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당집회에 조직원 동원해 몽땅 때려부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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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기상의 역사산책 107] 장충단에서 처음 모습을 드러낸 정치깡패

민주당 조병옥 대표최고위원이 마이크를 잡자 강단 연하에 포진한 파나마 모자를 쓴 깡패들이 야유를 하고 있다. 오른쪽 끝 인물이 같은 깡패 출신인 김두한 의원이다.

 

1957년 5월 24일 동대문 일대의 식당가. 이 일대의 설렁탕집마다 아침 일찍부터 부산하게 가마솥에 고기를 넣고 국물을 끓였다.

"자~ 빨리 빨리 받아들 가라고!"

이정재가 이끄는 깡패조직 동대문 주먹사단의 중간보스 '돌대가리' 이석재는 몰려드는 주먹들에게 식권 2장과 일당 700환씩을 나눠줬다. 여기에 모인 주먹들은 어림잡아 1,000명에 달했다. 이들에게 주어진 임무는 이날 오후에 장충단공원에서 야당이 주최하는 시국강연회를 때려부수는 것이었다.

야당의 집회 개최 소식이 전해지자 이기붕이 이끄는 자유당과 폭력조직은 머리를 맞대고 이 집회를 방해하는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이정재는 휘하의 중간보스들을 모아놓은 자리에서 "이번 일은 자유당 최고위층에서 내린 결정"이라고 밝히고, 유지광을 지목하면서 "자네가 애들을 데리고 가서 집회를 방해하라"고 지시했다. 거사의 목표는 민주당 대표최고위원인 조병옥의 연설을 막는 것이라고 못박았다.

5월 25일 아침, 장충단 주변에는 수많은 정·사복 경찰관들이 경비를 서고 있었다. 오후가 되자 20만 명에 달하는 시민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4시경에는 을지로 6가 로타리부터 장충단으로 들어가는 차량의 통행이 모두 차단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그런데 아침과는 달리 경찰들은 모두 자취를 감췄다. 훗날 밝혀진 바로는 집회장에 배치된 경찰은 사복경관 3명뿐이었다. 이렇게 해서 깡패들이 설칠 수 있는 마당이 차려진 것이다.

대회장 입구에서 집회 경비 책임자인 김두한 의원이 얼굴이 낯익은 동대문 주먹들을 알아보고 제지했다.

"어이~ 자네들은 못 들어가."

유지광이 나섰다.

"누군 초대받고 들어왔나? 좀 들어가겠다는데 왜 그래?"

주먹들은 김두한을 밀치고 우르르 몰려 들어갔다. 거사에 참가한 중간보스들은 다들 파나마 모자를 쓰고 있었다.

최초의 조폭 전국구 두목인 김두한. 이승만 슬하를 떠나 야당에 합류한 순간 힘을 잃게 된다.

 

시국강연회는 오후 3시 10분 사회자인 민관식(민주당) 의원의 개회사로 시작됐다. 강연 순서는 노농당의 전진한, 민주당의 조병옥, 국민투위 위원장(무소속)인 장택상 순으로 진행될 예정이었다. 드디어 조병옥이 단상에 올라갔다. 조병옥이 이승만 대통령을 신랄하게 공격하기 시작하자 맨 앞에 있던 유지광이 삿대질을 하며 소리를 질렀다.

"시끄러~ 너도 이승만 밑에서 일하던 놈 아닌가?"

이를 시작으로 맨 앞에 있던 주먹들이 일제히 욕을 퍼부었다. 이어 "저놈 죽여라!"하는 소리와 함께 돌을 비롯하여 유리병 조각, 심지어는 플라스틱 물통까지 연단으로 날아들었다.

이번에는 파나마 모자에 말쑥한 신사복 차림의 괴한들이 연단으로 난입했다. 경비책임자인 김두한이 이들을 막아보려고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깡패들은 연단에 놓인 책상을 부수고, 마이크 조정기에 휘발유를 뿌리고 불을 질렀다. 그 와중에 현장사진을 찍는 기자들을 두둘겨 패는 등 강연장을 아수라장으로 만들고는 유유히 사라졌다.

경찰들은 찾아볼 수 없었다. 괴한들이 자리를 뜬 후에야 사이렌을 울리며 중부경찰서장 최동택이 몇 명의 정복경관을 대동하고 현장에 나타났다. 공원 입구에는 기마경찰대도 동원되었다. 경찰은 엉뚱하게 괴한들에게 맞서 싸우던 홍익대 학생 이영수를 붙잡아갔다.

장충단집회 방해 사건을 보도한 1957년 5월 27일 동아일보 1면 기사

 

이 사건은 현장에 있던 기자들에 의해 다음날 신문에 대서특필되었다. 이 사건이 관심을 끈 것은 그동안 정치집회에서 폭력을 휘둘렀던 '괴한'의 정체가 처음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깡패'란 용어는 해방 이후에 생겨난 신조어로, 영어의 'gang'과 무리를 낮춰 부르는 '패거리'가 합쳐진 말이다. 이들 깡패와 자유당 정권이 야합한 것은 1953년 중반 자유당이 이기붕을 중심으로 재편될 때였다.

