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끝작렬] 이병기 비서실장의 한 달, 직접 전화를 걸어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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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기 대통령 비서실장 (윤성호 기자/자료사진)

 

박근혜 대통령이 청와대 문건 유출 파동 등 국정 난맥상에 대응하기 위한 인적 재편의 마무리 인사로 이병기 국정원장을 청와대 비서실장에 임명한 지 모레 26일로 한 달이 된다.

이병기 대통령 비서실장의 첫 일성은 '소통'이었다.

이병기 실장은 비서실장에 임명된 날 "더욱 낮은 자세로 대통령과 국민의 소통의 가교가 되고 여야를 막론한 정치권과 정부와도 더욱 활발하고 적극적으로 소통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런 발언에는 경기 침체 속에 청와대 문건 유출 파동과 비선 실세 의혹 등 복합적 요인으로 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30% 아래 하락한 상황에서 국정 추동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대내외 '소통력'의 회복이 중요하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 이병기 실장 체제가 가동된 지 한 달이 되는 시점에서 볼 때 청와대는 변화했는가?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7일 중동 순방 이후 처음으로 주재한 국무회의에 검은색 서류가방을 들고 참석했다.

박 대통령은 평소 각종 행사에 핸드백을 들고 다니는데, 서류 가방을 휴대하고 국무회의에 참석한 것은 이 날이 처음이라고 한다. 큰 변화가 아닐 수도 있는 박 대통령의 이 서류 가방에 청와대는 소통의 의미를 부여했다.

박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7명의 각료들에게 중동 순방 후속조치와 추진계획에 대해 즉석 질문과 토론을 이어갔는데, 청와대는 "이날 토론에 대해 핸드백 대신 서류가방을 들고 오신 것으로 상징되는, 소통을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봐 달라"고 당부했다.

청와대가 서류가방을 내부 소통의 상징으로 설명하는 이유는 비서진의 건의가 수용됐다는 점에 있다.

청와대 참모들은 과거에도 박 대통령의 업무 모드 이미지를 강조하는 맥락에서 몇 차례 서류 가방 휴대를 건의한 적이 있으나, 이병기 실장이 오고 나서야 이런 건의가 받아들여졌다고 한다.

이런 유의 건의가 보고 중간 단계에서 잘렸을 가능성 등 수용되지 않은 정확한 경위야 알 수 없지만, 이 실장이 청와대에 온 뒤 여러 건의 아이디어와 건의가 박 대통령에 올라가고 또 수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내부 소통이 이뤄지는 증거"라는 것이 청와대의 설명이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김기춘 전 실장의 청와대에 대해 "조직 자체가 경직됐었다"고 말한 바 있다.

김 전 실장은 3선 국회의원과 검찰총장, 법무장관 등 압도적인 경력으로 수석비서관들을 장악하는 한편 대통령을 '주군'에 비유하면서 청와대 내부의 일을 '궐 밖으로 유출하지 말 것'을 강조하는 등 비밀주의를 고수하다보니 아래 사람들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말을 편하게 하기가 부담스러웠다고 한다.

이런 부담스러움과 불편함, 어려움은 과거 김 전 실장과 일을 함께 해본 적이 없는 당 출신 정무형 참모일수록 컸다고 한다.

반면 이병기 비서실장은 정보 외교 정무 의전 홍보 등 다른 분야의 압도적인 경력으로 비서진을 통솔하면서, 각종 회의에서 지시보다는 토론을 유도하고 해당 참모들의 전문성을 인정하며 업무를 맡기는 스타일로 전해졌다.

두 차례 대선 캠프 참여를 통해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이 실장의 인맥도 청와대 내부의 소통을 촉진하는 요인으로 평가된다.

박 대통령에 대한 수석들의 보고도 사안에 따라서는 실장 자신을 거치지 않고 직접 할 것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에 따라 과거보다 상대적으로 더 편하게 보고하고 건의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지는 등 청와대 조직이 탄력성을 회복하면서 매우 빠르게 안정감을 되찾고 있다는 얘기가 청와대 내부에서 나온다.

