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메르스 사태가 한창 진행되는 과정에서 되풀이한 대답은 "매뉴얼대로 하고 있다"는 것이었지만, 이는 사실과 다른 것으로 나타났다.
매뉴얼대로라면 신종전염병인 메르스가 해외에서 발생할 때부터 역학조사를 실시해 국내 유입에 대비해야 했지만 손을 놓고 있다가 큰 화를 자초했다.
정부는 또 경보수준을 '주의'를 넘어 '경계' '심각' '단계'로 올렸어야 했는데 주의에서 머물고 있다. 메르스 관련 정보를 초기부터 공개하도록 메뉴얼은 규정하고 있지만 이 역시 지켜지지 않았다.
◇ 중동서 年 2만6천명 유입...메르스 위험 대비 전무
정부가 지난해 12월 수정한 '감염병 위기관리 표준 매뉴얼'을 보면 위기경보 '관심' 단계부터 감염병 발생 원인에 대한 신속한 역학조사를 실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관심 단계는 해외 신종.재출현 감염병이나 국내에 원인불명 환자가 발생했을 때에 해당한다.
이때 역학조사는 국내에 유입됐을 당시를 대비한 것이다. 이 단계에서부터 메르스 진원지인 중동 현지에 전문가를 보내 원인과 방역 등에 대한 사전조사를 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중동 현지 의료진과 접촉해 관련 정보를 입수했어야 한다.
하지만 정부는 이와 관련해 한차례의 세미나나 토론회를 열지 않았다.
매뉴얼과 별도로 지난해 7월 정부가 마련한 '메르스 관리지침'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지침은 관심단계부터 질병관리본부에 '중동호흡기 증후군 대책반'을 선제적으로 구성해 운영하도록 하고 있지만, 이 역시 서류상에서 머물렀다.
2012년 9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메르스가 처음 발생했고 최근 해외에서 40%의 높은 치사율을 보였지만, 정부가 '관심'을 두지 않은 '관심' 단계였던 것이다.
지난해 중동에서 들어온 인구가 2만6천명인 점을 감안하면 메르스 유입에 대해 사전 대비는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다.
새정치민주연합 김용익 의원은 "관심단계부터 대비책을 세웠어야 하는데 정부는 한 게 아무것도 없다"며 "그러다가 메르스가 유입되고 번지면서 뒤통수를 맞은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2년 이상 사실상 넋놓고 있다보니 '익히지 않은 낙타고기와 낙타유를 섭취하지 말라'는 황당한 예방수칙을 내놓은 것도 우연이 아니라는 지적이다.
◇경보 단계·정보공개 등도 매뉴얼과 달라
현재 정부가 '주의' 단계를 유지하고 있는 위험경보 역시 매뉴얼을 어긴 것이다. 메뉴얼은 감염병의 국내 유입후 다른 지역으로 전파되는 경우 '경계' 단계로 격상하도록 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지금상황이 '전국적 확산 징후'를 보이는 심각단계에 해당한다고 보고 있다. 심각은 위기경보의 최종단계다.
하지만 정부는 여전히 주의 단계를 고수하고 있다.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은 "'경계'로 격상하면 국가 이미지에 문제가 있다"며 현 상태를 유지하겠다고 밝혀 논란을 빚었다. 이는 매뉴얼을 무시한 처방이다.
정부가 감염이 발생한 병원에 대한 공개를 꺼린 것도 매뉴얼과는 배치된다. 매뉴얼에는 주의 단계부터 '정확하고 신속한 정보 제공을 통해 불필요한 불안감 해소'라는 규정이 있다.
한국-세계보건기구(WHO) 합동평가단이 한국 정부가 정보 공개를 늦춘 탓에 초기 방역 정책의 실패를 불러왔다고 평가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정부가 정보공개를 회피한 것은 결국 삼성서울병원을 염두에 둔 처사가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정부가 지난 16일 메르스 사태 수습을 위해 505억원을 예비비로 지출하기로 한 것도 한참 뒤늦은 결정이다. 예비비 편성과 지원은 주의 단계부터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