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때리는 영화 속 한마디가 곧 생을 노래하는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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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컷 인터뷰] 영화 에세이집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엔딩 크레딧' 낸 시인 원재훈

영화 에세이집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엔딩 크레딧'을 낸 시인 원재훈이 최근 서울 목동 CBS사옥에서 노컷뉴스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 (사진=황진환 기자)

 

촌철살인의 짧은 글로 세상의 단면을 길어 올리는 시인은 어떤 눈으로 영화를 볼까.

시인 원재훈(55)은 "세상을 깊이 들여다보려는 관객으로서, 영화를 통해 세상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이 곧 시인"이라고 했다.

최근 서울 목동에 있는 CBS 사옥에서 만난 그는 "영화관은 '광장'이면서도 '밀실'이라는 점에서 아이러니한 곳"이라는 표현을 썼다.

"극장은 다양한 사람들이 한 공간에 모인다는 점에서 광장으로 볼 수 있어요. 하지만 불이 꺼지는 순간 오롯이 혼자서 영화를 봐야 하는 밀실이 됩니다. 영화를 본 뒤 사람들은 서로의 생각을 나누면서 정보를 공유해요. 그 순간 극장은 다시 광장으로 탈바꿈합니다. 광장과 밀실이라는 양 극단의 특징을 함께 지닌 곳이 극장인 셈이죠."

"사람들이 영화를 보면서 사유하고 그 결과물을 공유한다는 점에서 영화관 자체는 인생과 닮았다"는 것이 시인 원재훈의 생각이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엔딩 크레딧/원재훈/라꽁떼

 

그가 지난 14일 출간된 영화 에세이집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엔딩 크레딧'(라꽁떼)을 통해 영화 속 삶을 현실 세계로 끄집어낸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사실 영화 에세이가 넘쳐나는 환경에서 제가 굳이 하나를 더 보탤 이유는 없다고 봤어요. 그러던 중 '다양한 영화 속에서 마지막에 가슴을 치는 한마디를 주제로 책을 쓰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 한마디는 이 시대를 사는 이들에게 유언이나 잠언처럼 다가가는 면이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거든요."

그렇게 이 시대에 대한 성찰을 담은 유언·잠언과도 같은 영화 속 한마디는 이 책의 주제가 됐다. 화를 달래 줄 영화, 사랑에 빠진 사람을 위한 영화, 행복한 삶을 위한 영화 등 일상에 바로 대입해도 무방한 영화들로 책이 꾸며진 것은 이러한 방향 설정에 따른 당연한 귀결점이었다.

"평범한 말이 비범하게 다가오는 순간들이 있잖아요. 특히나 영화 속에서는 다양한 장치를 통해 그러한 말들이 더욱 힘을 얻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19, 20세기에 문학이 했던 역할을 지금의 영화가 하고 있다고 봐요. 우리는 영화가 곧 문학이 된 시대를 사는 거죠."

◇ "극장은 고독한 '밀실' 이자 소통의 '광장'…영화는 세상에 맞설 힘 품은 문화"

책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엔딩 크레딧'의 특징은 소위 상업영화, 예술영화를 구분하지 않고 각각의 작품에서 흥미로운 삶의 방식을 길어 올린다는 데 있다.

이 책의 집필 과정에서 실베스터 스텔론 주연의 '록키'(1976)를 다시 본 시인은 극중 "13라운드까지만 버티면 돼"라는 대사를 들으면서 흘러내리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고 했다.

"영화 속에서 주인공은 이길 생각을 하지 않아요. '버티면 된다'는 그 말이 이 시대를 사는 우리네에게 몹시도 간절하게 다가오더군요. 원빈 주연의 '아저씨'(2010)만 봐도 극 말미에 '한 번만 안아보자'라는 주인공의 대사가 주는 울림이 크잖아요. '무엇을 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하다고 봅니다. 자신이 처한 환경에서 최선을 다해 만들어낸 문학, 영화가 최고의 작품이라고 여겨지는 이유죠. 그 진심은 결국 독자, 관객에게 전달되기 마련이니까요."

시인 원재훈(사진=황진환 기자)

 

시인은 이 책에서 언급한 영화 대사 가운데 가장 애착이 가는 말로 '어바웃 타임'(2013)의 대사 한마디를 꼽았다. 시간여행을 다룬 로맨스물을 표방한 이 영화에서 주인공의 아버지는 아들에게 "인생은 알 수 없는 거란다"라는 조언을 한다.

"물론 책속 모든 대사가 마음에 와 닿지만 제 경험을 통해 그 대사의 깊이를 느끼는 거겠죠. 이 대사는 제 삶의 신조와 같은 '목표를 갖지 말자'는 것과도 통하는 것 같아요. 지난 2009년 아버지가 돌아가셨죠. 아버지는 저를 굉장히 사랑하셨는데, 제가 해드릴 수 있는 게 많지 않았어요. 너무나 가난했거든요. 그런데도 아버지는 돌아가시기 전에 제게 '고맙다'고 하셨죠."

그는 "아버지를 화장한 뒤 뼈와 함께 쇠막대가 남았다"고 말했다.

"한국전쟁 때 다치시고는 평생 그 쇠막대를 짊어지고 사신 거죠. 하지만 자식들에게는 말 한마디 없으셨어요. 그렇게 아버지에 관한 소설 '망치'를 썼습니다. 아직도 죄송한 마음이 크네요…. 인생은 알 수 없는 거라는 영화 속 대사처럼 지금 이 순간 생이 절단 날 것 같은데도 살아져요. 살게끔 해 준다는 말이 더 맞는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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