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게이트에서 통행료 징수원으로 일하는 김옥주(46·여)씨는 어린 두 아들에게 지금껏 용돈을 준 적이 없다. 한 달 150만원이 채 안 되는 최저임금 수준 월급으로는 애들 용돈은 사치스런 얘기다. 월급을 받고 15일만 지나면 통장 잔고가 '0원'이다.
4일 민주노총 주최 '최저임금 생활탐구 1만원의 소박한 행복' 간담회에 모인 저임금 노동자들은 최저임금 인상의 절박함을 호소했다.
김씨는 "연장근무를 하지 않으면 한달에 한번 통닭 먹기도 힘들다"며 "애들한테 가장 미안하다. 용돈도 주고 다른 애들처럼 학원도 보내고 싶은데, 도저히 그럴 형편이 못 된다"고 말했다.
학교 경비원으로 일하는 오한성(75)씨는 그런 김씨를 부러워했다. 한달 월급이 100만원이 넘는다는 이유에서다.
오씨는 "하루에 보통 16시간 근무를 하지만 근무시간으로 인정받는 것은 5.5시간에 불과하다"며 "손자들 데리고 놀러도 가고 싶고 할아버지 구실도 하고 싶지만, 한달 85만원밖에 안 되는 월급으로는 엄두가 안 난다"고 말했다.
오씨처럼 장시간 근로를 하면서도 임금을 제대로 못 받는 노동자들은 흔하다고 전직 택시기사 이삼형(52)씨는 말했다.
노조 활동을 하다 해고된 이씨는 "10시간 이상 일해야 회사에 낼 사납금을 채울 수 있지만, 정작 회사에서 근무시간으로 기록하는 것은 5시간, 6시간에 불과하다"며 "임금을 줄이기 위한 온갖 '꼼수'가 만연해 있다"고 전했다.
올해 한국의 최저임금은 시급 5천580원, 월급으로는 116만6천220원이다. 미혼·단신 근로자의 생계비 보장 등을 검토한 결과다. 노동자들은 현실을 모르는 얘기라고 잘라말했다.
시립동부요양원에서 요양보호사로 일하는 오경순(59·여)씨는 4인 가족의 생계를 책임진다. 남편이 건축업에 종사하지만 일거리가 없을 때도 흔하다.
오씨는 "요즘 취업난도 심해서 자녀들이 취업을 못해 혼자 생계를 책임지는 사람들이 주위에 참 많다"며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가구주를 기준으로 최저임금을 결정해야지, 미혼 근로자를 기준으로 결정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야간 근무를 할 때는 한 명의 요양보호사가 20∼30명의 환자를 돌봐야 해 일이 너무 힘들다고 전한 오씨는 "한 마디로 노동자에게 너무 야박하다"고 말했다.
저임금 노동자들은 정부에 대한 불만도 많았다. 최소한 인간적인 대우를 받을 수 있도록 감독은 제대로 해야 하지 않느냐는 얘기다.
오한성씨는 "근로기준법에 따른 대우를 받겠다는 주장을 못 한다. 주장하면 바로 잘린다"며 "노동부나 관계기관에서 표준근로계약서를 적용하도록 철저히 감독해야 하는데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고 전했다.
오씨는 "어떤 때는 노동부 장관이 용역업체 후원자 같다는 생각도 든다"며 "현장을 감독하는 근로감독관부터 제대로 일하면 노동자에 대한 비인간적인 대우도 많이 사라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고려대에서 청소노동자로 일하는 윤명순(67)씨는 "노조 활동을 한 후 매년 학교 측과 싸우면서 월급이나 근무조건이 다소 나아졌지만 아직도 삶이 팍팍하기는 마찬가지"라며 "월 200만원만 받으면 손자를 데리고 놀러도 가고, 정말 행복할 것 같다"고 얘기했다.
오민규 민노총 비정규전략사업실장은 "최저임금을 올리면 일자리가 줄어든다고 하지만, 오늘 간담회에서 다들 얘기하듯 최저임금이 올라가면 이들의 소비 또한 늘어나 오히려 내수가 활성화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노동자위원, 사용자위원 등으로 구성된 최저임금위원회는 내년 최저임금안을 이달 29일까지 의결해야 한다. 이날 열리는 최저임금위원회 3차 회의부터 본격적인 협상이 시작된다. 노동자위원들은 시급 1만원, 월급 209만원으로 올릴 것을 주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