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 김광태 감독 "살려고 지은 죄도 죄…셈은 셈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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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컷 인터뷰] 한국전쟁 뒤 한 마을서 벌어진 기괴한 얘기…"다양한 해석 나왔으면"

영화 '손님'을 연출한 김광태 감독(사진=유비유필름 제공)

 

데뷔작 '손님'이 개봉한 9일, 서울 삼청동에 있는 한 카페에서 만난 김광태(40) 감독은 "기대 반 우려 반"이라고 심정을 털어놨다.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를 관객들이 좋아할 것 같아 기대가 큽니다. 반면 '첫 작품이다보니 허술한 면이 부각되지는 아닐까?' '극중 쥐가 나오는데, 관객들이 보신 뒤 불만이나 혐오감을 갖지 않을까?'라는 걱정도 들어요."

걱정 하나는 덜어도 될 듯싶다. 여성 관객들이 혐오하는 쥐를 소재로 택한 데 대한 우려와 달리, 손님의 예매 양상을 보면 여타 영화보다 여성과 10대의 비율이 높은 덕이다.

김 감독은 "손님에 대한 호불호가 분명히 갈리고 있다는 데도 기분이 좋다"고 했다.

"그만큼 우리 영화가 관객분들의 뇌리에 강렬하게 남고 있다는 증거로 다가와요. 좋게 보신 분들과 그렇지 않은 분들이 영화에 관한 대화를 나누시면서 서로의 생각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은 바람직한 현상으로 여겨집니다."

▶ 영화 손님, 어떻게 태어났나.

= 대학에서 연극영화를 전공한 뒤 조감독으로 세 작품에 참여했다. 2007년부터 감독 데뷔를 준비하면서 두세 작품이 무산됐고,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다시 영화를 준비했다. 나이가 있다보니 조급함도 더해갔다.

2012년 말쯤 시나리오를 쓰기 위해 아이디어 수첩을 보면서 고민을 했는데, 눈에 들어온 게 동화 '피리 부는 사나이'였다. 원작 자체가 워낙 강렬하니 이야기를 비틀거나 재해석하지 않아도 관객들에게 어필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비정규직 등 노동문제가 불거지면서 '을'의 입장이 사회적으로 부각될 때였다는 점도 손님의 시나리오에 영향을 줬다.

▶ 마을이라는 한정된 공간을 배경으로 둔 만큼 연극적 요소가 강하다. 그만큼 배우들의 연기에 많은 부분을 기댈 수밖에 없었겠다.

= 제가 신인이다보니 부족한 점이 많다. 상대적으로 함께한 배우들은 좋은 감독님들과 좋은 작품을 여려 편 했으니 경험이 풍부하다. 연기에 있어서는 배우들에게 전적으로 의지했다. 제가 연기에 관여한 것은 미묘하고 은근한 영화의 분위기를 유지하기 위한 감정의 수위조절 정도였다. 손님이 "배우들 연기가 좋은 영화"라는 평가를 얻는다면 그것은 오롯이 배우들 덕이다.

▶ 한국전쟁 직후를 배경으로 삼은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 한국전쟁 당시에는 살아야 하니까 옆에 뭐가 있는지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전쟁이 끝난 뒤에야 사람들은 서로 관계를 맺으면서 '이 사람이 나에게 왜 이러지?' '원하는 게 있나?' '내 걸 빼앗아가지는 않을까?'라는, 전쟁통에 무너진 가치관의 변화를 겪었다고 본다. 이 과정에서 집단의 광기와 이기주의가 힘을 얻은 셈이다.

 

▶ 사실 손님은 한국전쟁을 포함해 1945년 해방 뒤 우리네 현대사를 아우르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 현대사에 관심이 많은 입장에서 제대로 해보고 싶은 욕심이 있다. 군대 다녀온 뒤 머리가 굵어지고 도서관에서 다양한 책도 읽으면서 '이 세상이 내가 알던 것과는 너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됐다. 독립운동가로 널리 알려진 이가 사실은 친일파였다는 사실 등을 접하면서 충격에 휩싸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는 빙산의 일각이었다. 승자독식 사회로 굳어지는 과정에서 억울하게 희생된 이들이 많지만, 그들에 대한 추모는 없었다고 본다. 급하게 갈 생각만 했지, 천천히 가면서 주위의 사회적 약자들을 배려하는 모습을 갖지 못한 탓이 커 보인다.