이병기 실장의 소통력은 당청관계에서도 관철되고 있다. 박 대통령의 중동 순방 이후 성과를 설명해달라는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제안에 따라 박 대통령과 여야 대표의 회동이 성사되고, 회동이 끝난 뒤 두 시간 가량의 의견 조율 끝에 공동 발표문이 나온 것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문재인 새정치연합 대표와의 의견 조율을 언론에 알려진 것처럼 이병기 실장이 주도했는지, 아니면 김무성 대표가 주도했는지 말이 엇갈리지만, 두 사람의 오랜 인연과 친분이 없었다면 애당초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 (자료사진)

 

김기춘 실장 시절, 전화를 해도 메모를 넣어도 도대체 응답이 없다는, 모멸감을 느낄 정도라는 '소통 불만'이 김무성 대표 등 당 지도부 주변에서 나왔던 것과는 크게 비교가 된다.

여야 대표 회동을 마치고 청와대와 새정치연합이 현 정부의 경제 실패 여부를 둘러싸고 공방을 벌이기는 했지만, 어쨌든 여야 대표 회동을 통해 박 대통령이 집중하고 있는 경제 살리기와 공무원 연금 등 구조 개혁에 대해 국회의 협력을 얻는 모멘텀이 마련된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안종범 경제수석이 최근 무역투자진흥회의 개최 전에 미리 관련 내용을 기자들에게 브리핑한다든가, 뉴질랜드와의 FTA 서명에 대해 언론에 알릴 새로운 내용이 없음에도 설명을 자청하는 등 브리핑에 적극적인 것도 과거에는 보지 못했던 풍경이다.

이병기 실장이 청와대 내외의 전방위적 소통을 강조한다고 해서 기강을 세우지 않는 것도 아니다.

이 실장은 최근 수석 비서관 회의에서 업무보고를 받으며 이미 언론에 보도된 '교문수석의 업무폰 해킹 사건'을 언급하며 제일 중요한 보고를 왜 하지 않는지 정색을 하며 물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실장이 챙겨야할 사안은 매우 철저하고도 확실하게 챙긴다는 의미이다.

한 때 국정 지지율이 27%까지 떨어졌던 박 대통령은 이완구 총리 내각과 이병기 실장 체제 운용 한 달을 맞으며 경제 살리기와 연금 노동 등 4대 분야 구조 개혁 등 핵심 국정과제를 밀고나갈 기본 지지율을 가까스로 회복했다.

여기에는 박 대통령의 중동순방과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 피습사건에 따른 보수층 결집 효과가 큰 영향을 미쳤겠으나, 청와대의 대외적인 소통 이미지 개선도 한 몫을 한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는 최근 여당 지도부의 사드 논의 요구를 당정청조정회의에서 적절이 무마하기도 하고, 국회의원 겸직과 삼권분립 위배 논란에도 박 대통령이 주호영 윤상현 김재원 의원에게 정무 특보 위촉장을 수여하는가 하면, 더 나아가 대기업비리, 자원비리, 방산비리와 같은 부패 척결과 이를 위한 고강도 사정에 힘을 몰아주는 등 정면 돌파에 나서고 있다. 국정의 중심에 청와대가 있겠다는 강한 의지를 피력한 셈이다.

박 대통령은 중동순방이후 메시지를 경제 살리기와 구조 개혁 과제로 대폭 단순화하며 국정운영에 나서고 있는 것이 현 상황이다. 소통력 회복을 토대로 핵심 국정과제 추진의 당위성에 대해 설득할 수 있다는 믿음이 깔려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실 김기춘 전 비서실장은 과거 기자들의 전화를 받지 않았다. 취재 전화이든 안부 전화이든 백이면 백 기자들의 전화를 받는 일이 없었다. 소통을 특별히 강조하는 이병기 비서실장은 어떤지 알 필요가 있겠다 싶어 실장의 업무 폰으로 전화를 해봤다.

전화를 받았다. 다만 전화를 받은 사람이 이 실장은 아니었고 이 실장의 비서였다. 이 실장이 오찬 일정에 들어간 상황이라 전화를 받기가 어렵다는 설명을 들었다. 시간이 될 때 전화를 주실 것을 부탁한 뒤 전화를 끊었다.

비서를 통해서나마 이 실장이 전화를 직접 받지 못하는 상황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이 적지 않은 변화로 느껴졌다. 그러나 아직 답신 전화를 받지 못한 기자로서는 이 실장의 소통에 높은 점수를 주기는 어려웠다. 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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