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왼쪽)과 아베 신조 일본총리 (자료사진)
한일 양국이 22일 국교정상화 50주년을 계기로 역대 최악에 가까운 양국관계를 복원하기 위한 어려운 첫걸음을 내디뎠다.
취임 후 한 차례도 양자회담을 갖지 않았던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이날 극적인 화해 제스처를 연출하는 것이다.
양국 정상은 이날 오후 서울과 도쿄에서 각각 열리는 국교정상화 50주년 기념 리셉션에 참석할 예정이다.
당초 축하 메시지만 보내는 것으로 갈음하려 했지만, 전날 도쿄에서 열린 양국 외교장관회담을 전후해 막판 반전이 이뤄졌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 양국 간 첨예한 쟁점이 산적함을 감안할 때 다소 섣부른 결정이란 시각도 있지만, 국교정상화 50주년의 상징성을 감안해 대승적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양국 외교장관회담이 예상 밖 성과를 거둔 것도 박 대통령의 결정에 앞서 부담을 줄여준 요인이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과 기시다 후미오 외무상은 21일 회담에서 조선인 강제징용 일본 근대산업시설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신청 문제를 놓고 상당한 수준의 공감대를 이뤘다.
양측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의 책임 있는 회원국으로서 해당 위원회의 성공을 위해 신청된 안건이 원만한 대화를 통해 등재될 수 있도록 협력해 나간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고 외교부는 설명했다.
사실상 타결 직전의 상황에 이른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양국은 지금까지 2차례의 협의를 거치면서 표 대결보다는 합의 처리 쪽으로 공감대를 이뤘다.
이런 가운데 양국 외교 수장까지 나서 '원만한 대화를 통한 협력' 방침을 확인함으로써 합의 처리 가능성은 더욱 커졌다.
여기에다 유네스코 자문기구인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의 '전체 역사'(full history) 등재 권고 등을 감안하면 일본은 결국 어떤 식으로든 강제징용 사실을 반영할 것이란 전망이다.
이런 흐름이 유지된다면 위안부, 세계유산, 아베 담화 등 한일관계 복원을 위한 3개의 관문 가운데 하나를 조만간 넘게 된다.
하지만 위안부와 아베 담화는 세계유산에 비해 훨씬 무겁고 까다로운 문제다.
이날 외교장관회담에서도 이들 문제는 뚜렷한 진전을 보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 장관은 위안부 문제와 관련, 양국 간 현안들을 지혜롭게 풀어나감으로써 양국관계의 선순환적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고 아베 담화에 대해선 역대 내각 담화의 역사인식이 분명히 표명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에 기시다 외무상은 구체적 반응은 보이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고, 대신 일본산 수산물 수입 규제와 대마도 도난 불상 문제 등에 대한 관심과 협조를 요청했다.
박 대통령은 최근 미국 언론과 회견에서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상당한 진전(considerable progress)이 있다"고 밝혔지만, 외교부 당국자들은 지나친 낙관을 경계하고 있다.
한 당국자는 "위안부 문제의 성격상 (99.9%가 합의되고) 나머지 0.1%가 남았더라도 최종적으로 민감한 부분에서 안 될 수가 있다"고 말했다.
8월 15일 전후 70주년에 즈음한 담화와 관련해서도 아베 총리가 고노·무라야마 담화 수준의 사죄 표명을 할 가능성은 현재로선 희박하다는 게 일본 관측통들의 중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