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님 훈련 안 줄여주시면 놓칠 거예요." IBK기업은행 이정철 감독은 타협이 없는 사령탑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덕분에 정상까지 올라왔다. (자료사진=KOVO)
IBK기업은행 이정철 감독은 좀처럼 선수들과 타협하지 않는다. 시즌 전 지옥 훈련에서는 베테랑도 예외는 없다. 처음 기업은행에 합류한 김사니가 "힘들어 미치겠는데 버티라고만 하느냐"라고 눈물을 보일 정도.
덕분에 우승 순간 늘 선수들에게 밟히고는 한다.
그런 이정철 감독도 우승 후에는 부드러운 남자로 잠시 변한다. 모처럼 선수들에 대한 칭찬을 아낌 없이 늘어놓았다. 물론 선수들 앞에서는 아니다.
이정철 감독은 31일 V-리그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차지한 뒤 "이렇게 3-0으로 이길지 몰랐다"면서 "경기에 대해서는 전혀 부족함이 없었다고 생각한다. 3차전 1세트에서는 타임도 안 불렀다. 3차전은 감독이 한 게 전혀 없는 것 같다. 선수들이 고맙고 대견스럽다. 많이 성장한 것 같다"고 선수들에게 공을 돌렸다.
계속해서 "올 시즌은 그렇게 쓴 소리를 안 했는데…"라면서 "여자농구도 그렇게 밟는 게 유행인 것 같다. 이번에 네 번째 밟히는 건데 안마 받는 느낌이었다"고 활짝 웃었다.
칭찬도 아끼지 않았다. 베테랑 김사니, 남지연부터 외국인 선수 데스티니, 팀의 주축으로 성장한 김희진, 박정아, 그리고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했지만, 코트에서 구슬땀을 흘려준 채선아, 김유리, 유희옥까지. 이정철 감독은 선수들에게 박수를 보냈다.
이 이야기를 전해들은 선수들은 놀란 표정이었다.
박정아는 "앞에서 이야기해주시면 더 좋을 텐데, 꼭 뒤에서 이야기하신다. 진작 말해주셨으면 '아 성장했구나' 할 텐데 지금이라도 말해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했고, 김희진 역시 "칭찬을 듣는 게 처음"이라고 멋쩍어했다.
그러자 챔피언결정전 MVP 김사니가 "6라운드부터 안 져서 그렇다. 이기면 절대 뭐라고 안 하신다"고 거들었다.
이처럼 타협 없는 우직함 덕분에 외국인 선수 데스티니도 휘어잡을 수 있었다. 사실 데스티니 영입 때 걱정이 컸다. 출산 후 복귀라는 우려도 있었고, 무엇보다 김사니가 미국 국가대표 세터에게 데스티니의 성격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는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정철 감독은 데스티니를 그대로 밀고 갔다.
이정철 감독은 "정말 철이 든 건 데스티니"라면서 "야생마다. 정말 골치가 아팠지만, 그게 감독의 임무다. 내가 뽑은 선수다. 주변에서 잡을 수 있겠냐고 묻기도 했다. 삐치면 통역과도 이야기를 안 한다. 그럴 때는 통역을 거치지 말고 나에게 직접 이야기하라고 해서 컨트롤을 했다"고 설명했다.
데스티니도 이정철 감독의 고집 앞에서는 어쩔 수 없었다.
데스티니는 "처음에 왔을 때 너무 힘들었다. 출산 후 모든 리듬, 밸런스가 안 맞았다. 여기에 부상까지 당했다"면서 "감독이 너무 힘들게 훈련을 시킨다. 기업은행에 올 수 있었던 것은 감독이 나를 강하게 원했기 때문이다. 믿어준 것에 대해 고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