▶ 일제의 잔재, 무당·한센인에 대한 배척, 통금시간을 알리는 종 등 한국 현대사에 바탕을 둔 계산된 인물과 사건이 영화에 여러 차례 등장하던데.

= 다양한 해석은 좋지만, 너무 정치적으로만 흐르는 것은 부담스럽다. 영화를 만들면서 그러한 상징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랬다면 영화의 만듦새도 지금처럼 은유적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극중 독재자인 촌장(이성민)을 구현할 때 실제 한국 사회의 독재자 모델을 피해갈 수 없다. 그렇게 장르 영화에서는 아이콘화된 모델을 소비하는 셈이다. 영화에 대한 해석은 결국 수용자의 몫이다. 각자의 해석이 맞는 것이다. 손님을 본 관객들로부터 많은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는 점은 역시나 기분 좋은 일이다.

▶ 촌장 캐릭터가 주인공만큼 인상적이다.

= 시나리오 쓰는 사람들 사이에는 "악역이 멋있어야 주인공이 산다"는 말이 돈다. 할리우드 영화 '다크 나이트'에서 조커 같은 역할이 그렇다. 극중 우룡(류승룡) 못지않게 촌장에 공을 들인 이유다. 두 인물의 대립을 통해 영화에서만큼은 자신의 성공을 위해 다른 이를 짓밟았던 승자독식사회의 수혜자들을 처벌하고 싶었다.

▶ 극중 우룡이 부르는 제주 민요까지 치면 극중 마을 안에서 팔도 지방의 말을 모두 들을 수 있다. 이 마을을 한국 사회의 축소판으로 보이도록 하려는 장치로 다가오던데.

= 맞다. 그렇게 보였으면 했다. 배우들에게 각자 편한 언어를 쓰라고 주문했다. 제주 민요의 경우 굳이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이 마을이 한국 사회의 축소판이라는 의미를 전달할 수 있는, 시나리오의 경제성을 추구한 측면도 있다. 지금 세상이 영화 손님 속 마을과 결코 다르지 않다는 점을 관객들이 느끼셨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 우룡이 아들과 이별하는 장면은 영화 매체만이 줄 수 있는 강렬한 인상을 남기더라.

= 문학의 정체성은 문체에 있고, 영화의 정체성은 영화 언어에 있다고 믿는다. 영화는 시각적인 효과에 많이 의존해야 하는 것이다. 우룡과 아들의 이별이 관객에게 인상적으로 다가가야만 이후 극의 흐름에 힘이 실릴 수 있을 것이라고 봤다. 단순히 상투적인 드라마 요소를 배제하고 영화 언어를 고민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우룡과 아들의 이별 장면이 우리 영화의 대표적인 신으로 남았으면 한다.

영화 '손님' 촬영 현장에서의 김광태 감독(사진=유비유필름 제공)

 

▶ 긴장감이 한껏 끌어올려졌을 때 불쑥 튀어나오는 유머들도 흥미롭던데.

= '좌시'에서 특히 호불호가 갈리더라. (웃음) 이러한 유머를 통해 소위 전문가 집단이라고 자부하는 그룹의 어리석은 모습을 표현하고 싶었다. 그들의 얘기는 전혀 논리적이지 않은데, 이러쿵 저러쿵 쓸 데 없는 이야기를 막 하다가 갑작스레 결론을 내린다. 현실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다. 극중 회의 장면 바로 다음에 이어붙인 아이들의 가위바위보 수준에 머무는 것이다.

▶ 개인적으로 영화 손님은 다른 사람을 혐오, 배척하고 낙인을 찍는 파시즘적인 사회에 대한 강력한 경고로 다가온다.

= 가장 우려되는 게 집단주의다. 이 주제는 영화를 하면서 계속 가져갈 것이다. 소통 없는 사회가 타개될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 지금, 영화로라도 "지금 우리는 어떤가요?"라는 질문을 던져야 하지 않을까.

한국 사회에는 억울한 사람도 너무 많다. 최근 강기훈 씨 유서대필사건만 봐도, 법과 국가는 한 사람의 삶을 철저하게 파괴했으면서도 사과 한마디 없다. 강기훈 씨는 무죄가 밝혀지기라도 했지, 잊혀져간 사람들이 너무 많다. 그런 분들을 기려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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