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은수 서울지방경찰청장 (사진=황진환 기자/자료사진)
지난 주말 열린 세월호 참사 범국민대회에서 경찰과 집회참가자들이 물리적으로 충돌한 가운데, 구은수 서울지방경찰청장이 차벽(車壁)을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에서 규정한 질서유지선으로 본다고 말해 파장이 예상된다.
차벽은 경찰이 경찰버스를 이용해 일정 지역을 빙 둘러싸 집회와 시위 자체를 원천봉쇄하는 것으로 지난 2011년 헌법재판소는 그러한 방식은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하지만 서울 전체의 치안을 책임지는 구은수 서울청장이 헌재에서 위헌결정을 내리고 현행 집시법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차벽을 '질서유지선'이라고 주장하면서 적절성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 차벽 만드는 경찰버스가 '표지(標識)'?
구은수 청장은 20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경찰버스는 현행법 상 질서유지선에 해당하는 표지(標識)로 볼 수 없지 않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당연히 질서유지선으로 본다"고 말했다.
구 청장은 또 "차량이 운송 수단으로만 사용되냐?"고 되묻고 "경찰관이 정당한 공무집행을 하면서 무엇이든 사용 못하겠나? 필요하면 사용해야 한다"고 말했다가, 발언을 주워담기도 했다.
하지만 현행 집시법 제2조 5항은 "질서유지선이란 관할 경찰서장이나 지방경찰청장이 적법한 집회 및 시위를 보호하고 질서유지나 원활한 교통소통을 위해 집회 또는 시위의 장소나 행진 구간을 일정하게 구획하여 설정한 띠, 방책(防柵), 차선(車線) 등의 경계 표지(標識)를 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현행법이 질서유지선의 '표지'를 띠와 방책, 차선 등으로 한정하고 있지만 구 청장은 최근 논란이 되는 차벽까지 질서유지선에 포함된다고 과잉 해석한 것.
그러한 논리대로라면 이명박 정부 당시 이른바 '명박산성'으로 불리며 비난을 샀던 콘테이너 박스나 각종 바리케이드 역시 질서유지선에 포함시킬 수 있어, 헌재의 결정을 전면 무시한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세월호 참사 1주기인 16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세월호 참사1년 범국민추모제' 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황진환 기자/자료사진)
◇ "광화문 광장 집회 시위는 신고해도 안 받아줘""광화문 광장은 집회와 시위를 할 수 없는 공간"이라는 발언도 논란의 여지를 낳고 있다.
구 청장은 "광화문 광장에서 집회와 시위는 법적으로 안되고, 집회 시위 신고도 안 받아준다"며 "미국 대사관 등 각국 주요 대사관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발언의 근거는 집시법 11조 4항으로, "국내 주재 외교기관이나 외교사절의 숙소에서 100m 이내의 장소에서는 옥외집회 또는 시위를 해서는 안된다"고 규정돼 있다.
그러나 같은 법은 '해당 외교기관 또는 외교사절의 숙소를 (집회의) 대상으로 하지 않는 경우', '대규모 집회 또는 시위로 확산될 우려가 없는 경우', '외교기관의 업무가 없는 휴일에 개최하는 경우'엔 집회 시위를 금할 수 없도록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광화문 광장 자체가 각국 대사관에 근접해 있다는 이유로 집회 시위 일체를 불허한다는 듯한 발언은 기본권 자체를 제약하겠다는 것으로 해석될 여지를 남겼다.
지난 17일 새벽부터 광화문 현판 아래에서 노숙 농성중이던 세월호 유가족들이 18일 오후 경찰차벽 위에서 피켓시위 중 경찰들로부터 진압, 연행되고 있다. (사진=황진환 기자)
◇ 현장 지휘관 부적절 발언에는 사과
구은수 서울청장은 다만, 지난 주말 집회 당시 현장 지휘관의 부적절한 발언에 대해서는 유감을 표시했다.
당시 일부 현장 경찰 지휘관들은 집회 참여자와 경찰 사이 충돌 과정에서 "우리 경찰관들 잘하고 있다", "시위대를 한명씩 뜯어서 연행하라", "버스를 밀어봤자 넘어지지 않는다"는 등의 비아냥 섞인 지시와 야유를 보내 시민들의 거센 항의를 받았다.
이에 대해 구 청장은 "현장 지휘관이 경솔한 판단을 한 것 같다"며 "보통 무전으로 지시하는데 다급하다 보니까 실수한 것 같다"고 사과했다.
지난해 9월 임명된 구은수 서울청장은 청와대 사회안전비서관을 지냈으며, 차기 경찰청장으로 유력하게 꼽히는 경찰내 대표적 경비통이다.
한편 경찰은 지난 주말 범국민대회에서 연행한 100명 중 10여명에 대해 집시법 위반과 공무집행방해 등의 혐의로 조만간 구속영장을 신청할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