취지의 법 개정안을 발의한 상태다.

하지만 현재 법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위원회 단계에서 계류 중이고 800개 안건에 밀려 논의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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