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사진 (박종민 기자)
"처음으로 우리 나라가 부끄럽다고 느꼈다."최근 사업차 중국을 다녀온 차민석(39)씨는 중국 공항에서 엄격한 입국 조치를 받았다.
항공기가 착륙했는데도 탑승자 전원이 내리지 못하고 마스크 쓴 방역요원의 점검을 받아야만 했다. 쭉 둘러보고만 갔을 뿐이지만 그 방역요원의 싸늘한 눈빛을 잊을 수가 없었다고 차씨는 전했다.
최근 2주 간의 한국 휴가를 마치고 미국 산호세에 돌아온 박인향(34)씨는 미국으로 출국 시 발열검사를 하지 않아 의아했다.
박씨는 "입국 때에는 열 감지 카메라가 있었는데 출국 때는 예상 외로 아무런 조치도 없었다"며 "특히 부모님께서 미국으로 다시 돌아가는데 문제가 있을까봐 걱정이 크셨다”면서 "여행 기간 내내 최대한 사람들을 만나지 않고 마스크를 쓰고 다녔다"고 말했다.
LA에 사는 교포 지성진(40)씨는 이번 달 말 가족들과 함께 고국을 방문하려다 패널티 항공요금 1200달러를 지불하고 여행을 접어야만 했다.
지씨는 "자녀가 호흡기 건강이 좋지 않은데다 고국 상황이 좋지 않은데 여행가는 것이 마음에 걸려 취소했다"며 "교포들 사이에서는 곧 시작될 여름휴가 때 찾아올 한국 방문자들에 대해서도 걱정이 많다"고 말했다.
21일자 일본 영자지 '재팬타임스'에도 마스크를 쓴 사람들의 사진과 함께 우리나라의 메르스 사태에 대한 기사가 비중 있게 다뤄졌다.
21일자 재팬타임즈의 한국 메르스 관련 기사(재팬타임즈 홈페이지 캡쳐)
해외에서는 메르스 진원지인 사우디아라비아에 이은 최대 발병국이 된 우리나라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미국령 괌에서는 공항 전광판에 "최근 중동이나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느냐?"고 묻는 질문이 게시되기도 했을 정도다.
괌 국제공항 전광판에 "최근 중동이나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느냐?"고 묻는 질문이 게시돼 있다.(윤지나 기자)
◇"방역 당국, 최소한의 조치도 안해"상황이 이렇다보니 당장 여름 성수기를 앞둔 항공사들은 비상이 걸렸다.
중국 남방항공이 지난달 29일 인천공항에 60개 항공사 모임인 항공사운영위원회(AOC)를 통해 한국 출국자들을 대상으로 한 발열 검사 실시를 국립인천공항검역소에 요청한 데 이어 AOC도 지난 15일자로 공문을 보내 출국장에 열 감지 카메라 설치를 재차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 않고 있다.
항공사 관계자는 "메르스 의심 환자나 접촉자 명단을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나갈 때 발열카메라로 1차로 검역을 하면 항공사 입장에서는 조치하기가 수월한데 방역 당국은 최소한의 조치도 하지 않고 있다"며 울분을 터뜨렸다.
또 다른 항공사 관계자도 "해외에서 우리나라에서 입국하는 사람들에 대한 불안감을 느끼고 있는 심각한 상황인데 정부 차원에서의 검토가 시급하다"며 "발열 카메라 한 대당 1천만원 정도인데다가 인력이 정 없다면 항공사들 내에서 협조할 수도 있는데 너무한 거 아니냐"고 말했다.
◇ '메르스' 멘붕인 방역당국, "장관과 회의중이라" 취재도 거부
항공사들의 거센 요구에 국토교통부도 나섰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국토부 관계자는 "지난 10일 질병관리본부에 열 감지 카메라 설치를 요청하는 공문을 보냈지만 '예산과 인력, 시설이 없어 어렵다'며 '관례적으로 전 세계 공항도 입국장만 설치하고 있다'면서 '장기적으로 검토해보겠다'는 답변 뿐이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확인해 줄 수 없다"고 밝혔고, 질병관리본부 관계자는 "이미 공문을 보낸 사안"이라며 "보건복지부 장관과 밤늦게까지 회의 중이라 확인해 줄 수 없다"고 취재를 거부했다.
전문가들은 방역 당국이 출국자들을 대상으로 한 최소한의 조치조차 하고 있지 않다며 이는 방역에 손을 놓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보건의료단체연합 정형준 정책국장은 "기내에서는 비말(침·가래에서 파생된 작은 물방울)이 2미터 정도가 아니라 조금 더 확산될 수 있다"며 "전염자를 항공기에 태우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면서 "메르스가 밀접접촉 감염이라고 하지만 기내같이 폐쇄돼 있는 공간에서는 감염요인이 상승하기 때문에 정부가 책임 있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