이기붕은 당내 싸움이나 야당과 대결을 벌일 때 테러를 도입해 이승만의 환심을 사려고 했다. 이기붕은 대표적인 폭력조직인 동대문시장의 이정재와 접촉하기 시작했고, 정치적 야심을 가진 이정재는 미끼를 덥석 물었다. 이렇게 해서 장충단 집회가 열리기 전 이기붕-이정재-유지광-행동대원으로 이어지는 명령체계가 선 것이다.

◇ 검찰마저 갖고 놀았던 경찰과 정치깡패

국회가 시끄러워지고 여론이 악화되자 법무부의 명령에 따라 서울지방검찰청 조인구 검사가 단독으로 수사에 착수했다.

한편 동아일보에 실린 깡패들의 사진을 발췌하여 유지광을 비롯한 난동 깡패들의 실명을 밝힌 익명의 투고가 신문에 공개되었다. 이처럼 깡패들의 정체가 드러났는데도 수사는 벽에 부닥쳤다. 경찰이 노골적으로 범인 검거에 협조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조인구 검사는 검찰 수사과 직원 11명을 동원해 직접 용의자들 검거에 나섰으나 번번히 실패했다. 깡패들은 검찰이 출동하면 사전에 경찰의 연락을 받고 자리를 뜨면 그만이었다.

야당집회를 난장판으로 만든 행동대장 유지광. 희한하게 혁명재판에서 살아남았다.

 

이 와중에 서울시 경찰국 특수계가 1957년 7월 17일 '폭력조직 분포도'를 발표했다. 이 분포도에는 이정재(동대문파)와 이화룡(명동파)을 두목으로 한 하부 조직의 계보가 적나라하게 공개되었다. 그러나 폭력조직 보스와 자유당의 반발로 서울시 경찰국 특수계는 발표 후 일주일만에 전격적으로 해체되었다.

유지광은 훗날 이렇게 회고했다.

"사건이 발생하자 경찰이 찾아와 나에게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를 자세하게 알려주었다. 나아가 경찰 내부에서 나를 체포하지 말라는 지시가 있었다고 귀뜸했다. 동아일보에 내 사진이 공개된 이후 내 소재를 찾고 열심히 주변을 뒤진 것은 경찰이 아니라 신문기자들이었다. 경찰은 신문기자들로부터 나를 보호해줬다."

◇ 정치깡패와 한 배를 탔던 대한민국의 여당과 야당

4.19혁명 당시 마산에서 시위군중을 쫒고 있는 경찰. ‘민중의 지팡이’가 아니라 ‘권력의 하수인’이었다.

 

그러면 이 사건이 왜 오랫동안 정치쟁점화 되지 못하고 흐지부지 끝난 것일까? 테러를 당한 야당의원들의 과거를 보면 이해할 수 있다.

장충단 집회에서 연단에 오른 조병옥. 장택상. 전진한의 과거를 살펴보자. 모두 해방정국에서 우익청년단의 테러를 적극적으로 지시하고 활용했던 인물들이다. 조병옥은 미군정 경무부장으로, 장택상은 수도경찰청장으로 우익청년단의 피비린내 나는 테러를 비호했다. 조병옥은 "우익테러사건은 민족적 애국단체의 공동 방위적 입장에서 출발한 행동"이라는 담화까지 냈던 인물이다.

전진한은 철저한 반공주의자로 반공노동운동에 큰 역할을 했다. 그는 일본 와세다대학 후배인 유진산이 지휘하는 대한민주청년동맹-청년조선총동맹과 제휴하여 좌익계 노동조합인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 조직을 파괴하는데 앞장선 인물이었다.

그러니까 장충단 집회에서 테러를 당했던 이들 자신부터 이기붕보다 앞서 정치적 목적을 위해 폭력배들을 동원했던 전과가 있었으니, 큰 소리를 칠 수 없었던 것이다.

최근 '자유당 정권에서의 정치테러'라는 논문을 발표한 서준석 서울역사편찬원 전임연구원은 당시 야당의 성격을 이렇게 평가했다.

"비자유당계 보수우익세력은 집권세력인 이승만.자유당과 뚜렷한 차별성이 없었다. 오히려 극우반공적 성격을 공유한 집단이었다. 폭력으로 상대를 제압하고 억누르는데 익숙한 집단이었다. 이는 역으로 더욱 강력한 권력 앞에서는 저항하기보다 굴복할 가능성이 높았다. 이들은 집권세력에 대해 비판은 할지언정 이승만에게 직접적으로 도전하기보다 극우반공체제를 유지하면서 고령인 이승만의 후계자를 노리고 있었던 것이다."

◇ 일장춘몽...죽음으로 치닫는 정치테러의 주역들

1961년 8월 25일 고대생피습사건의 피고인 17명에 대한 판결공판이 혁명재판 1호법정에서 개정되었다. 이 공판에서 임화수 사형, 신도환 무기징역, 유지광 12년형을 언도받았다. 왼쪽부터 신도환, 임화수, 유지광

 

이렇게 자유당과 경찰의 비호를 받으며 날뛰던 정치깡패들에게 새로운 임무가 주어졌다. 이승만의 영구집권과 이기붕의 부통령 당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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